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주의는 21세기 들어 가장 뜨거운 사회적, 정치적 화두 중 하나다. 글로벌화가 심화되고 이민, 난민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 다문화주의는 어느덧 ‘진보적’이고 ‘도덕적’인 담론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모든 사회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가?
프랑스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신만섭 박사와 오세라비, 류병균의 공저 ‘다문화주의는 국가 자살이다’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제기하며, 특히 한국 사회가 다문화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문제를 강도 높게 지적한다.
다문화주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
저자는 다문화주의를 단순히 ‘선’으로 간주하는 태도에 문제를 제기하며, 개념적 혼란과 현실적 실패를 중심으로 이를 비판한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다문화주의의 개념을 정리하며, 한국 사회의 다문화 논의가 개념적 정립 없이 감성적 접근에 치우쳐 있다고 지적한다.
다문화주의자들은 종종 한국이 이미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으며, 다문화 국가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담론이 근거 없는 논리적 비약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특히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주의가 마치 시대적 필연이자 공공선으로 포장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며, 감정적 레토릭이 아닌 냉철한 성찰을 요구한다.
유럽의 실패에서 배우다
중반부에서 저자는 유럽의 사례를 들어 다문화주의가 현실적으로 어떤 문제를 초래했는지 분석한다. 그는 특히 난민과 이민자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던 유럽 사회가 현재 심각한 정체성 혼란과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음을 지적한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서구 국가들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질적인 문화와 공존할 수 있다는 낙관적 믿음 속에서 다문화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난민과 이주민의 대규모 유입은 유럽 내 기존 공동체의 결속을 약화시켰고, 이주민들은 오히려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하며 사회적 분열을 심화시켰다.
저자는 유럽에서 다문화주의가 실패한 주요 이유로 정치 엘리트들의 정책적 무능을 꼽는다. 그는 이들이 다문화주의를 도덕적 올바름의 상징으로 내세우며 국민에게 이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도록 강요했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유럽 사회는 이민자들에 의한 성폭력, 범죄, 대규모 폭동 등 심각한 사회적 문제에 직면했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시민들의 몫이 됐다.
한국 다문화 정책의 한계
저자는 한국의 다문화 정책이 유럽보다도 더 위험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한국은 특히 결혼이민자와 외국인 노동자 지원에 초점을 맞추며 다문화주의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접근이 실질적 효과를 거두지 못한 채 단기적인 미봉책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농어촌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을 대거 이주시키는 방식을 “인종차별적이며 비현실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한다. 저자는 이러한 방식이 한국인 노동자들의 권리를 약화시키고,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적 구조를 고착화한다고 경고한다. 특히 저출산 문제나 고령화 문제를 이민으로 해결하려는 접근은 장기적으로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문화주의와 민족주의의 충돌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다문화주의와 민족주의가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라는 저자의 주장이다. 그는 단일한 문화적 정체성이 공동체의 결속과 국가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강조하며, 다문화주의가 이를 약화시킨다고 지적한다.
특히 저자는 “다문화와 사회 통합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라며, 다문화주의가 국가 내 분열과 갈등을 조장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를 “빗장은 열기 쉽지만, 닫기 어려운 법”이라는 말로 요약하며, 다문화 정책의 무분별한 확산이 초래할 결과에 대해 경고한다.
저자는 단순히 다문화주의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안적 방향도 제시한다. 그는 한국이 다문화 정책을 재검토하고, 국민의 권리와 정체성을 중심에 둔 외국인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에 의존하는 기존의 경제 구조를 개선하고, 한국인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근로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또한 외국인 정책을 추진할 때 국가의 장기적 정체성과 사회적 통합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감정적 레토릭이 아닌 논리적이고 근거 있는 논의를 촉구한다.
냉철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
‘다문화주의는 국가자살이다’는 다문화주의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태도가 초래할 수 있는 문제를 조명하며, 한국 사회에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 책은 단순히 다문화주의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정책 설계를 위한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다문화 사회로의 전환이 피할 수 없는 변화가 아니라, 선택 가능한 사회적 모델임을 상기시키며, 저자는 독자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다문화주의가 정말로 우리의 삶과 국가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가?” 이는 오늘날 한국 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다.
냉철하고도 논리적인 이 책은 다문화주의에 대한 찬성과 반대라는 이분법적 논의에서 벗어나, 그 본질과 한계를 깊이 성찰하는 데 필요한 귀중한 통찰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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