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혁명’에 정의당을 위한 자리는 없다

[글 싣는 순서]

  1. ‘촛불혁명’에 정의당을 위한 자리는 없다
  2. 당원이 바라본 정의당의 ‘짓밟힌 당내 민주주의’
  3. 정의당 ‘메갈리아 사태’로 어떻게 무너졌나
  4. 정의당, ‘그들만의 진보정당’은 무한 반복된다

‘촛불혁명’에 정의당을 위한 자리는 없다를 주제로 4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편집자주

한 정의당원이 바라본 ‘심상정 대선 후보가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이유’

지난 10일, 지난 4여 년 간 대한민국 국민에게 고통만을 안겨 온 박근혜 정권이 결국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으로 몰락했다. 이는 박 정권과 비선 측근들이 벌인 부정부패, 그 밖의 추잡한 행위들을 끝까지 추적하고 밝혀낸 정치인들과 특검, 그리고 이들을 굳게 믿고 기다려준 시민들이 거둔 승리다.

이제 많은 유권자는 상처뿐이었던 ‘이명박근혜’의 9년을 넘어 새 시대에 대한 희망을 품고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기다리고 있다. 불투명한 국정운영과 짓밟힌 민주주의, 불통으로 일관해온 무능한 지도자에 대한 심판의 순간이 곧 다가올 것이다.

출처 YTN

이제 모든 이들의 관심사는 차기 정권을 향하고 있다. 어떤 정당의 어떤 대선 후보가, 어떤 사람들을 데리고 어떤 정책을 펼쳐나갈지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감이 상존하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의 유권자들은 ‘촛불’로 대표되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심판과 적폐 청산을 원하는 측, 그리고 ‘태극기’로 대표되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보호와 현 시스템의 유지를 원하는 측으로 나뉘어 각자가 원하는 다음 정권을 창출하려 노력 중이다. 가족과 함께하는 식탁에서 이런저런 정치적 의사를 표출해 가족들을 설득하는 방식이 됐던, 원하는 정당에 가입해 지지하는 후보를 위한 직접 행동하는 방식이 됐던지 간에 말이다.

필자는 정의당 당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은 정의당에 적을 두고 있는 유권자다. ‘촛불과 태극기’ 중 한쪽을 고르자면 당연히 ‘촛불’ 측에 공감하는 입장이며, 당연히 차기 정권에 요구하는 기준 또한 지난 9년 동안 쌓여온 적폐 청산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한 정당에 적을 두고 있음에도 직접적인 행동을 옮기긴커녕, 가족에게 ‘내가 있는 정당의 대선 후보를 찍어 세상을 바꿀 수 있게 도와달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필자가 직접 지켜본 지금의 정의당은 결코 ‘촛불’ 성향의 유권자가 원하는 정당, 적폐 청산과 부패한 정치인들에 대해 심판을 해낼 집단이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의당은 일찍이 ‘자기들만의’ 치열한 경선을 통해 당의 대선후보를 결정지었다. 50.62% 투표율, 80.71% 득표율로 정의당을 대표하게 된 후보는 다름 아닌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였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정의당은 노회찬 아니면 심상정이라는 세간의 조롱에 신선한 반박을 하지 못하고 또다시 ‘무난한 답변’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 ‘무난한 답변’조차 들어주는 유권자는 몇 되지 않았다. 지지율은 언제나 그렇듯 ‘기타 후보’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출처 jtbc 썰전

그렇다면, 왜 심상정 후보의 지지율은 오르지 않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수십 년간 같은 대답을 해오는 자들이 있다. 간단하게 말해, 이들에게 모든 문제는 ‘거대 정당들이 독식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치 구조’에 있다. 그들은 항상 ‘그 누구보다 항상 문제에 대해 외쳐왔거나’, 혹은 ‘광장에서 가장 열심히 싸워온’ 자들이다.

하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현실 속에서 그들의 노력은 결국 대중들의 무관심 속에 버려진다는 것이 수십 년간 침대 위에서 집권만을 꿈꿔오는 몽상가들의 한결같은 대답이다. 자신이 항상 깨끗하고, 언제나 결백한 피해자의 위치에 있다고 믿는 이들 말이다.

<미디어오늘>이 심상정의 오르지 않는 지지율에 대한 기사를 게재했다. 이 기사의 내용 또한 피해의식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은 케케묵은 관점의 기사였다. <미디어오늘>은 심상정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원인 세 가지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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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심상정 지지율은 왜 안 오를까

첫째,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성향이 아닌 ‘당선 가능성’을 보는 성향이 있기에 당선될 확률이 존재하지 않는 심상정은 지지율이 나오지 못한다. 둘째, 심상정의 여성주의와 젠더 감수성에는 크게 공감하지만, 정의당 전체의 ‘여혐적인 분위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 셋째, 심상정이 여태까지 진보정당의 역사 속에서 보여온 행각들에 적대심을 가진 유권자들의 존재가 그 이유란 것이다.

출처 연합뉴스TV

유권자가 문제라는 기사에 대한 반발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당장 필자의 주변에 있는 정의당원, 혹은 탈당한 전 당원들은 기사에 대한 비판을 쏟아 냈다.

여전히 ‘바보야, 문제는 유권자야!’라는 시대착오적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관점도 문제였지만, 애초 약 3만5000명 안팎이었던 당원의 수를 5만명으로, 1000여명의 탈당자 숫자를 2만여명으로 부풀리는 등의 사실관계조차 틀렸기 때문이다.

이에 정의당에서 선출직 당직자로 일했던 전 관계자는 반박 기사를 작성해 해당 언론사에 기고하겠단 의사를 전달했으나, <미디어오늘>은 처음엔 받아주겠다는 답변을 했으나 다음날 입장을 바꿔 데스크 차원에서 반박을 거부했다.

이에 대해 <미디어오늘>은 최초 정의당 당원이 반론 취지를 밝히고 글을 보낸다고 했을 때 데스크에서는 글을 보낸다는 당원을 포함해 정의당 관계자의 목소리를 취재해 후속 보도를 하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데스크에서 기고를 반대했다기보다 당사자에게 전달했듯이 평가가 다를 수 있는 부분을 보강해서 후속 취재하려는 의도가 온전히 전달되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리얼뉴스>에 해명했다. 편집자주

진보정당의 주류를 차지해온 선민의식에 가득 찬 엘리트주의자, 소위 ‘활동가’란 자들에게 있어 이보다 좋은 명분은 찾기 힘들다. 이들은 기득권 언론의 기사를 명분으로 앞세우는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처럼, 모든 반박을 거부한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기사’를 앞세워 활동의 근거로 삼는 것을 더없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 글을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칭 활동가’들은 그들의 명분을 기사화해 동네방네 떠들 권리가 있고, 이는 반드시 존중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필자는 필자대로 여태까지 지켜본 정의당의 모습, 직접 몸으로 느껴온 정의당의 현실에 대해 글을 써 의도적으로 조명되지 않고 있는 진보정당의 그림자를 알려야만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앞으로 필자는 지금의 정권 교체의 바람 속에서 정의당과 심상정 후보의 위치가 미약한 이유를 유권자의 탓이 아닌 정의당과 후보 자신에서 찾고자 한다. 하지만 수많은 이유를 한 번에 쓰기엔 지면이 부족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세 가지 측면을 위주로 조명할 계획이다.

다음 주제는 필자가 짧은 시간 동안 정의당의 미래에 대해 좌절하게 된 이유인 ‘당내 민주주의’이다. 필자가 직접 부딪혀보고 싸워오면서 보고 들은 문제에 대해 가감 없이 솔직하게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