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뒤덮인 부산 광안리 수변공원, 구조적 문제로 접근해야

임형찬 승인 2016.05.10 17:43 | 최종 수정 2022.07.11 17:19 의견 0

지난 연휴 기간 시민이 버린 쓰레기로 뒤덮인 부산 광안리 수변공원에 대한 반응은 둘로 나뉜다.

첫째, “우리나라 국민성은 아직 멀었다”

사회 윤리적 법적 수준은 개인의 준법정신 수준에 따라 변화한다. 무지한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계몽"하고 "계도"해야 한다.

둘째, “쓰레기통이 부족하거나 없네”

사람은 본래 이기적인데, 사회 구조적인 장치만 있으면 충분히 탈법과 위법을 막을 수 있으며, 준법정신도 지켜진다. 준법정신에 대해 방관자 효과가 일어나지 않도록 유인과 구조적 장치가 더 중요하다.

부산 광안리 수변공원(출처 부산 경찰 페이스북)

이 수변공원을 보면 미관을 위해서인지 쓰레기통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체로 사람들은 주체적인 시민의식을 발휘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타인의 지배를 받는다.

심리학에서 3의 법칙(the Rule of 3: 동양에서는 ‘삼인성호’라고 일컫는)이라고 하는 것처럼 아무리 도덕적인 사람도 여러 사람의 '탈법' 행위에 준법정신은 급격히 낮아지게 된다.

반대로 도덕적이지 않은 사람도 여러 사람의 ‘모범적이고 영웅적 행위’에 대해서 영향을 받아 동참하게 되기도 한다.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 가만히 있다가 화마에 희생된 희생자와 세월호 참사 당시의 가만히 있었던 아이들이 딱히 둔감하거나 위기의식이 낮은 것이 아니다.

대체로 희생자들은 현상 유지를 하는 사람이 다수인 위치에서 희생되었다. 만약 대구 지하철 참사의 객차나 세월호 참사의 객실에서 3~4명의 사람이 적극적 탈출 시도를 했다면 ‘자리를 지켜달라’라는 통제는 통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상황을 주로 ‘동요되었다’라고 표현하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군중의 동요’는 고정변수에 해당한다. 그것을 막기 위해 움직이지 말고 완벽히 통제될 수 있는 상황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질서 정연하게 이동’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러한 현상을 보고 '국민성'을 헐뜯으며, '계몽'과 '계도'의 필요성은 언제나 지배자에게 유리하다. 지배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엘리트의 특별한 계급 의식을 강조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그러나 지배 계급의 부정부패에 단골 변명이 '관행'이다. 이 관행이란 동종 업계 다수의 행위 양식에 책임을 묻는 것이다. 결국, 그 엘리트라는 사람들도 개인으로서 주체적인 의식 수준이 발현되어 행동하기보다 '유인'과 '구조적 틀'에서 윤리적 수준이 결정되고 있다.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은 뉴욕 지하철과 할렘가를 바꿨다. 더럽고, 악취가 나며, 치안이 좋지 않은 지역 분위기를 바꾸기 시작했다. '깨진 유리창 효과(Broken window theory)'를 이해하고, 시민의식을 탓하기보다 시정의 구조적 문제로 접근했다.

지금은 뉴욕 할렘가를 이전의 할렘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전의 시장들은 '흑인'의 의식 수준과 저열함을 강조했지만, 줄리아니 시장은 흑인 본연의 의식, 교육수준이 아니라 그 유인 환경에 집중했다.

쓰레기로 뒤덮인 부산 광안리 수변공원을 두고 국민성을 이야기하는 부산 경찰이나 <한겨레>나 틀렸다. 당신들은 첫 번째가 아닌 두 번째의 반응을 이야기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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