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에 반하는 페미니즘, 그 경향과 연원을 찾아서

[리뷰] 오세라비·박가분·김승한·박수현 공저 <그 페미니즘이 당신을 불행하게 하는 이유>

살다 보면, 으레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고 마는 것들이 있다. 필자에겐 페미니즘이 그랬던 것 같다. 고교 시절부터 진보적 의식화(3년 내내 담임 전교조. 싫었다는 건 아니고)의 수혜(?)를 입었다. 대학 가서도 관련 서적만 골라 읽었다. 활동 역시 비슷한 범주 내에서 찾았다.

필자 주변엔 진보를 주장하고 불평등을 토로하고 불만을 강설하는 사람들이 늘 많았다. 그 가운데 일군의 페미니스트들 역시 있었다. 물론 그들이 공개적으로 ‘나는 페미니스트요!’라고 천명하는 식은 아니었다.

한 시민단체에서 인턴으로 활동하던 어느 날이었다. 함께 활동하는 형이 격앙된 톤으로 아침에 있었던 간이 토의 자리 이야기를 했다.

간사님 추천으로 토의 자리에 갔는데 어떤 회원분이 오시더라고. 처음 보는 분이었는데. 그분은 진짜 어떤 담론, 쟁점, 현안이든 다 페미니즘 문법으로 환원을 하는 재주를 부리더라고. 나는 남자라는 이유로 일없이 비난을 받았어. 나는 잠재적 가해자라는 시선이 싫고 조심스러워 엘리베이터 탈 때도 머리에 양손을 올리는 사람이야.

저 형은 왜 저런 이야기를 했던가. 억울하고 분하고. 난생처음 겪는 일에 황당한 상태였던지라 두 달의 활동 기간에 비교적 선명하게 남았던 하루의 기억이다.

그 뒤로도 필자에게 페미니즘은 그저 그런(나쁜 의미가 아니라 Being의 의미로) 모양으로 여겨진 어떤 문화 같았다. 그들은 끊임없이 주장하고, 요구하며 불만을 내비쳐 세상을 바꿔놓으려는 의지로 가득했다.

시선의 결이 바뀐 건 최근이다. 입에 담기도 힘든 상스럽고 천한 혐오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놓는 자들이 등장했다. 그들의 변인 즉, 우리도 그간 그런 표현의 피해를 보았고 그런 기간이 길었으니 똑같이 돌려줄 때가 됐다.

그러니 이건 우리 이전에 소위 남자들이 자행한 혐오에 대한 미러링이며, 이것은 혐오가 아니라고. 모를 듯한 말이었다. 거듭 그들의 주장을 돌려서 읽었지만, 필자의 짧은 머리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어쩌면 저것은 이 세상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의 논리일지도).

일의 전후 관계가 어찌 됐든 인과가 어떻든 혐오는 혐오고 나쁜 건 나쁜 게 아닌가. 필자만 그런 생각은 아니었는지 비슷한 논거로 반론이 달렸다. 이어 돌아온 그들의 답은 역시 어려웠다.

생각이 짧고 공부가 부족한 상태이며 늘 우대받던 지위에서 약자이자 소수자의 핍박과 박해를 이해할 수 없을 테니 반성하라.

문제의식은 최근에 짙어졌다. 소위 진보를 주장하던 사람들의 작태가 한심스러워져 버렸다. 이제는 세간의 대표어로 자리한 ‘내로남불’, 즉 이중잣대의 문제가 너무 보였다. 그들의 논리는 이런 식이었다.

전 정권에서 이런 일이 있어 우리는 비판을 했고 그 불의한 시대에 그것은 합당한 요구였다. 정권이 바뀌어 우리는 부득 전 정권과 같은 비위를 벌이는데 이것은 아직 불의한 시대를 청산하지 못한 오늘에 있어 어쩔 수 없는 현실적 방안이다. 이를 비판하는 것은 불의한 전 시대의 정권을 옹호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대체 이것은 뭐란 말인가. 더불어 페미니즘의 문제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해롭고 악하며 더러운 짓들을 벌이는 (소아성애, 장애인 비하, 소수자 아웃팅 등)집단을 페미니즘의 범주로 받아들여 응원하고 북돋는 저 병리 너머엔 어떤 논리와 누가 있을까.

<그 페미니즘이 당신을 불행하게 하는 이유>(오세라비·박가분·김승한·박수현 공저 / 리얼뉴스 출판)

그래서 만나게 된 책 하나. 인터넷언론 <리얼뉴스>에 게재된 칼럼과 기사들이다. 범주를 나누고, 편년식으로 정리돼 있어 우리 시대 어떤 경향을 볼 수 있다. 이른바 진보와 여성계, 정의와 억압이라는 가치를 독점하는 두 축이 시중 상식과는 거리가 먼 주장과 논리를 펼치는 모습과 이를 비판하는 논자들의 이야기다.

칼럼과 기사인지라 아무래도 잘 안 읽히기는 하나, 정치, 경제 등 거시 담론에서 대회전을 벌였던 현실 한편에서 여성, 문화 등 분야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논쟁을 주고받았는지 알고 싶다면 읽어볼 만한 서적이다.

대표적인 대목은 지난시기 페미니즘의 담론과 운동 양태다. 지금 이 나라에서 활개를 치는 중인 이른바 급진적 페미니즘은 서구에서 1970년대 이미 한 순 돌았던 담론과 운동이었다. 즉, 새로운 무엇이 아니라는 의미다.

요즘은 여자대학가에서 누가 더 급진적이고 발칙한 묘사와 주장을 선점하는 지가 그의 선명성과 힙함을 보여준다는데, 반갑지 않은 뉴트로라고 생각했다. 1920~40년대 식민치하에서 일종의 지위재(地位財)였던 마르크시즘과 같은 식이라고 보이고, 이 역시 우리 고유와 자생이 아니라 서구에서 이식된 이념을 가지고 지지고 볶는 일이 돼버려 입맛이 쓰다.

그러면서 가장 극렬한 페미니즘 경향을 보인 노르딕 국가에선 페미니즘을 넘어서, 휴머니즘에 기반한 이퀄리즘적 주의주장이 첨단이라고 한다. 남녀 공동 징병제를 정착하는 연유에는 그런 논리가 있다.

달을 두고 달이라고 이르는 게 누군가에겐 불편하고 자신의 이익을 침해하는 진술이 돼버리는 이 시절의 풍경은 슬프다. 달을 두고 해라고 하든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묘사해야 하는 등 논리가 뒤스러진 시대에 사는 것 같다.

페미니즘이란 담론이 불같이 일어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누군지를 특정하면 왜 그들이 죽자고 담론을 주장하는지 알 수 있다고도 책은 말한다.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같은 정치권력형 여성단체, 강단 페미니즘 세력, 정치권력형 여성단체에서 당적과 감투를 받은 민주당 내 여성 의원들까지 이들로 대별되는 이른바 페미니즘은 대다수 소외당하고 노동현장에서 헐하게 취급받는 여성들을 대표할 수 없다고 책은 주장한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여성단체들과 함께 지난해 8월 10일 경찰청 정문 앞에서 경찰의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출처 한국여성단체연합)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이 정권과 더불어 소위 진보, 여성 담론 생산자, 향유자들을 향한 비판과 경멸이 심상찮다는 이야기를 나눈다. 상식과 합리의 선을 넘어선 그들의 행보와 주장이 위태롭게 느껴진다.

30여년 동안 진보라고 여기며 살아왔던 필자 역시 그들의 경직적이고 교조적인 행태에 ‘본 투 리버럴’이었구나 새삼 정체성을 찾아가는 중이다.

“개량주의자로서 현실은 끊임없이 개량돼야 한다”라는 구절을 눈여겨보았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수십년 팔공산 갓바위처럼 군림하던 모든 진보 담론, 여성 담론을 새롭게 바라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더 늦으면 정말 ‘정치적 올바름’주의자들을 향한 질색으로 집권한 트럼프 같은 인물들이 등장할 수도 있을 듯하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