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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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0 13:09 | 최종 수정 2020.06.01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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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청와대에 남녀의 동등한 병역의무를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이 청원 동의자는 현재 10만명을 돌파했다. 일정 수 이상의 동의를 받은 청원에 답변하기로 한 청와대가 이에 대해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이번 청원에 대해 일각에서는 모병제가 더 바람직한 대안이라고 한다. 하지만 모병제가 징병제의 좋은 대안인지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모병제는 계층 간 국방 의무의 불평등한 분담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안보 분야의 민영화와 시장화를 재촉한다.
특히 모병제는 다문화 사회로 가면 갈수록 병역을 시민권 획득의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경향이 있다. 한 마디로 모병제는 로마제국 말기처럼 군대를 준용병집단으로 만들고 입대를 합법적인 시민권 매수수단으로 만든다. 지금 미국의 모습이 그렇다.
무엇보다 지금의 쟁점을 징병제 대 모병제로 모는 것은 사태를 왜곡한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이 채택한 징병제는 사실 징병제라기보다는 ‘노예제’에 가깝기 때문이다. 현재 군대에서 장병은 핸드폰 소지를 금지당하고 훈련 및 일과 후에도 사실상의 감금상태에 놓여 있는 등, 극단적인 인신의 구속과 기본권 침해 상황에 놓여 있다.
심지어 복무로 인한 ‘기회비용’에 대해 제대로 된 보상마저 없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의 병역거부를 망명 사유로 인정해주는 일이 발생할 정도다. 징병제의 모순에 대해 언제가 될지 모르는 모병제 전환을 대안으로 거론하는 것은 지금 당장 존재하는 극단적인 기본권 침해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
또한, 지금의 징병제는 징병제 본연의 모습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오히려 징병제는 역사적으로 봉건시대 영주와 그 부하 그리고 영주들로 이뤄진 군사집단을 타파하고 시민들이 자신들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협력한 진보적인 군사제도였다.
징병제의 본래 이상적인 취지는 군대를 특권계급의 부역 집단이 아닌 군복을 입은 시민의 군대로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징병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광주 5.18 민주화항쟁 당시에도 시민군이 자력으로 무장해 전두환의 군사반란군에 맞설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 역시 시민의 일원으로서 징병제에 동참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국방의 의무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성도 제1·2차 세계대전과 최근의 현대전에서 파르티잔과 방어전쟁의 전투원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남성 못지않은 활약을 했다. 이처럼 여성이 남성과 다를 바 없는 시민으로서 병역의무에 동참하는 것은 공평할 뿐만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역으로 여성에게 더 많은 기회와 사회적 진출영역을 부여할 것이다.
물론 혹자가 지적하듯이 국방의 의무는 병역의 의무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그런데 남성에게만 병역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남녀 모두가 사회적 안보(security)에 기여하며 기여해야 한다는 헌법적 사상에서 한참 멀어지게 된다.
그러나 양성징병이 실제로 실현되려면 몇 가지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첫째, 병사들의 부당한 인신구속(일과 후 외출 및 휴가의 자유 제한)은 물론이고 병사들의 임금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사회경제적 차별을 최대한 빨리 해소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생활에 대한 부당한 간섭(핸드폰 및 영외 물건 반입 제한)이 사라져야 할 것이다.
둘째, 대체복무제를 더 늘리고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대체복무수단을 늘리지 않은 채 무조건 징병 인력을 늘리는 것은 국방영역의 다양한 수요에 비춰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현재 양성징병과 같은 청원이 큰 공감을 얻는 이유는 역으로 징병제를 빙자한 노예제도가 장기간 지속된 것에 대한 문제 제기가 지금까지 주류언론과 정치권에서 별다른 사회적 이해와 공감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병역과 국방의무를 실질적으로 이행하는 국민의 기본적인 처우에 관한 앞서 전제조건(사회경제적 보상 및 대체복무 확대)이 충족되지 않으면,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는 이들을 ‘군복을 입은 시민’으로 대우하는 것과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결국, 이번 청원은 노예로 취급당했다고 느끼는 이들의 인정 투쟁인 셈이다.
누군가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독박’ 국방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군인이라는 신분을 노예에서 보통의 시민으로 환원해야 한다. 확실히 지금은 젊은 남성이 불균등하게 국방의 의무를 짊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의 젊은 남성에게 잠재적인 사회경제적 차별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말한 전제조건(군인은 군복을 입은 시민)을 충족하지 않는다면, 양성징병은 자칫 사회적 권리와 의무를 공평하게 나눠 가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있는 노예들을 두 배 더 늘리는 결과에 그칠 것이다. 이른바 ‘하향 평준화’이다.
한편 왜 양성징병에 대한 여론이 지금처럼 비등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지금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거나 수행할 젊은이들을 사실상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키고 제대로 된 시민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2년 남짓의 병역기간에 대한 ‘기회비용’을 보상하고도 ‘남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공무원 시험 군가산점제의 형태가 아니라면 다른 대안적인 사회경제적 보상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 재원이 부족하다면 군 복무 기간을 단축하든가 해야지 아무리 국가라 해도 개인에게 ‘무상의’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그런 인식이 너무나 부족했다.
심지어 페미니스트들도 군 복무에 대한 대안적인 보상이 가능하다는 견해를 내세우며 군가산점제 폐지를 정당화했으며, 실제로 폐지했다. 그러나 정작 그 대안적인 보상에 대한 논의는 그 이후에 없었다. 양성평등을 외치면서 남성의 군 복무와 관련된 사회경제적 차별에 침묵하는 것은 위선이다.
항상 자신이 부당한 표적이 된다고 즐겨(?) 억울해하는 페미니스트 자신들도 왜 불만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계 역시 ‘젠더문제’의 일환으로 향후 병역의무 분담 및 보상에 대한 논의에 진지하게 동참할 의무가 있다. 지금의 양성징병에 대한 일부 젊은 남성들의 요구가 부당하다면 더더욱 그렇다.
자신들이 그럴 의무가 없다고? 그렇다면 최소한 앞으로는 페미니즘이 남성에게도 도움이 된다, 페미니즘은 양성평등을 의미한다는 거짓말은 앞으로 안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경제학 박사. 프리랜서 작가. '그 페미니즘이 당신을 불행하게 하는 이유'(2019, 공저), '포비아 페미니즘'(2017), '혐오의 미러링'(2016),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2014), '일베의 사상'(2013) 출간. '2014년 변신하는 리바이어던과 감정의 정치'로 창작과 비평 사회인문평론상 수상과 2016년 일본 '겐론'지 번역.
박가분
paxwon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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