가벼운 숭고함

[리뷰]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삶의 문제들은 너무 무겁거나 너무 가볍습니다. 무거움은 존재에게 짐이 될 것이고 가벼움은 존재를 자유롭게 할 것 같지만 어느 쪽이든 삶은 녹록하지 않습니다. 단 한 번밖에 겪지 못하는 생이라서 내게 주어진 지금의 이 가벼움이 진정한 자유인지, 삶을 행복으로 인도하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경험치가 없어서, 매 순간이 첫 순간이라서 그냥 부딪혀볼 수밖에 없을뿐더러 결과의 가치 판단에 대한 정확한 기준 역시 없습니다.

그런데 가장 멀리 떨어진 양 극점이 원의 동그란 선을 따라 움직이면 한 점에서 만나지듯 아주 다른 무게 차이가 사실은 종이 한 장보다 얇고 가벼울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나름의 가치관대로 삶을 살아내는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연이란 이름으로 조우한 완벽한 타인이 내 생에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는 주술, 사랑이라는 것만을 봐도 그렇죠.

그 주술은 거짓이지만 아름다운 의미가 있고 또 마법이지만 충분히 현실적이기도 합니다.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삶의 무게가 달라진다고 말하는 것 같지만 진짜 핵심은 확신했던 자신의 시각, 가치관, 방식은 너무도 불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 지음 / 민음사 출판)

실패한 여자의 전형인 엄마로부터 달아나려는 테레자는 삶을 무겁게 바라봅니다. 구역질이 나는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쉽게 드러나 보이는 육체가 아닌 그 이면의 가리어진 영혼만이 진짜 자신의 것이라 믿고 그것에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녀는 삶이 던진 질문들에 ‘Es muss sein’(그래야만 한다)이라고 답하는 쪽입니다.

반면 수없이 많은 여성과 에로틱한 우정을 즐기며 정반대의 삶을 추구해왔던 토마시는 우연의 산물인 테레자의 사랑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가벼움에서 무거움 쪽으로 삶의 방향을 전환합니다. 그에게 있어 유일하게 무거웠던 직업마저 포기하게 된 상황에 닥쳐서도 그는 진정한 자유를 느끼고 오직 테레자만이 자신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토마시의 에로틱한 친구이면서 프란츠의 연인인 사바나는 키치의 미학적 이상을 경멸하고 커튼 이면의 진실을 추구하는 현실주의자이지만 고집스럽게 추구하는 가치관이 형성된 배경에는 결핍과 상처를 향한 배반과 같은 동기가 숨어있습니다. 그리고 부정해왔던 키치가 어쩔 수 없는 인간 존재의 전제조건이라는 사실을 마지막엔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바나를 종교적 이상, 여신으로 여기며 사랑했던 프란츠는 가장 세속적이면서도 가장 초월적인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주인공들의 처음과 끝은 이렇게 다르지만, 그 처음 속엔 끝으로 가기 위한 모든 이유가 담겨있었습니다. 스스로도 잘 몰랐고,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방향을 선회할 수 있는 다른 사건들을 만나지 못했을 뿐 가능성이라는 형태로 처음의 씨앗들은 우리 안에 심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진지하고 심각하게 여겨졌던 의무는 사소하고 가벼운 자유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한 번뿐이고 사라져버릴 허무는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의미로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작가의 말대로 우리는 카레닌처럼 낙원에서나 살 수 있는 개의 원형적 시간이 아닌, 낙원에서 추방된 인간의 직선적 시간 속에 살고 있기에 행복할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변화할 수밖에 없는 미지에 대한 무지 속에서 공포에 떨거나, 삶의 속성을 제대로 알고 슬픔과 동시에 아름다움을 느끼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종착역에 도달한 형식의 슬픔 속에서 함께 있다는 내용의 행복을 느끼며 한날한시에 눈을 감은 토마시와 테레자의 결말처럼 삶은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볍지만, 그 가벼움이 이뤄낸 사랑의 힘으로 미루어보아 한없이 숭고한 것이죠.

지금 어느 쪽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진 모르겠지만 방황마저 사랑 안에서 하시길, 사랑만이 삶을 가벼운 숭고함으로, 슬픈 행복으로 인도해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