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보다 인성교육이 필요한 웹툰 '서밤' 작가
김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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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7 16:04 | 최종 수정 2020.12.09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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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닷컴에 연재 중인 ‘서늘한 여름밤의 내가 느낀 심리학썰’(서밤)은 작가가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과정을 중도에 포기하고 자살예방기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그린 웹툰이다.
작가는 자신의 전공분야인 임상심리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관련 이슈가 있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해왔다.
특히 최근 오랜 기간 교제하던 남자친구와의 결혼을 계기로 자신의 친부모 혹은 시부모와의 관계 맺기에 대한 고민과 해법을 그려내 동년배 여성들과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해 왔다.
하지만 이번 설 연휴를 앞두고 그린 ‘우리의 관계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라는 제목의 웹툰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거센 찬반 논쟁에 휩싸였다.
문제의 웹툰 내용은 이렇다.
작가는 설 명절 연휴에 남편의 친가에 방문하지 않기로 하고 남편은 이 사실을 부모에게 통보해 허락을 받는다.
그는 “며느리의 명절 불참을 수용한 시부모에게 고마워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오히려 시부모들이 자신과의 관계를 시작할 최소한의 조건을 통과했다고 시부모들과 잘해보자고 말하면서 끝을 맺는다.
페미니스트는 무례하고 극단적이며 이기적인 사람?
이 웹툰은 몇 가지 측면에서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명절에 시댁을 찾아가지 않는 것이야 개인의 일이기 때문에 그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명절에 주부들 가사노동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까지 비화하는 현실이기에 작가의 방법도 좋은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에 작가가 보이는 태도다.
그는 시부모에게 ‘왜 감사를 표해야 하냐’며 코웃음을 치면서 ‘조금도 고맙지 않기에 고마워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시부모가 ‘상대방 존중하기’를 실천했다고 대견스러워하며 감히(?) 시부모에게 잘해보자고 손을 내민다. 그리고 시부모는 아주 흐뭇한 얼굴로 그 손을 잡는다.
이 웹툰만을 놓고 보면 시부모는 작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본인들로서는 쉽지 않은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 한 걸음을 내딛기까지 시부모들뿐만 아니라 남편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은 물론이다.
이에 대해 작가는 고마워하기는커녕 ‘이제 겨우 한 걸음 내디뎠을 뿐이다’라고 말할 뿐이다.
그리고 싸움이 벌어졌으면 ‘25년간 모르고 살던 어떤 중년 부부’, 그러니까 시부모와 절연이라도 했을 것처럼 말한다.
그러면 과연 작가는 시부모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가? 또 앞으로 무슨 노력을 할 것인가?
이 웹툰만 보면 서밤 작가, 더 나아가 이에 공감하는 페미니스트들은 본인들의 요구만 내세울 뿐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려고 하지 않는 ‘이기주의자’, 관계가 틀어지면 단박에 끊어버리는 ‘극단주의자’,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표하는 데 ‘무관심하고 무례한 사람들’로 비친다.
그것도 매우 도발적인 방식을 사용하면서 말이다.
의도한 ‘고마워하지 않기’ 표현하기
이렇게 이번 화가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자 한국일보 측에서는 “설날에 각자 우리집 행, 감사해야 하는 일인가요”라는 제목으로 서밤 작가 부부를 인터뷰한다.
이 인터뷰에서 작가 부부는 “‘고마워하지 않겠다’라는 표현이 이번 화의 핵심이었다”면서 “반응을 의식해 표현을 달리했다면 주제가 바뀌었을 거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표현이 너무 셌다는 질문에 작가는 “물론 저도 표현이 친절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 부분에선 조금도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너무나 많은 사람이 가부장제 질서 안에서 타협하는 목소리만 내 왔다. 저는 제가 느낀 걸 솔직하게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다”고 본심을 드러냈다.
이 말은 본인의 사례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웹툰을 통해서 수많은 여성이 자신과 같은 길에 동참하기를 독려하기 위해 그렸다는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작가 본인이 계속 이야기하듯이 이 모든 것을 이해해 주는 남편이 없었다면 과연 가능했을까 싶다.
물론 이전 화에서도 계속 이야기했듯이 이해해 주는 남자친구가 아니었으면 결혼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어떤 면에서 작가는 자신의 특수한 상황을 과시하거나 한없이 이해해 주고 동참해주는 남편을 자랑하기 위해 계속 웹툰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의혹마저 드는 대목이다.
이 웹툰을 그리는 서밤 작가 본인의 심리분석을 해보는 건 어떨까?
어쨌든 작가는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사례들에 대한 심리분석을 통해 수많은 독자의 공감과 지지를 얻어왔다.
하지만 한 번쯤 이러한 웹툰을 그리는 본인의 심리에 대한 분석이 필요한 건 아닐까?
이번 기사가 나오고 작가는 자신의 블로그에 “때로 내 이야기가 10명 중 9명을 불편하게 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는 내 이야기가 내심 반가울 한 사람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작은 위안과 용기를 나눌 수 있다면 내 이야기는 그걸로 족한 것이다. 이런 소란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되니 반갑지 않은가”라는 글을 남겼다.
그렇다면 굳이 왜 10명 중 9명을 불편하게 하면서 소란을 일으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왜 10명 중 9명의 공감을 얻으면서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가? 역시나 프로불편러이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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