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변신, 그리고 변심

[리뷰] 프란츠 카프카 <변신>

안녕하세요. 글 쓰는 ‘서연’입니다.

몇 차례 비가 오고 여름과 가을이 섞인 듯한 날이 반복되더니 이제 제법 추워졌습니다. 며칠 전 외출을 준비하면서는 간절기 코트를 꺼내 입었는데요, 상대적으로 무거운 외투를 입어서인지 어깨는 자꾸 아래로 쳐지고, 반면 무게에 비해선 조금 얇은 감이 있어서인지 가슴은 자꾸 움츠러들었습니다.

팔짱을 끼고 옷섶을 여민 채 종종걸음으로 걷고 있는 제 모습이 쇼윈도를 통해 비쳤습니다. 잔뜩 겁먹은 아이처럼, 아니 세월의 짐을 한껏 진 할머니처럼 보여서 얼핏 웃음이 났습니다. 이러다가 정말 그 자세 그대로 쪼그라들고 이내 곧 사그라질 것 같아서였어요.

볼일을 끝내고 집에 들어왔을 때 책상 위에 놓인 책 제목의 씁쓸한 여운과 가동되는 냉장고의 둔중한 소리만이 바깥 기운과 맞물려 몸을 휘감았습니다. 기분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추워지고 작아지는 몸, 외로워지고 괴로워지는 마음이 꼭 책 제목처럼 나의 존재를 내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변신”시키는 것 같았습니다.

<변신>(프란츠 카프카 지음 / 문학동네 출판)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어느 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해충으로 변해 있는 그레고르 잠자의 이야기입니다. 다음은 소설의 첫 문장인데요.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니까 소설은 이미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변한 상태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아버지가 계시지만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장남으로 경제적으로는 가장 역할을 합니다. 외판원이라는 직업생활을 해오면서 심신은 아주 고되었지만 자신 덕분에 가정의 형편이 나아지고 가족들을 편하게 해주었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벌레로 변해버린 그의 모습에 가족들은 당연히 놀랍니다. 그 첫 충격의 소동이 지나간 후 체념에서 비롯된 시간이 이어집니다. 이 모든 사건을 가장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아버지, 가장 안타까워하지만 그래서 더 절망해버리는 여린 어머니, 부모 대신 그의 방을 드나들며 물심양면으로 가장 도움이 되는 누이동생. 그러나 오랜 재앙은 모두를 날카롭게 만들고 작은 사건도 서로를 겨냥하는 빌미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그것은 사과였다. (중략) 아버지가 사과로 자기에게 폭탄세례를 퍼붓기로 결심했으므로 더 달려봐야 소용이 없었다. (중략) 꼼짝달싹 못하게 못박혀 있는 느낌이 들며 모든 감각이 완전히 혼란된 채 몸을 쭉 뻗고 말았다.

점차 그에게 소홀해지는 가족들, 특히 이제 더는 그의 먹거리를 날라주는 일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누이동생의 태도에서 변신은 주인공 그레고르의 외형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대하는 가족들의 마음의 변화, 즉 변심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앞서 미리 말했듯 소설은 애초에 변신한 그레고르의 상태에서 시작되거든요. 그러니 아마도 카프카가 꼬집고자 한 대상은 그들을 위해 밤낮없이 희생한 그레고르가 더는 경제적 가장 역할을 하지 못하고 변신해버리자 변심해버리는 가족들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또 어느 날 불현듯 그레고르가 변신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 모든 상황에 대한 예상을 전제로 하는 듯합니다. 지칠 대로 지친 심신의 상태에서도 그는 누이동생을 음대에 진학시키기 위한 계획을 세울 만큼 가족을 위해 살아왔는데 벌레로 변한 그가 그녀의 바이올린 연주에 거실로 나아가 모습을 드러내는 사건으로 말미암아 그는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벌레로 변신하기 전부터 그는 자신의 희생이 고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한계의 극점에서 탈출한 곳이 바로 벌레의 몸이었던 것이죠. 변신과 탈출이 아닌 한계를 이어갔다 한들 진정한 사랑이 결여된 관계 속에서 희생은 그를 더 고되고 지치게 했을 거라는 사실을 그는 무의식중에 알았기에 몸이 먼저 반응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소설에 대한 오마주로 <사랑하는 잠자>를 통해 안타까운 그레고르를 다시 살려내는데요. 이 벌레가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잠자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잠자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으로 비로소 진짜 인간이 됩니다. 이 경우에도 변신 후에 변심(사랑이라는 감정)이 따라옵니다.

냉기, 고립처럼 차가운 것은 사람을 용기 없게 만들어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어요. 온기, 연대처럼 따뜻한 것만이 의욕을 불어넣어 사람을 진짜 살아가게 만들어요. 사랑하게 하고 움직이게 하고 그래서 더 높은 단계로 변신하게 합니다. 카프카의 <변신>이 퇴보라면 하루키의 <변신>은 승화입니다. 그 원동력은 물론 사랑이고요. 변신이든, 변심이든, 더 높은 곳으로 오르게 하는 힘의 온도는 사랑의 따뜻함입니다.

팔짱을 끼는 대신 상대의 손을 잡으면, 옷섶을 여미는 대신 상대의 품에 안기면 필자 역시 다른 단계로 변신하는 기분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겨울을 준비하는 ‘서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