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 모녀·신동국의 역습

한미약품그룹서 한미약품 분리독립 추진
한미사이언스 임시주총 소집 청구···신동국·임주현 신규 이사후보 추천
모녀-신동국 지분매매 완료···신동국 회장 지주사 최대주주로

김승한 승인 2024.09.23 12:24 의견 0

한미약품그룹의 노른자인 한미약품이 지주사 한미사이언스에 분리독립이라는 반기를 들었다. 동시에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장악에도 나섰다.

지난 3월 열린 한미사이언스 주주총회에서 임종윤·종훈 형제에게 지분 경쟁을 밀린 송영숙·임주현 모녀가 7월 형제의 손을 들어줬던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과 ‘3자 연합’을 구성해 역습에 나선 것.

이에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를 쥐고 있는 형제는 한미약품을 분리독립 시키려는 3자 연합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사진 왼쪽부터)임종윤 한미약품 사내이사,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 임주현 한미약품그룹 부회장,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한미사이언스와 한미약품에 따르면, 한미약품은 지주사에 위임했던 인사 부문 업무를 신설 조직에 이관하는 등 독자 경영 수순을 밟고 있다.

자회사 대표가 이사회 결의 없이 지주사와 업무 위탁계약 해지를 결정하고 이를 위해 부서를 신설한 것은 해사 행위이자 배임이라는 게 한미사이언스의 주장이다. 한미사이언스는 고(故) 임성기 창업자의 차남인 임종훈 단독 대표 체제로 운영 중이다.

한미사이언스 측은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가 대주주인 지주사와 그룹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단독 행동을 하고 있다”며 “그룹 전체의 기업 가치와 주주 이익에 손해를 끼치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는 지난달 29일 박 대표의 사장 직위를 전무로 강등했다.

한미약품은 지주사의 한미약품 대표 직위 강등 인사는 모두 무효라는 입장이다. 한미약품 측은 “원칙과 절차 없이 강행된 (지주사)대표의 권한 남용의 사례”라며 “박재현 대표의 권한과 직책은 변함이 없다”고 반박했다.

한미약품은 지주사 한미사이언스의 최대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과 송영숙·임주현 모녀가 한미약품의 독자 경영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미약품 측은 “지주사가 수수료를 받고 대행하던 인사·법무 등의 업무를 독립시켜 별도 조직을 만드는 것은 법적 장애가 없는 행위”라며 “조직 신설에 관해 이미 임종훈 대표와 협의한 바 있으며 ‘전문 경영인 체제의 독립성 강화’가 왜 강등의 사유가 되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한미약품 박재현 대표는 “한미의 시작과 끝은 임성기 선대회장의 ‘신약개발 철학’이 돼야 한다”며 “경쟁력 있는 양질의 의약품 개발 등 한미만이 할 수 있고, 해낼 수 있는 분야에 더욱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한미사이언스 측은 “만약 한미약품이 지주사를 무시하고 나온다면 한미사이언스로서는 한미약품의 임시주총을 열어 이사진을 교체하고 나아가 경영진을 교체하는 것까지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한미사이언스와 한미약품 사이에는 엄연히 업무위탁계약도 체결돼 있는데, 중도해지 사유도 없이 해당 위탁계약을 해지하겠다는 것은 계약 위반에 해당하고 한미약품이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하고, 만일 한미약품 이사회에서 이를 강행한다면 이를 지지한 이사들도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곧바로 한미사이언스는 창업자의 장남인 임종윤 한미약품 사내이사의 단독 대표이사 선임 안건 등으로 진압에 나섰지만, 3자 연합의 한미약품 분리독립 시도를 막지 못했다.

2일 열린 한미약품 이사회에서 임종윤 사내이사의 단독 대표이사 선임 안건과 북경한미약품 사장 교체, 동사 선임 안건 모두 부결됐다.

한미약품 이사회 멤버이자 감사위원장인 김태윤 사외이사는 “전문경영인 체제는 한미뿐만 아니라 글로벌 스탠다드에 걸맞은 경영을 하는 회사라면 당연히 지향해야 할 목표이자 비전”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경영권 분쟁이 재점화된 배경엔 형제 측을 지지했던 신 회장이 다시 모녀 측에 힘을 실어줘 힘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신 회장은 “오너가는 후방으로 물러나고 전문 경영인이 나설 때”라며 이를 위해 모녀 측과 공동 의결권을 행사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미사이언스로부터 한미약품 분리독립을 지켜낸 3자 연합은 형제 측으로 기울어진 한미사이언스 이사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공략에 나섰다. 신동국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을 신규 이사후보로 추천하는 임시주총 소집을 청구했다.

한미사이언스에 밝힌 임시주주총회 청구 관련 일지에 따르면 지난 7월 29일 3자 연합은 임시주총 소집 청구(이사회 2인 증원과 3인 신규이사 선임건) 내용증명을 한미사이언스에 발송했다.

지난달 2일 한미사이언스는 이사 후보자 특정을 포함한 주총 개최 목적을 보완해주면 바로 절차를 밟아 개최하겠다고 3자 연합에 회신했다. 지난 2일 3자 연합은 이사회 1인 증원과 신동국 회장, 임주현 부회장을 신규 이사후보로 추천한다는 임시주총 소집 재청구 내용증명을 한미사이언스에 발송했다. 다음날인 3일 한미사이언스는 3자 연합의 내용증명 관련해서 신유철 이사회 의장과 임시주총 소집 일정 관련해 논의를 개시했다.

한미사이언스 측은 “신동국 회장 측이 갑작스레 임시주총 소집을 서두르는 것은 송영숙 회장, 임주현 부회장으로부터 주식을 취득하기로 한 거래가 완료됐기 때문으로 추측되고, 결국 한미사이언스의 정상적 경영을 흔들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외부인에게 넘겨서라도 어떻게든 경영권을 갖겠다는 욕심으로 묵묵히 일하는 임직원에게 줄서기를 강요하고 사기를 저하할 법적 소송까지 불사하는 것은 선대회장님께서도 통탄하실 일”이라며 “3자 연합은 불온한 외부세력을 회사로 끌어들이고, 그동안 선대회장님이 어렵게 일구신 회사 성장의 밑거름이었던 한미 DNA를 무너뜨리는 어떤 행동도 즉각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경영권 분쟁에 제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버지가 남긴 회사를 남은 가족들이 경영권 분쟁을 하느라 아버지 친구에게 빼앗길 형국”이라며 “지금이라도 가족이 화합해 한미약품이 빨리 정상화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송영숙·임주현 모녀와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의 한미사이언스 지분거래가 마무리됐다. 4일 한미사이언스에 따르면 신동국 회장과 송영숙·임주현 모녀는 지난 3일 장외거래 형태로 주식매매 계약에 따른 거래를 마무리했다.

모녀가 보유한 지분 가운데 444만4187주(지분율 6.5%)를 신동국 회장에 넘겼다. 신동국 회장은 1644억원을 모녀에 전달했다. 이에 신동국 회장(18.92%)은 한미사이언스 최대주주가 됐다.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12.46%), 임종훈 대표(9.15%), 임주현 부회장(9.70%), 송영숙 회장(6.16%) 등 창업주 가족 누구보다도 지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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