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건순 “인문학 위기, 교수들의 기득권과 밥그릇 챙기기 때문”

멸종 위기의 젊은 동양철학자의 날선 비판

김승한 기자 승인 2016.02.05 11:48 | 최종 수정 2020.03.24 17:54 의견 0

인문학이 위기에 처했다고 하는데 사실은 인문학 교수들의 기득권이 위기에 빠진거에요. 대학 인문학과에서 4년 동안 수업 듣는 것보다 절간 행자생활 6개월이 훨씬 공부가 깊습니다.

멸종 위기의 젊은 동양철학자로 불리는 임건순 작가(사진)는 인문학을 위기에 빠뜨린 장본인은 그걸 가르치는 교수들이라고 날선 비판을 했다.

임 작가는 인문학 졸업생들이 A4 한 장에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쓰지 못할 정도로 수준이 낮은 것도 인문학 교수들의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엉터리로 인문학을 배울 바에 차라리 시골에서 농사짓는 법을 배우는 게 앞으로 살아가는데 훨씬 도움이 된다고까지 말하는 임 작가다.

현재 이야기되는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인문학 교수들의 위기이고 그들의 밥그릇, 기득권 문제일 뿐이라며 진단한 임작가는 고전이라는 텍스트를 바탕으로 읽기와 쓰기 훈련이 없는 형편없는 수업만이 행해졌고 실상 대학 내에서 제대로 된 인문학교육이 이루어진 적도 없다고 비판했다.

임 작가는 그동안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오기, 전국시대 신화가 된 군신 이야기>를 출간했다. 최근 2015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 선정작인 <순자, 절름발이 자라가 천리를 간다>를 출간 임 작가를 지난달 13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한 카페에서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순자, 절름발이 자라가 천리를 간다’ 펴낸 임건순 작가
‘순자, 절름발이 자라가 천리를 간다’ 펴낸 임건순 작가

Q. 묵자, 오자 등 병법가 관련 책을 쓴 작가가 갑자기 유학자 순자를 다룬 책을 출간해서 좀 의아하다.

A. 춘추전국시대 비주류 사상가들을 다루고 싶었습니다. 그들 중 한명이 순자에요. 불패신화의 오기도 병법가이기 전에 사상가입니다.

Q. 유학자 대표 사상가는 공자와 맹자로 알고 있다. 순자는 어떤 사상가인가?

A. 학문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강하게 역설했고, 후천적 노력과 배움을 통해 거듭나는 인간, 공부를 통해 성숙해지는 인간상을 거듭 강조한 사람이 순자에요. 그는 유가 사상의 이단으로 취급받기도 했지만, 누가 뭐래도 정통 유자이자 도가 인간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도를 넓히는 것이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계승한 공자사상의 적자입니다.

Q. 조선시대 선비들이 유학을 공맹의 도라고 불렀는데 공자 다음이 맹자 아닌가?

A. 흔히 공자 다음으로 유가의 맥을 잇는 인물로 맹자를 꼽습니다. 그러나 공자 사상의 적자는 순자입니다. 공자사상을 한 단어로 말하자면 학(學)이라 할 수 있는데 맹자 보다 순자가 배움을 더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공자사상의 적통은 순자라고 말할 수 있어요.

Q. 순자하면 ‘성악설’로 유명하다. 사람은 선천적으로 악하게 태어났으니 갱생과 교화로 선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말로 해석된다. 순자의 배움이라는 게 조금은 무섭게 들린다.

A. 우리들의 선입견과 달리 순자는 인간을 매우 긍정한 사람이고, 누구든 공부하고 노력하면 얼마든지 훌륭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인간의 노력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가치라고 생각한 사상가입니다. 그 동안 알려진 ‘성악설’은 오해에요. 사실 그것은 인간이 나쁘다고 한 게 아니라 사회가 혼란스럽다는 의미고 순자는 성악설을 말하면서 인간들의 집합적 노력으로 사회에 안정과 질서를 도모해야한다고 했습니다. 또 그럴 수 있다고 했고요.

순자는 전국시대 말기 조나라에서 기원전 298년에 태어난 위대한 사상가다. 순자는 지정학적 위치가 좋지 않은 조나라의 처지 때문에 생존의 유학을 모색한다. 공자와 마찬가지로 천하를 주유하며 유세했으나 그의 능력을 알아보는 군주를 만나지 못해 뜻을 펴지 못했다. 요즘으로 치면 취업에 실패한 것. 구직활동을 하던 순자는 마침내 제나라에서 학자적 면모를 인정받아 국립 학술 연구 기관에 몸담게 된다. 직하학궁의 좨주를 세 번 역임하는 동안 학문 연구에 매진하여 학자로서의 위상을 다진다.

그러나 제나라의 국력이 기울어 연구 자원이 축소된 탓에 초나라로 향하게 된다. 그곳에서 난릉이라는 지방의 장관이 됐지만, 곧 그 자리에서 물러나 제자를 가르치고 저술을 하며 일생을 마친다. 그는 자신의 사상의 기초이자 핵심인 천(天)관념, 너무나 유명한 예와 성악설, 그리고 실천적 핵심 개념인 위(僞)를 설파하며, 다가올 통일천하를 준비했다.

Q. 순자가 제나라 국립학술기관 대표를 3번이나 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설명해 달라.

A. 순자는 ‘공부하는 시대’였던 난세에 가장 공부를 잘했습니다. 직하학궁은 제나라 왕실이 만든 학술 연구기관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미국의 하버드대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하의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그곳에 모여 학문을 연구하고 학술 토론을 했습니다. 그런 곳의 좨주(대학 총장)를 3번이나 역임한 사람이 바로 순자입니다. 그것은 기라성 같은 학자들에게 학문을 인정받고 신망을 두루 얻었다는 말입니다. 그는 아무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의 학문적 성취를 남겼습니다.

Q. 작가는 책에서 순자를 동아시아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빛이자 거물이며, 또 위대한 지성의 봉우리이자 ‘동방의 아리스토텔레스’라고 설명했다. 그 정도로 순자가 대단한 사람인지 몰랐다.

A. 유가의 입장에서 제자백가 사상을 종합했고, 통일천하를 다스릴 규범과 기준 등을 만들었습니다. 순자가 통일 중국의 청사진과 밑그림을 정성을 다해 그렸어요. 그가 있었기에, 현장과 각론 면에서 취약했던 공자의 학문이 현실과 정치 공간에서 통할 수 있는 학문이 되었고, 거대한 제국을 이끌어갈 수 있는 현실 통치학으로 발돋움했습니다. 그가 그린 통일천하의 청사진은 청나라와 조선이 망할 때까지 동아시아를 이끌어가는 기본 국가 틀로 가능했습니다.

Q. 이 책 <순자, 절름발이 자라가 천리를 간다>를 문답식으로 만든 이유와 암송본을 넣은 이유는.

A. 원래 철학은 문답이고, 입씨름이거든요. 그러면서 텍스트와 고전이 만들어진 거지 서재에서 한가하게 텍스트가 만들어지고 고전이 형성된 게 아니거든요. 고전을 읽을 때는 현장 속에서 읽는다는 느낌이 들어야하고 그런 분위기를 체험해야하는데 그래서 문답-대화 식으로 구성했습니다. 현장에서 사상가의 열정을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암송본을 부록으로 넣었습니다. 순자 텍스트 중에 <권학>편과 <수신>편을 넣었는데 암송은 우리 본래의 교육전통이기도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애용 받아온 훌륭한 교육방법이고 학습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만 암송으로 고전을 공부하고 각인한 게 아니거든요. 전 어떻게든 암송이라는 교육전통을 부활시켜야한다고 생각했기에 암송본을 넣었습니다. 덕분에 제작비용과 시간이 늘어났지만 전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Q. 인문학의 위기, 동양철학의 위기라고 한다. 당사자인 동양철학자로서 현실을 정확히 지적한다면.

A. 인문학의 위기 아닙니다. 인문학과의 위기고 인문학과 교수의 위기입니다. 철학의 위기? 아닙니다. 철학과의 위기고 철학과 교수의 위기일 뿐이죠. 교수님들의 기득권과 밥그릇의 위기일 뿐이지. 인문학과 철학의 위기 절대 아니죠. 동양철학도 마찬가지입니다.인문학이란 게 뭐겠습니까. 특히 철학이란 게 뭐겠습니까. 근원적인 삶과 세상의 문제를 던지려 고민하고 시공을 초월해 보편적으로 통할 수 있는 질문들을 하려고 애를 쓰는 게 인문학이고 철학입니다. 대학교에 철학과와 인문학과 모두 사라져도요, 진짜 인문학과 철학은 절대 죽지 않습니다. 아니 외려 그렇게 제도권 인문학이 사라져야 진짜 철학과 인문학이 이 땅에서 힘을 얻고 성장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Q. 춥고 배고픈 전공으로 꼽히는 동양철학을 하는 인문학자로서 이 시대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A. 순자가 말했습니다. ‘절름발이 자라가 천리를 간다.’ 절름발이 자라도 천리를 가는데 우리가 해내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어요. 요새 노력이란 말이 ‘노오오오오력’이란 말로 통하면서 조롱이란 의미로 많이 통하지만 그래도 길을 갔으면 좋겠습니다. 절름발이 자라도 천리를 가는데 우리는 만리를 가야지 않겠습니까.또한 순자가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아무리 가까워도 가지 않으면 목적지에 이를 수 없다고.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행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청년들이 단순히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열심히 또 즐겁게 공부하고 노력해서 맑은 물을 길어 올리는 두레박줄, 우리 사회의 옥과 진주가 되길 바랍니다.

Q. 마지막으로 이율곡이 십만양병설을 주장한 적이 없다는 지적은 너무 충격적이다. 그럼 우리가 학교 역사시간에 잘못 배웠다는 말인가?

A. 네. 율곡의 십만양병설은 날조된 이야기입니다. 제자 김장생이 꾸며낸 소설입니다. 서인정권이 조일전쟁(임진왜란) 중 한 것이 너무 없다보니 콤플렉스 때문에 만들어낸 이야기죠. 당시 국가 생산력과 체급을 생각하면 십만양병은 너무 무리였어요. 사실 율곡을 깎아내리는 이야기죠. 허황된 이야기를 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일 뿐입니다. 율곡의 사상과 철학을 보면 지극히 현실적이고 또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조일전쟁을 대비해 군사력을 키우자는 생각을 강하게 했었다면 지상군 십만이 아니라 수군 3천명을 증원하자고 했을 겁니다. 그게 율곡다운 주장이죠. 율곡은 십만양병설 말한 적 없습니다. ‘사림에서 동인과 서인이 나왔다’, ‘살수대첩 때 수공을 해서 수나라 군사들을 수장시켰다’를 비롯해 대원군하면 그저 완고한 쇄국정책의 이미지 등 여러 가지로 국사 교과서에 사실과 먼 이야기들이 많은데 율곡의 십만양병설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 드리고 싶습니다. 출판계와 도서시장 말입니다. 전 사실 변두리 시골출신 극빈층 동양철학자이거든요. 유일하게 저 같은 사람도 세상을 향해 발언할 기회를 주는 곳이 출판계고, 책을 통해 흙수저들도 목소리를 낼 수가 있습니다. 배경이 부족해도 실력만으로 겨룰 수 있기도 하고요, 한국사회에서 몇 안남은 청정지대가 출판계라고 할 수 있는데 독자와 국민이 양서를 많이 좀 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저 같은 비제도권, 비주류 지식인도 먹고 살고 계속해서 연구를 하며 유효한 문제제기를 하고 양서를 만들어내 공동체가 공유하는 지적 자산을 만들지 않겠습니까.

언론에서도 비주류 지식인들에게 기회를 줬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을 향해 발언하고 담론을 만들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게요. 진보와 보수 언론 막론하고 지나치게 엘리트들에게만 발언기회를 준다는 생각이 드는데 나라가 진정 건강한 공화국이 되려면 여러 사람들에게 기회를 줘야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지나치게 서구학문위주로 경도된 지적환경인 한국에서 동양철학을 하는 사람을 조명해주고 뭔가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작권자 ⓒ 리얼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