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속 미세플라스틱 여전히 걱정해야 할까

최지현 승인 2018.06.18 15:03 | 최종 수정 2022.07.12 12:31 의견 0
 

요즘

이 제품에 미세플라스틱 성분이 들어있다는데 괜찮을까요?

라는 질문을 많이 받고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이미 지난해 7월부터 사용이 금지됐다. 그런데 왜 이 성분을 걱정하는 걸까.우선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발행한 ‘화장품 안전기준 등에 관한 규정 해설서’에서 미세플라스틱이 금지돼 있는 것을 확인해보자. 사진 1. 식품의약품안전처 화장품 안전기준 등에 관한 규정 해설서 사진 2. 식품의약품안전처 화장품 안전기준 등에 관한 규정 해설서 사진 3. 식품의약품안전처 화장품 안전기준 등에 관한 규정 해설서.

55페이지에서 미세플라스틱이 ‘사용할 수 없는 원료’로 지정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지난해 배합금지 성분이 된 이후로 미세플라스틱이 들어있는 화장품은 시장에서 사라졌다. 모두 곡물가루, 과일씨 가루 등으로 대체했고 요즘에는 섬유소 성분인 셀룰로오스를 사용하는 추세다.

그런데 왜 미세플라스틱을 걱정하는 걸까. 뿌리를 파고 들어가 보니 바로 한 화장품전문가 때문이었다.

피현정이 선스틱 리뷰를 하면서 미세플라스틱 성분이 함유됐다는 이유로 여러 제품을 탈락시키는 영상이다.

이상하다. 선스틱에 미세플라스틱이 들어갈 이유가 없다.

미세플라스틱은 식약처가 정의한대로 ‘세정, 각질제거 등의 제품에 남아있는 5mm 이하의 고체플라스틱’을 의미한다. 구슬모양으로 생겨서 ‘마이크로비즈(microbeads)’라고도 부른다. 이렇게 작은 알갱이 모양의 고체플라스틱은 각질을 제거하는 용도로 클렌저나 각질제거 마사지 제품에만 첨가했었다.

선스틱에 넣을 이유가 전혀 없다.

이 영상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선크림 △프라이머 △파운데이션 △쿠션 △립 제품 등을 평가하며 미세플라스틱이 들어있다는 이유로 탈락시키고 있다. 미세플라스틱이 들어있을 이유가 전혀 없는 제품인데 말이다.

왜 이런 정보를 퍼뜨리는지는 그가 미세플라스틱 성분으로 꼽는 24가지 성분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피현정이 미세플라스틱으로 꼽는 성분들. 출처 피현정 블로그-그린피스

이 성분들은 모두 석유화학에서 유래한 폴리머다. △에틸렌 △프로필렌 △스티렌 △아크릴 △나일론 △우레탄 등을 가공해 만든 고분자 중합체이다.

하지만 이중에서 실제로 화장품회사들이 마이크로비즈로 가공해 썼던 고체 플라스틱은 폴리에틸렌이 유일하다. 나머지는 모두 미세분말, 왁스, 액체 형태로 가공돼 피막형성제, 점도증가제, 결합제 등으로 쓰인다. 미세플라스틱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폴리에틸렌조차도 미세플라스틱으로 쓰일 수도 있지만 분말, 왁스, 액체 등의 상태로 첨가해 피막형성, 점도증가, 결합제 등의 기능을 할 수 있다. 금지된 것은 각질제거 용도로 만들어진 고형 플라스틱이므로, 그 이외의 용도로 가공하면 얼마든지 화장품에 사용할 수 있다. 폴리에틸렌의 여러 가지 형태. 미세가루왁스, 고체 플라스틱부, 에멀젼 액체, 플레이크 형태의 왁스(상단 왼쪽부터 시계방향)까지 다양한 형태로 가공된다. 어떤 형태이든 성분표에는 똑같이 '폴리에틸렌'(구 명칭 폴리에칠렌)으로 표기된다.

폴리에틸렌의 여러 가지 형태. 고체 플라스틱부터 미세가루왁스, 플레이크 형태의 왁스, 에멀젼 액체까지 다양한 형태로 가공된다. 어떤 형태이든 성분표에는 똑같이 ‘폴리에틸렌(구 명칭 폴리에칠렌)’으로 표기된다.

그러니 피현정이 뭔가 단단히 잘못 알고 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쉽게 알 수 있다. 그녀가 주로 이용하는 화장품 정보의 출처가 EWG 등의 환경단체이기 때문이다. 24개 미세플라스틱 리스트도 출처가 ‘그린피스’라고 한다.

그린피스는 미세플라스틱에 있어서 매우 강경한 입장을 갖고 있다. 한국 식약처를 비롯한 모든 나라의 감독기관미세플라스틱의 정의“세정, 각질제거 등의 제품에 남아있는 5mm 크기 이하의 고체플라스틱”으로 규정한데 비해 그린피스“물에 씻겨 내려갈 가능성이 있는 모든 제품에 들어있는 5mm 이하의 고체 플라스틱”으로 정의한다.

그린피스 성명서
식약처, 미세 플라스틱 규제 제품군 2% 남짓으로 제한-환경보다 기업편 들어준 결정에 유감

이 기준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면 수많은 파우더 제품, 메이크업 제품, 심지어 기초제품들까지 모두 고체 플라스틱을 함유한 제품이 될 수 있다. 최대 크기는 5mm로 규정했지만 최소 크기는 규정되지 않았으므로 마이크로미터, 나노미터 크기로 가공된 미세한 가루 모양의 플라스틱 성분이 모두 미세플라스틱에 포함되는 것이다.

심지어 비타민C나 레티놀 등을 더 안정적으로 침투시키기 위해 활용되는 나노캡슐도 플라스틱 성분으로 코팅을 하는 원리이기 때문에 모두 미세플라스틱이 된다. 한마디로 원료상태에서 고체이면 어떤 용도로 어디에 쓰이든 다 미세플라스틱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셈이다.

과연 이 주장이 합리적인지 아닌지는 필자로서도 결론을 내릴 수 없다. 미세가루도 결국은 고체이므로 이것도 미세플라스틱이라고 주장하면 할 말이 없다. 이 역시 바다로 유입되면 플랑크톤의 먹이가 될 수 있으니 화장품 성분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역시 할 말이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리퀴드 제품 속에 분산돼 있는 플라스틱 입자를 과연 고체플라스틱이라 인정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또한 배합과정에서 플라스틱 성분을 완전히 용해시켜 에멀전화 한다면 실질적으로 이를 고체플라스틱이라고 말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24개 성분들은 원료상태에서 가루일 수도 있지만 왁스나 액체일 수도 있다. 폴리머는 여러 형태로 가공되기 때문에 화학명이 똑같아도 고체일 수도 있고 왁스일 수도 있고 액체일 수도 있다. 따라서 성분표만으로는 절대로 그것이 고체 플라스틱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아이섀도, 블러셔, 파우더 등 제품의 최종 형태가 고체라 해도 마찬가지다.

미국화장품협회가 운영하는 ‘코스메틱스인포(Cosmetics Info)’는 미세플라스틱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각질제거 용으로 사용되는 마이크로비즈 이외에는 어떤 화장품 성분도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에서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마이크로비즈 이외에도 몇 가지 고체 플라스틱 성분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화장품산업은 이 성분들이 얼마나 많이 사용되고 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연구 중에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이것들이 해양 쓰레기로 이어진다는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화장품성분들은 고체 입자가 아닌 액체나 왁스의 형태입니다. 고체가 아니면 플라스틱이 아니므로 해양 쓰레기가 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성분표를 보는 것만으로는 플라스틱인지 아닌지 확정할 수 없습니다. 이름이 같아도 어떤 제품에서는 고체 가루일 수 있지만 어떤 제품에서는 액체일 수 있습니다.

환경단체들의 주장이 옳은지 지나친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보류한다. 하지만 피현정이 식약처보다 환경단체가 제시한 미세플라스틱의 정의를 우선해서 받아들이고, 이것을 제품의 합격과 탈락의 잣대로 사용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사회적으로 통용되며 모든 국가가 동의한 화장품 속 미세플라스틱의 정의“세정, 각질제거 등의 제품에 남아있는 5mm 이하의 고체 플라스틱”이다. 이러한 정의를 벗어나서 환경단체가 제시한 정의를 그대로 사용하면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야기한다.

즉, 정부는 이미 미세플라스틱을 금지했다고 말하는데 피현정은 소비자들에게 여전히 미세플라스틱이 사용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발언은 정부에 대한 불신과 화장품 성분에 대한 불안을 조성한다.

또한 이것을 이유로 제품을 탈락시키는 행동은 더 큰 혼란을 야기한다. 이 성분들이 피부에 해롭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피현정은 어린이 제품에 미세플라스틱이 들어있으면 더욱 안 된다는 식의 발언을 한다.

마치 성인보다 어린이가 바르면 더 위험하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화장품업계와 여러 국가의 정부가 미세플라스틱 금지에 동참한 것은 오직 환경을 위한 선택이었다. 사실 금지된 폴리에틸렌 알갱이는 모든 각질제거용 연마제 중에 오히려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 성분이었다. 경도가 낮고 매끄러운 원형으로 가공할 수 있어 피부에 부드럽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자극성 면에서는 오히려 천연 스크럽제인 곡물알갱이, 씨앗알갱이, 소금, 설탕 등이 훨씬 더 나쁘다.

그린피스가 제시한 24개 성분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그 어느 것도 피부에 해롭지 않다. 오히려 윤기부여, 피부보호막 형성, 잔주름을 채워 피부를 매끄럽게 보이게 하는 등 피부건강과 외모 개선에서 많은 유익한 효과를 낸다.

이중에는 혁신적인 성분으로 예찬을 받는 성분도 있다.폴리메칠메타크릴레이트는 뛰어난 보습과 윤기, 사용감 부여로 각광받는 성분이다. 화장품 성분으로 쓰이기 전에 정형외과에서 인공뼈의 원료로 오랫동안 사용했고 성형외과에서는 흉터, 잔주름 등을 영구적으로 채우는 필러의 주성분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최근에는 이 성분의 물리적 자외선차단효과를 집중 연구 중이다.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도 점도를 증가시키고 성분을 안정적으로 결합하는 등 매우 훌륭한 역할을 하는 성분이다. 피부에 보이지 않는 얇은 막을 만들어 보습효과를 줄뿐만 아니라 네일제품, 립제품, 아이라이너, 파우더 등에 첨가해 지워지지 않게 고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가루부터 왁스, 섬유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폴리우레탄도 마찬가지다. 이 성분은 뛰어난 코팅력, 점착력 등으로 헤어스타일링 제품에 주로 사용해왔는데 최근에는 마스카라와 파우더로 영역을 넓혔고 이제 기초제품까지 사용이 늘고 있다. 기존의 피막형성제(아크릴레이트코폴리머, 비닐피롤리돈 등)가 끈적끈적하고 피부가 조이는 등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많았는데 폴리우레탄은 산뜻한 질감에 탄성이 좋아 피부 위에서 자연스럽다. 게다가 솔벤트제가 필요 없어 무향 포물라까지 가능하다. 그래서 화장품산업에서 폴리우레탄의 수요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

이런 좋은 성분들을 단지 그린피스가 정한 미세플라스틱 성분이라는 이유로 배척하는 것은 옳지 않다. 심지어 성분표만으로는 이것들이 고체 플라스틱인지 아닌지 단정할 수 없다.

성분지식을 지나치게 신봉하고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이러한 부작용이 발생한다. 성분표는 화장품의 선택을 도와주는 좋은 도구이긴 하지만 절대적 도구는 아니다. 더구나 화학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건강한 상식 없이 시중에 돌아다니는 한 줄짜리 파편화된 정보에 의존하게 되면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해만 야기한다. 성분표를 꼼꼼하게 확인하는 행동으로 스스로 더 똑똑한 소비자가 되었다고 자부하겠지만, 실제로는 편협하고 무지한 소비자가 될 수 있다.

특히 환경단체들이 제공하는 정보를 경계해야 한다. 이들이 내놓는 리포트는 종종 위험에 대한 지나친 과장과 선동으로 가득하다.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만 해도 주범은 화장품 속 미세플라스틱이 아니라 수산업이 배출하는 부표, 그물, 방수포 등의 쓰레기, 도시의 타이어 분진, 해변에서 바다로 유입되는 비닐, 페트병 등 탓이 훨씬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환경단체들이 화장품을 문제 삼고 아직도 이 문제에 대한 업계와 정부의 대응이 부족한 것처럼 캠페인을 벌이는 것은 이 산업이 가장 여론을 일으키기 쉽고 만만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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