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가

[리뷰] 조지 오웰 '동물농장'

서연 승인 2018.10.03 11:24 | 최종 수정 2020.04.16 16:31 의견 0
 

안녕하세요, 글 쓰는 ‘서연’입니다.위대한 고전은 시공간을 넘어 당대의 인물들과 현대의 독자들을 이어주는 역할, 즉 삶과 인간의 보편적 가치들을 이야기합니다. 또 때로는 글을 통해 사유나 깨달음을 얻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개개인을 더 큰 사회와 세상으로 이끌어 행동하게도 합니다.

조지 오웰
조지 오웰

1947년 ‘나는 왜 쓰는가’라는 제목의 원고에서 조지 오웰은 지난 10년을 통틀어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이 되게 하는 일이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이라며 당파, 즉 불의에 대한 의식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그의 대표작 <동물농장>에서 대해서는 대중이 살아 깨어 있으면서 지도자들을 감시 비판하고 질타할 수 있을 때만 혁명은 성공한다는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어린 시절에는 그저 이해에 그쳤던 이 책을 다시 읽고 난 후에 필자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범위처럼 넓게는 아니겠지만 속한 공동체와 개인적 행동에 대한 어떤 책임 의식을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행동이 되는 것은 온전히 필자에게 부여된 숙제일 텐데요. 이제 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늙은 수퇘지(마르크스를 상징)는 죽기 전에 매이너 농장의 동물들에게 한평생 터득한 지혜를 전해주는데요.

동무들, 우리 문제에 대한 해답은 바로 거기 있소. 한마디로 문제의 핵심은 <인간>이오. 인간은 우리의 진정한 적이자 유일한 적입니다.

그가 죽고 나자 동물들은 합일되어 반란을 일으키고는 농장주(황제 니콜라스 2세)와 관리인들을 모두 내쫓아버립니다. 동물들의 차지가 된 그곳을 동물농장이라 이름 짓고 그들 중 가장 똑똑한 돼지들의 지도로 일곱 계명을 만들고 그들은 평등하게 질서를 잘 잡아가요. 자신들의 손으로 이룩한 자유를 행복하게 여깁니다.

동물농장
동물농장

그러나 문제는 있습니다. 알파벳을 모르거나 계명을 다 외우지 못하는 다른 동물들(무지한 농민들을 상징), 매번 의견차를 보이는 두 수퇘지 나폴레옹(스탈린을 상징)과 스노볼(트로츠키를 상징), 우유와 사과알들이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현상, 맛있는 설탕과 예쁜 댕기 외에는 관심 없는 몰리(백인 부르주아) 등이 바로 그것인데요, 그러다 근처의 농장 주인들인 폭스우드와 필킹턴, 그리고 쫓겨난 존스의 일꾼들이 습격해오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들의 침략에 후퇴하지만, 이것은 스노볼이 의도한 작전이었을 뿐 곧 그들을 둘러싸고 동물들은 돌격해 승리를 쟁취합니다. 총상을 당한 스노볼과 대단한 활약을 보인 복서(프롤레타리아를 상징)는 군사 훈장을 수여 받았고 이 전투를 외양간전투로 부르고 앞으로도 기념하기로 해요.

그 뒤 몰리는 어느 술집으로 사라지고, 나폴레옹과 스노볼 사이의 분쟁은 더욱 커집니다. 그중 풍차 건설 계획이 핵심적 불씨인데요, 나폴레옹은 스노볼의 계획을 반대하는 입장이죠. 대신 그는 양들(스탈린 지지자들을 상징)과의 교섭, 친목이나 개들의 새끼(비밀경찰을 상징)를 몰래 양육하는 일에 더 관심이 많아 보입니다.

스탈린을 상징하는 돼지 '나폴레옹'
스탈린을 상징하는 돼지 '나폴레옹'

스노볼의 달변에 따라 의견이 몰리려던 찰나 나폴레옹은 그의 무기였던 아홉 마리의 개들을 앞세워 스노볼을 내쫓아요. 그 뒤로 동물농장 안에는 평등사회가 아닌 권력체계가 세워집니다. 스노볼이 추방된 뒤였으나 풍차 건설은 진행되는데요, 이를 두고 간사한 돼지, 스퀼러(프라우다를 상징)는 특유의 언변으로 다른 동물들의 기억을 조작합니다. 사실은 나폴레옹의 오랜 계획이었다고 말이지요.

풍차를 건설하느라 동물들의 노동은 몹시 고되지만, 일종의 자부심이 그 모든 것을 견디게 합니다. 그러다 일곱 계명의 일부 내용인 ‘인간과는 거래하지 않는다’라거나 ‘침대에서 자면 안 된다’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낀 동물들을 이번에도 스퀼러가 나서서 정리합니다.

진짜 위기는 풍차가 붕괴한 사건입니다. 이를 두고 나폴레옹은 스노볼의 짓이라며 그를 생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겨울이 되자 바닥나는 식량과 달걀 헌납 사건으로 농장 내에 최초의 반란 비슷한 기운이 번지는데요, 나폴레옹은 암탉들의 일당 식량 분배를 중지시키라고 명령함으로써 이 반란을 잠재웁니다.

그 후 일어나는 안 좋은 사건들은 모두 스노볼이 그랬다는 단정으로 마무리됩니다. 농장 내에는 공포의 분위기가 서리는데요, 계속되는 자백과 처형에 늙은 암말인 클로버(무기력한 중산층을 상징)는 눈물이 고입니다.

그녀의 머릿속에 담긴 미래의 그림이 있었다면 굶주림과 회초리에서 벗어난 동물들의 사회, 모든 동물이 평등하고 모두가 자기 능력에 따라 일하는 사회, 메이저의 연설이 있던 그날 밤 그녀가 오리 새끼들을 보호해 주었듯 강자가 약자를 보호해 주는 그런 사회였다.

다시 시작되는 풍차 건설과 인간들과의 거래가 진행되던 중 나폴레옹의 오묘한 지략에도 프레데릭(히틀러를 상징)이 지불한 지폐는 가짜였다는 게 밝혀집니다. 그 후 다시 풍차는 인간들에 의해 폭파되고 맙니다. 분노를 느낀 동물들의 돌진으로 인간들을 몰아내고 승리를 쟁취하지만 어쩐지 기쁘지가 않아요. 이제 곧 은퇴를 앞둔 나이인 복서는 그간의 노력이 아쉽기만 한 거죠.

반면 동물들이 더 열악한 생활로 힘이 들수록 돼지들은 넘쳐나는 술과 식량으로 풍족한 생활을 즐깁니다. 계속되는 풍차 재건설, 또다시 줄어든 식량 분배량, 확연히 드러나는 불평등함에도 그들을 버티게 한 건 다음과 같은 생각입니다.

존스 시절에는 모두가 노예였지만 지금은 누구나가 다 자유롭지 않은가, 그거야말로 엄청난 차이가 아닌가.

4월이 되자 공화국으로 선포된 동물농장의 대통령은 당연히 나폴레옹이 됩니다. 늘 열심히 일하던, 모든 동물에게 모범이 되었던 복서가 도축업자에게 끌려가는 장면에서야 늘 신랄한 태도로 거리를 두었던 당나귀 벤자민(회의적인 지식인을 상징)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동물들에게 이 사실을 알립니다.

농장은 부유해졌으면서도 돼지들을 제외한 동물들은 더 잘 살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서도 제대로 의식하지 못하지만 오직 벤자민만은 의식합니다.

지금의 사정이 옛날보다 더 나을 것도 못 할 것도 없고 앞으로도 더 나아지거나 더 못해지지 않을 것이며 굶주림과 고생과 실망은 삶의 바꿀 수 없는 불변 법칙이라는 것이었다.

이제 마지막인데요, 이 대목에서 돼지들이 두 발로 서서 걸어요. 윗발굽에는 회초리를 들고요. 그 곁에서 양들은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더 좋다”는 구호를 외칩니다. 일주일 뒤 근처 농장주 대표단이 농장에 초대되는데 본채에서는 웃음과 노랫소리가 왁자지껄합니다. 동물들이 창밖에서 안을 들여다보자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사람이 된 돼지들
사람이 된 돼지들

돼지들의 얼굴에서 뭔가 녹아내리고 변하는 것 같은데 그게 뭘까?

그들이 인간이 되려는 순간 존재로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간직하고 있던 무엇이 빠져나갔을 테니 그것은 양심이지 않을까요?

창밖의 동물들은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인간에게서 돼지로, 다시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번갈아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

상징 인물을 정리한 것 외에 역사적 사실 중심이 아닌 이야기 중심으로 줄거리를 요약한 이유는 우리에게 체감되는 정도와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지혜들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필자는 이 소설을 풍자보다는 우화로서 읽었던 것 같습니다.

위에서 말했던 주어진 어떤 책임 의식, 행동으로 나아가야 할 부여된 숙제란 내 손으로 밀어낸 그 자리에 내가 섰을 때 그 손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무엇을 해야 할지 질문을 던져보는 것, 그리고 이전의 그들과 같은 존재가 돼서는 안 된다는 답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의를 밀어낸 그 손으로 낮은 곳을 향해 회초리를 내리치는 것이 아니라 높은 곳의 빛으로 이끌어 주는 것, 즉 건네는 손이 되고 싶은 서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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