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자유의 최전선 ‘홍콩’

[리뷰] 구라다 도루·장위민 <홍콩의 정치와 민주주의>

#1 11월 17일 서울 서교동의 한 갤러리에서 전시회가 열렸다. ‘신문에 보이지 않는 전인후과(前因後果: 전에 원인이 있으면 후에 그에 따른 결과가 옴)’란 표제가 붙은 이 행사는 홍콩에서 진행 중인 시위를 담은 사진과 영상을 공개하는 전시회였다. 장내는 인파로 가득했다. 홍콩 행정, 치안 당국이 시민을 상대로 벌이는 폭력 진압과 탄압받는 시민들을 보며 많은 사람의 눈이 깊어졌다. 검은 마스크를 쓰고 식장을 안내하는 홍콩 출신 유학생들은 시종 진지한 태도로 사람들의 물음에 답했다. 중국 본토 유학생들의 해코지는 없느냐고 묻자, “그런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고 답했다. ‘아직’이란 부사어에 마음이 쓰였다.

#2 지난 24일 치러졌던 홍콩 행정지구 구의회 선거에서 홍콩 시위를 지지하고 독립을 여망 하는 정치세력이 압승을 거뒀다. 올해 6월부터 본격화됐던 송환법 개정안 반대 시위가 일부만의 움직임이 아님을 방증하는 선거였다. 2020년으로 예정된 우리의 국회 격인 입법회 선거에서 재차 거둘 승리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도 했다. 지금 홍콩은 뜨겁고 용감한 홍콩 시민들은 자유의 최전선에 서 있다.

사진 1. 11월 17일 서울 서교동에서 열린 홍콩에서 진행 중인 시위를 담은 사진과 영상을 공개하는 ‘신문에 보이지 않는 전인후과’ 전시회
사진 2. 11월 17일 서울 서교동에서 열린 홍콩에서 진행 중인 시위를 담은 사진과 영상을 공개하는 ‘신문에 보이지 않는 전인후과’ 전시회

한 번 가본 적 없는 나라. 홍콩을 다녀왔다는 한 선배에게 홍콩이 어떤 나라였느냐고 물어보니 “홍콩? 네 맛도 내 맛도 아니고 이도 저도 아닌 거 같아. 아주 묘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건 무슨 말인가. 홍콩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도서관에서 ‘홍콩’이란 키워드로 책을 검색했다. 책 제목엔 주로 서술어가 붙었다. ‘취하다, 즐기다, 반하다, 만끽하다.’ 홍콩 시민들은 신체를 걸고 저 크나큰 중국 패권주의에 맞서 싸우는 중인데 우리는 그저 홍콩을 소비하고 발가벗겨 노는 데 집중하는 듯했다. 행여 누가 우리더러 홍콩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고 물어온다면 뭐라 답해야 할지.

그러던 중 책 한 권을 만났다. <홍콩의 정치와 민주주의>라는 책이었다. 출판사 이름(한울)에서 진한 학술풍이 느껴졌다. 서둘러 들춰보니 이 책이라면 홍콩이라는 나라의 개론서쯤은 돼줄 수 있다고 느껴졌다.

<홍콩의 정치와 민주주의>(구라다 도루·장위민 지음 / 한울 출판)

책은 홍콩의 역사를 훑어내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영역에서 홍콩을 조망한다. 중국의 한 변방에서 아편전쟁을 거쳐 영국의 식민지가 된 뒤 잠깐의 일본 식민지 후, 영국과 중국의 반환협정을 통해 다시 중국의 특별행정구역이 된 ‘대상’으로서의 홍콩 이야기가 아니다. 홍콩 사람들이 거대한 국가의 장기판이 아니라 스스로 사고하고 요구하고 갖춰가는 모습, 하여 세계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극강한 개성의 나라로 오늘날까지 어떻게 건너왔는지 알려준다.

중국 정부에서 파견돼 홍콩 관련 행정을 담당하는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약칭 중련판)초대 주임은 홍콩을 일러 “홍콩은 한 권의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다”고 말했다. 봉건에서 근대로 넘어가던 중국, 당시 세계 최강 제국이었던 영국, 군국주의 일본까지 여러 문화와 제도가 혼효되고 정제돼 오늘에 이르렀기에 홍콩은 도무지 짐작되기 어려운 나라이며 “난해한 책 한 권을 읽은 뒤 곧 같은 정도 두께의 속편과 부록이 출현하는 홍콩이라는 이야기 집”인 것이다.

책에 따르면 홍콩은 여러 인종이 모여 살았던 한편 난민도시 성격이 짙다. 국공내전을 피해 들어온 사람들과 49년~50년 중국 공산당이 싫어서 온 유학자들을 비롯한 사람들, 이어진 문화혁명과 대약진운동 시기에 건너오는 이들까지. 이들은 애초 망명하는 기분으로 잠깐 건너왔다. 언제든 저 나라(중국)가 정상으로 돌아오면 다시 돌아가야지 하는 마음이었기에 제도를 요구하거나 세법을 변형하거나 하는 기대가 없었다. 거기에 영국이라는 식민 모국 역시 홍콩을 호주나 뉴질랜드처럼 자치령화 시키려는 정책으로 최대한의 자치와 자율을 존중해 주었다.

예나 지금이나 홍콩을 상징하는 낱말이 ‘자유’인 이유다. 동아시아 최고의 중계무역항에 이어 세계 최고 수준으로 개방된 금융시장, 더불어 부패와 비위를 용납할 수 없는 자유 시민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반부패수사처 염정공서(1974년)를 만들었다.

‘자유’라는 가치에 더해진 ‘합리’는 몇 mg이나 몇 cm라도 다르게 금액을 매기고 책정하는 첨단자본주의가 자라게 된 풍토였다. 중국의 간섭도 없고 영국은 최대한 자율과 자치를 용인한 이 1970년대가 ‘3번가의 석양’이라 불리는 홍콩의 화양연화 시기였다. 정부의 산업진흥정책도 궤도에, 공공주택 공급도 원활했고 이에 대다수 중산층으로 성장해 이를 바탕으로 영화, 문학 등 문화도 만화방창했다. 아시아의 4마리 용(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에서 정부 주도의 독단적 성장이 아니었다는 데서 홍콩의 성장은 특히 결을 달리한다.

암운이 드리워진 시기는 90년대 말. 태국 바트화 위기에서 시작된 동아시아 외환위기로 홍콩의 황금기는 저물어간다. 홍콩까지 이어진 연쇄위기에서 외환방어에는 성공했지만, 부작용으로 금리가 폭등하고 부동산값이 폭락한다. 이 파국을 틈타 한창 성장 가도를 달리던 대륙 자본이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90년대 말 경제위기에 97년 영국의 홍콩 반환이 겹쳤다. 당시 중국 주석 장쩌민은 반환기념사에서 홍콩의 자치를 전적으로 인정하며 50년간 일국양제(一國兩制: 한 나라 두 제도)를 지켜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홍콩 내부로 들어온 중국 자본에 의해 이 자유롭고 이성적이며 개성적인 나라는 망가져 버린다. 우선은 부동산값. 천정부지라는 말이 머쓱할 정도로 올라갔다. 오래됐지만 아름다웠던 구 점포들을 비롯한 홍콩 전래의 생활공간을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대륙에서 살러 오거나 관광하러 온 이들을 위한 명품관, 귀금속점 등이 들어선다. 주택가격도 앙등해 홍콩 시내에서 거주할 수 있는 홍콩 시민은 현재 극소수뿐이라고 한다. 홍콩에선 이를 두고 지산패권(地山覇權: 부동산 업자의 횡포), 당관상구결(黨官商勾結: 중국 공산당, 홍콩정부, 재계의 유착)이란 말이 돈다. 실제 이번 시위 저간에 깔린 분노에 부동산이라는 요소는 적지 않다.

사진 3. 11월 17일 서울 서교동에서 열린 홍콩에서 진행 중인 시위를 담은 사진과 영상을 공개하는 ‘신문에 보이지 않는 전인후과’ 전시회
사진 4. 11월 17일 서울 서교동에서 열린 홍콩에서 진행 중인 시위를 담은 사진과 영상을 공개하는 ‘신문에 보이지 않는 전인후과’ 전시회
사진 5. 11월 17일 서울 서교동에서 열린 홍콩에서 진행 중인 시위를 담은 사진과 영상을 공개하는 ‘신문에 보이지 않는 전인후과’ 전시회

여기에 대륙에서 하루건너 밀려오는 관광객. 던적스럽고 무례하며 불결한 그들의 행태에 불쾌감과 혐오를 느낀 홍콩 시민들이 대다수였다. 양 측의 갈등이 연일 이어지고 급기야 이를 두고 베이징에서 한 석학이라는 자가 “홍콩인은 영국의 개”라는 촌평으로 깔아뭉개는 일도 벌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패권 확장일로인 중국 정부가 일국양제를 훼손하며 홍콩의 행정을 침범하려 들고(우산운동의 원인이 되었던 2014년 8월 31일 행정장관 지명위원회 수호 선언. 행정장관 후보자를 중국 정부가 지정하는 지명위원회에서 선별하겠다는 의미), 범죄인이라는 이름을 빌려 중국정부에 반하는 반체제 인사, 독립 언론 인사 등을 본토로 소환하겠다고 하니 홍콩 시민들이 참지 않게 된 것이다(이밖에 중국 체제를 칭송하는 교육과정을 강제로 이식해 공부하게 하는 국민교육법, 9성조에 달하는 광둥어 번체자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게 하는 중국 정부(중국 본토는 4성조 베이징어 간체자)의 배후 공작 등이 송환법 사태 전 홍콩 시민들을 분노하게 했다).

지난 9월 홍콩의 캐리람 행정장관은 송환법 개정안을 철회하겠다고 했으나 아직 그때 붙은 항쟁 불꽃은 사위어들지 않았다. 홍콩 시민들은 행정당국과 중국 정부를 믿지 못하는 모양. 저항은 아직 이어진다.

어릴 때 필자의 집은 비디오 가게를 했다. 필자는 그 수많은 비디오 가운데서도 홍콩 영화를 좋아해 홍콩 키드, 침사추이 보이, 몽콕 소년이었다. 주윤발의 의리와 이소룡의 혼, 주성치의 재치, 이연걸(사실은 김용)의 무협, 왕정의 느와르, 오우삼의 스파이(성룡은 논외다)까지 당시 필자의 영혼을 사로잡았다. 책을 보니 왜 당대의 홍콩 문화가 만발했으며 그러한 표현으로 나타난 건지도 설명이 돼 있다.

난민사회란 특성에 자유란 가치가 끼어들어 이 넓은 강호와 무림, 잔인하리만치 깎아지른 세계에서 내 자신의 기술을 믿고 의리와 도리를 지켜가며, 각박한 사방에 유머와 위트로 임기응변하는(주성치의 캐릭터는 김용의 소설 <녹정기> 속 위소보와 맞닿아 있다)능력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깔끔하고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에도 예민할 듯한데 그렇다고 남에게 주는 피해는 끔찍하게 생각하는 홍콩 시민들에게 중국 대륙의 간섭과 침투는 강호에 떨어진 도의, 배신과 협잡에 너덜너덜해진 의리 같은 사건일지도 모르겠다.

여러 강국의 지배와 식민시기를 거쳤는데도 지켜온 홍콩(시민)의 자유가 지금 백척간두에 서 있다. 홍콩 영화를 보고 스타들을 동경하며 자랐을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리와 연대가 그들에겐 귀하고 절박하다. 이젠 그만 취하고, 반하고, 즐기고, 만끽할 때도 됐지 않은가.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우선 이 책 <홍콩의 정치와 민주주의>를 들고 진짜 홍콩을 알아보자.

지금 필자의 귀를 흐르는 곡은 ‘영웅본색’ OST ‘당년정’이다. 여러 형님 우상들의 연기로 배운 ‘의리’와 ‘용기’를 기억하며,

加油! 自由 香港!(힘내요, 자유 홍콩!)

한편, 홍콩 시민들이 현재 요구하는 이른바 5대 조건은 대륙에서도 우호적으로 받아들이는 수준이라고 한다. 일국양제에 어긋나지 않는 바들이라며. 지난 28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홍콩 인권법안에 서명을 마쳤다. 홍콩 시위 사태에 깊고 무거운 침묵을 이어가는 이 정부를 규탄한다. 모쪼록 홍콩에 자유와 평화가 다시 찾아오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