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읽기 딱 좋은 소설 ‘동물농장’

[리뷰] 동물농장
조지 오웰, 자유언론 침해와 도서검열에 저항하다

오세라비 승인 2020.04.16 15:58 | 최종 수정 2020.04.17 12:45 의견 0

자유를 두려워하는 자가 자유주의자이며, 지성에 재를 뿌리고 싶어 하는 자가 지성인이다.

<동물농장> 서문에 나오는 마지막 문장이다. 조지 오웰의 예리한 지성이 빛나는 글귀다. 또한, 오웰이 <동물농장>을 발표했을 당시 시대적 상황에 대한 절실한 심경을 대변한다.

조지 오웰(1903~1950년)
조지 오웰(1903~1950년)

영국 태생인 조지 오웰(1903~1950년)의 <동물농장>은 1945년에 출판됐다. 필자가 세계 영미권 소설 중 최고로 꼽는 소설 중 하나다. 오웰이 이 책을 썼을 때 유럽의 지성계는 온통 스탈린주의에 경도된 한마디로 말해 소련에 대한 무비판적인 찬양이 휩쓸던 광풍의 시대였다. 이런 시기에 오웰이 스탈린의 집단주의와 전체주의 독재를 비판했으니 책을 출판하기가 매우 어려운 시절이었다. 더구나 돼지, 개 등 동물을 의인화한 풍자가 불쾌감을 준다는 이유였다.

<동물농장> 백미는 서문이다. 서문은 1945년 당시에는 실리지 않은 채로 출판돼, 오웰 사후 24년 만에 발표돼 그때부터 실리게 됐다. 서문에서 오웰은 이 책을 발표할 당시 영국 출판계, 지성계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했다. 서문을 통해 소련의 선전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출판계 풍토와 당대 지식인들의 비겁함을 직시하게 된다.

오웰은 서문에서 <동물농장> 출판의 어려움을 말한다. 출판사마다 이 책에 대한 출판을 거절했으며 심지어 소련에 비판적 성향이거나 정치적 색채가 없는 출판사마저 거부했다. 우여곡절 끝에 한 출판사에서 <동물농장>이 세상에 나온다. 오웰은 사회주의자였지만 혁명적 공산주의는 대재앙을 불러온다는 것을 우화적으로 묘사했다.

그 시대 유럽은 볼셰비키 혁명의 영향으로 소련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며, 소련의 비판, 비방은 묵살하던 상황이었다. 독재자 스탈린이 휘두르는 공포정치와 대숙청 그리고 우크라이나 대기근 사태에 대해서도 모른 척하고 시치미 떼기가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대표적 인물이 <동물농장>에서도 묘사된 프랑스 철학자이자 공산주의자인 사르트르다. 스탈린의 대숙청은 1936~1938년까지 반대파를 대상으로 무자비한 탄압과 처형이 이어졌다.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희생자만 최대 200만 명에 달했다. 스탈린 정권 내내 ‘굴라크’로 불리는 공포의 강제수용소 희생자는 추산이 불가능할 정도다.

오웰은 스탈린이 신성불가침한 존재로 여겨지던 시대, 자유언론 원칙의 위기와 변절한 자유주의자들에 대한 예리한 비판을 서문을 통해 말한다. “하나의 교조를 또 다른 교조로 바꾸는 것이 반드시 전진은 아니다”고 지적하며, 영국 엘리트들의 소심증과 정직하지 못함에 대해 비판했다.

오웰은 스탈린주의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이 도서 검열로 이어졌고, 역사의 자의적인 왜곡까지 허용된 영국을 비롯한 유럽 사회에 투창을 던졌다. 창작의 침해와 문학이 정치화되고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이 지배하던 시대에 그는 저항했다.

이제 <동물농장> 속으로 들어가 보자. 누구나 제목은 알지만 실제로 읽고 제대로 이해한 독자는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오웰은 동물을 의인화해 풍자한 우화소설로 스탈린 공산주의를 비판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돼지, 개, 말, 암탉, 양, 염소, 암소, 당나귀, 오리, 고양이 등이다. 이 동물들이 어떤 인물을 풍자하는지 오웰은 말하지 않지만,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동물농장>의 진정한 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무대는 매너 농장으로 존스가 농장주다. 존스는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동물이 아닌 몇 안 되는 인간으로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를 지칭한다. 매너 농장에 밤이 찾아오자 동물들이 분주해졌다. 동물들의 우두머리는 수퇘지들이다. 농장 동물 중 존경받는 늙은 수퇘지 메이저는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메이저는 칼 마르크스와 레닌의 혼합이다. 메이저는 동물들을 전부 소집해 마지막으로 일장 연설을 한다. 동물들의 비참한 노예 상태를 되새기며 겨우 먹는 먹이에 일만 죽어라 하는 동물들은 이제 결연히 봉기할 것을 호소한다. 동지애로 단합해 인간을 몰아내고 동물 해방을 위한 투쟁을 당부했다. 메이저의 감동 어린 연설에 동물들은 흥분의 도가니가 됐다. 곧 메이저는 숨을 거둔다.

동물농장
동물농장

메이저의 뒤를 이은 세 마리의 수퇘지 스노우볼, 나폴레온, 스퀼러는 메이저가 남긴 사상을 체계적으로 다듬어 <동물주의>로 명명한다. 치밀한 이론가인 스노우볼은 트로츠키를, 과격한 행동가인 나폴레온은 스탈린을 가리킨다. 스노우볼과 나폴레온의 선전·선동을 전담한 스퀼러는 볼셰비키 혁명 세력의 기관지 역할을 한 프라우다 신문을 뜻한다. 수퇘지를 위시한 동물들은 일제히 봉기해 농장주 존스를 추방하고 존스의 재물을 다 부숴버리고 먹이를 똑같이 배급하며 평등을 외쳤다.

그동안 몰래 글을 익혔던 스노우볼은 <동물공화국>을 선포하며 토대를 만들었고, 동물들에게 글을 가르쳐 어느 정도 읽고 쓸 수 있게 교육을 했다. 그리고 비둘기를 날려 이웃농장의 동물들도 봉기하도록 선동했다. 추방당한 농장주 존스가 반격해오자 스노우볼의 지휘로 물리치게 되자 동물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한편, 농장의 권력을 두고 스노우볼, 나폴레온의 충돌이 일어나 의견 불일치가 잦았다. 독재자 성향의 나폴레온은 스노우볼을 몰아내기 위해 음모를 꾸며 부하인 개들을 풀어 스노우볼을 공격하게 했다. 스노우볼은 농장에서 도주했고, 곧 나폴레온의 독재가 시작됐다. 나폴레온이 권력을 잡자 동물들은 예전처럼 혹독한 노동에 내몰린다. 나폴레온이 주최하는 회합에 빠지면 식량 배급을 반으로 줄였다. 나폴레온의 친위대인 개들을 풀어 공포 분위기를 만들어 동물들을 감시했다.

스탈린을 상징하는 돼지 '나폴레온'
스탈린을 상징하는 돼지 '나폴레온'

나폴레온은 이웃농장과 상거래를 하기 위해 인간과 교제 필요성을 느꼈다. 이웃마을 변호사 윔퍼가 유명했다. 윔퍼의 인상 묘사를 보자.

교활하게 생긴 작은 체구의 남자, 눈치 빠른 위인.

나폴레온은 상거래를 위해 중개인 역할을 윔퍼 변호사에게 맡겨 외부 세계와 접촉했다. 윔퍼는 나폴레온을 칭송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윔퍼는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바로 사르트르다. 또 사르트르처럼 스탈린을 찬양하기 바빴던 서방세계 엘리트 부류를 뜻한다.

나폴레온의 호칭은 지도자로 불렸다. 동물들은 언제부터인지 나폴레온이 농장주 존스의 침대를 사용하고 식당, 응접실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이에 동물들은 동요했다. 메이저가 죽기 전에 동물들을 위해 만든 감동적인 노래를 떠올렸다.

코에서는 굴레가 사라지리라
등에서는 멍에가 벗겨지리라
재갈과 박차는 영원히 녹슬리라
잔인한 회초리는 더 이상 소리 없으리.

 

상상도 할 수 없던 더 많은 재산이,
밀과 보리, 귀리와 건초가,
클로버와 콩 그리고 뫼풀도
그날이면 모두 우리 것이거늘.

하지만 동물들은 노래조차 금지당한다. 금지하는 목록은 자꾸만 늘어가고 식량부족과 굶주림에 시달렸다. 나폴레온은 문제가 생기면 “이게 다 반역자 스노우볼 탓이야!”라는 핑계를 댔다. 나폴레온은 개들의 호위를 받으며, 명령은 스퀄러를 통해 전달했다. 농장에는 공포분위기가 가득했으며 나폴레온의 초상화가 게양됐다. 불만을 가진 동물들은 스노우볼과 내통했다는 혐의를 씌워 처형을 일삼았다.

나폴레온은 목재를 팔아 이익을 남기기로 했다. 인간 프리데릭과 다툼이 일어났다. 프리데릭은 히틀러를 가리킨다. 프리데릭이 동물농장으로 쳐들어와 동물들과 전쟁이 벌어진다(1941년 독일과 소련과의 전쟁, 독소전쟁이다). 동물농장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나폴레온은 서서히 인간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농장은 식량부족으로 인해 굶주림과 추위에 떨었다. 하지만 나폴레온과 새끼 돼지들은 특권계급이 됐다. 돼지들끼리 서로 싸우고 술을 마시는 등 다른 동물들의 비참함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나폴레온은 거대하게 살찐 돼지가 됐다. 나폴레온과 친위대인 개들만 권력을 행사했다. 평등을 외치던 그들은 노동은 하지 않았다. 죽어라 일만 하는 말, 당나귀 등 동물들은 메이저가 죽으며 예언한 모든 동물이 평등한 세상은 이제 기다림으로만 남았다.

동물 중 특권층인 돼지들은 어느 틈에 인간처럼 앞발을 들고 뒷다리로 걸으며 두 다리로 걷는 인간 흉내를 냈다. 그리고 앞발에는 채찍을 들고 다른 동물들에게 휘둘렀다. 급기야 농장주 존스의 옷을 입고 고위층 돼지들은 카드놀이에 술을 마시며 유흥을 즐겼다. 나폴레온은 이제부터 <동물농장>이 아닌 <매너농장>으로 부르기로 결정했다. 동물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인간이 다스리던 농장 이름이었다. 그리고 나폴레온을 위시한 고위층 돼지들은 인간의 복장을 하고 흉내를 냈다.

인간이 된 돼지들
인간이 된 돼지들

나폴레온이 농장의 권력자가 되자 이웃의 재력가인 인간들이 농장을 방문해서 회담을 했다. 동물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영문을 몰랐다. 나폴레온 일당과 인간들은 웃고 노래를 부르다가도 한바탕 싸움도 했다. 동물들은 그저 유리창 너머로 둥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왁자지껄 다투는 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나폴레온과 인간의 대표 한 사람이 카드놀이를 하다 서로 격렬히 다투었다. 사람이 돼지인지, 돼지가 사람인지 구별하기는 이미 불가능해져 있었다.

이상이 <동물농장> 줄거리다. 조지 오웰은 인민의 평등과 계급 철폐를 외쳤던 마르크스 공산주의의 허상을 비판했다. 또 공산주의에 동조했던 좌파의 어리석음을 풍자했다. 또 한 사람의 지식인 레몽 아롱은 <지식인의 아편>에서 소련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하고 스탈린의 독재 공포정치에 눈감았던 지식인들을 비판했다. 공산주의의 죄과에 대해 침묵하고 논의를 거부했던 사르트르가 지식인들을 대표하던 시대였다.

우리는 불현듯, 조지 오웰이 남긴 고독한 풍자가 75년이 지난 현재도 여전히 변함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저작권자 ⓒ 리얼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