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쌍의 상가임대차 분쟁과 사회적 운동의 한계

임형찬 승인 2016.07.12 17:24 | 최종 수정 2022.12.09 13:42 의견 0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이던 순간, 당시 여중생이었던 신효순, 심미선 양은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의 한 지방도로에서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졌다. 당시 이 사건에 분개한 수많은 사람이 전국적인 반미 운동을 벌였다.

지엽적으로만 보면 ‘두 여중생’이라는 상징적 개인들의 불행한 참사로 촉발된 것 같지만 사실 당시의 국민적 감정의 기저에는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에 대한 불만이 내재한 상태였다.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그해 초반에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서 벌어진 안톤 오노 사건과 신효순, 심미선 양 사고는 불공평한 한미 관계에 대한 불만에서 하나의 기폭제 역할이었다.

그런데 당시 SOFA 개정 요구 시위에서 두드러진 점은 과거 강경파들이 주도했던 대중을 향한 극단적 충격 요법이 사라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는 1980년대 운동권 투쟁 방식의 흔적은 많이 남아있었다.

즉, 과격한 방식들이 많이 남아있었는데, 대학가에도 이러한 흔적들이 남아서 필자 또한 그러한 충격 요법을 자주 목격했다.

그 충격요법이란 희생자의 사진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즉, 시위 도중 상처를 입거나 혹은 사건 희생자의 사진을 가감 없이 공공연하게 게시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독자들은 매우 충격이겠지만 압사당한 두 학생의 시신 사진을 대학가 정문에서 게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1980년대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없던 시절에는 왜곡됨이 없이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이기도 했다.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의 사진과 87년 민주화 당시의 현장 사진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2002년에는 그럴 필요까진 없었다.

이미 두 여학생의 죽음은 한미 관계라는 서사의 일부에서 하나의 상징이 되었고, 그 이상 희생자 개인이 사회 문제의 들어올 필요가 없었다.

즉, 희생자 시신 사진 게시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개인을 고려하지 않는 명백하게 휴머니즘이 빠진 방법이었다.

사진=리쌍
사진=리쌍

최근 신사동에 소재한 리쌍 건물에 대한 일부 진보적 인물들의 행동을 보면 그때가 종종 떠오른다. 당시에는 SOFA 개정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가 있었다.

지금도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서 환산보증금 기준 확대와 계약 기간 보호에 대한 공감대가 충분히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적 문제의 서사 속에서 구조와 구분된 개인을 지나치게 희생시킨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떤 이는 실정법의 ‘미비’를 이유로 정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실력 행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가임대차 문제의 서사에서 진보란 한계가 명백한 실정법을 무력화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물론 최초의 분쟁은 세입자에게 지나치게 불리한 당시 현행 법률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으며, 환산보증금과 권리금 문제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가 있었기에 리쌍과 세입자의 사례는 상가임대차 문제의 상징적인 사건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문제는 비록 개정된 법률 또한 구조적 한계가 따르더라도 그 구조에 리쌍과 세입자가 상징적 사건이 될 여지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리쌍이 현행법이 요구하는 의무 이상으로 세입자와의 타협에 응했고, 보상까지 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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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분명 상가임대차 분쟁의 한 사례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엄연히 재산권을 가지고 이익을 누려야 할 한 개인이라는 점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현재로써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의 맹점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례가 되기 어려운 사건임에도 ‘맘상모’와 몇몇 전·현직 국회의원들이 타협을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

사회적 운동에서 한 개인이 서사의 상징이 되는 것은 사회적 구조와 법률 속 맹점에서 맥락 일부로 작용할 때이다.

그러나 구조적 맹점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면 지극히 사적인 일이다. 제3자가 이러한 사적인 일상과 행위에 종용 혹은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그 자체가 폭력이 되어버린다.

현재 리쌍 상가임대차 분쟁은 사실상 이전과 달리 지극히 개인과 개인의 재산권 분쟁에 해당한다.

즉, 민법이라는 실정법으로 분쟁을 해결해야 하며, 법원의 판단까지 끝난 상태라면 그 상황에서 ‘실정법의 한계’를 운운할 수는 없다.

일부 언론이 보도하는 것처럼 강제집행의 폭력성 여부는 ‘쟁점’이 될 수 없다. 세입자가 점유를 함으로써 지속해서 재산권 행사를 방해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 법으로 용인하는 것이 강제집행이다. 이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모두 존재하는 법적 절차이기도 하다.

이번 리쌍과 상가임대차 분쟁은 지극히 개인 간의 분쟁에 관여할 권한이 없는 제 3자와 국회의원이 개입하는 형태가 되어버렸다.

과연 여기서 세입자들의 실질적인 목표인 법률 개정이 이뤄질지는 회의적이다. 오히려 여론을 부정적으로 이끌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환기를 위해서 ‘상징’과 ‘자극’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때로는 그 사안을 잘 구분해야 한다. 개인과 사회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회적 운동은 그저 ‘폭력’이며, ‘민폐’일 뿐이다. 그러한 역풍은 부메랑처럼 되돌아와서 진짜 약자들을 옥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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