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의 최승호 “큰 매체와 작은 매체의 역할 균형이 필요하다”
한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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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9 19:16 | 최종 수정 2020.07.10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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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연말, 필자는 당시 대안언론인 <뉴스타파>의 PD로 재직하던 현 최승호 MBC 신임사장과 인터뷰를 진행한 바 있다. 대략 4~50분간 진행된 전화 인터뷰였다. 촉박한 일정에 갑자기 추진된 탓에 전화 인터뷰가 진행됐는데, 최승호 신임사장은 선선히 응하고 여러 가지를 말해주었다. 그러나 아쉽고 죄송하게도 당시 급박하게 준비하던 매체 기획이 통째로 엎어지면서 공개되지 못했다.
그의 사장 취임을 기념하며 그간 일그러진 한국의 저널리즘을 돌아보는 그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위해 나누어 게재한다. 공개시간이 지연된 대신, 당시 박근혜 정부 권력기관들을 두려워하여 다소 수정해 게재하려던 원고를 수정 이전 버전으로 가감 없이 담았다.
지난 (2014년) 10월에 개봉한 영화 <제보자>가 9월부터 화제가 되면서 새삼 2006년 황우석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MBC <PD수첩>에 대한 향수와도 같은 정서가 생겨났다. 황우석 사건 당시 MBC <PD수첩>의 책임 프로듀서였으며 지금은 대안언론인 뉴스타파에서 PD 및 앵커 역할을 하고 있는 최승호 PD를 만나 오늘날의 저널리즘에 관해 물어보았다.
(2014년) 9월 29일 오후 7시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참여연대 주최로 영화 <제보자> 시사회가 열렸다. 영화 <제보자>엔 MBC <PD수첩>을 모델로 한 NBS <PD추적>이 나온다. 박해일이 연기한 윤민철 PD가 현재 MBC에서 제작업무를 맡지 못한 한학수 PD를 표현했다면, 윤민철 PD의 선배인 이성호 팀장(박원순 분)이 표현한 것이 최승호 PD다.
최송호 PD는 “영화가 오랫동안, 한학수 PD의 책을 기반으로 여러 감독들이 와서 만든다 만다 얘기가 많았는데 안 만들어지는 줄 알았다”라고 운을 뗐다. 최 PD는 “오랫동안 민감한 문제였는데 올해에는 대법원 판결도 있고 해서 8년 전 사건을 마무리하는 시기가 됐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2006년 4월 서울대에서 파면처분을 받은 황우석 박사는 그해 11월 파면처분 취소소송을 냈고 항소심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지난 2월 대법원이 “논문조작은 엄격하게 징계할 필요가 있다”며 파기환송한 후 8월 22일 고등법원에서 파면이 정당하다는 판결이 확정됐다. 4번의 재판의 결과였다.
영화에 대한 감상은 어땠을까 최승호 PD는 “(영화가) 전반적으로 어떤 면은 매우 세밀한 대사까지 현실을 반영했다”라면서도 “줄기세포 조작을 방송하기까지 과정에 대한 부분은 조금 이해가 안 갔다”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최 PD는 “MBC가 모든 걸 다 했단 식의 설정은 실제완 다른 상황이었다. 우리는 방송을 두 번했다. 첫 번째가 난자매매 연구 윤리에 대한 방송이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강한 반작용에 MBC는 더 이상의 방송을 포기한 상태였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최승호 PD는 “그 다음부턴 ‘브릭’(생물학연구정보센터, BRIC)을 중심으로 한 소장 과학자들의 노력이 국면을 살렸다. 소장 과학자들이 논문을 조사해서 사진 복제나 유전자 지문 문제 등을 밝혀서 황우석 논문이 조작이란 게 과학계 안에선 자명한 사실로 밝혀지는 쪽으로 갔다. 여러 다른 매체 기자들이 상당히 공조를 하면서 노력을 했다. 그런 노력 덕분에 처음에 포기했던 MBC도 자신감을 가지고 다시 방송을 할 수 있었던 그런 상황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이미 황우석 사태의 주역 중 한 명이었던 프레시안의 강양구 기자도 그런 측면에서 이 영화의 내용을 비판한 바 있다. 강양구 기자는 프레시안에 (2014년) 9월 29일에서 10월 2일까지 올린 네 편의 글에서 당시 상황은 영화처럼 방송국 중심으로 전개되지 않았다고 비평했다.
최승호 PD는 “강양구 기자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라고 답했다. 최 PD는 “그 당시 상황은 강양구 기자가 말하는 대로였다. 영화적으로도 의문스러웠는데, 황우석 사태의 역동적이었던 마지막 국면을 영화적으로 잘 소화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최승호 PD는 “영화는 영화다. 감독이 무슨 의도인진 제가 알겠더라”고 영화를 두둔했다. 최승호 PD는 영화 <제보자>에서 유연석이 연기한 심민호 연구원, 실제 사건에서는 류영준 교수가 참여연대 의인상을 수상할 때 임순례 감독을 만났다고 했다.
최 PD는 “감독님은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영화를 만들면서, 한국 언론에 대해 문제의식이 있었다. 특정 상황에서 언론의 선택을 강조하며, 우리에게 저런 언론이 있어야 한다는 그런 긍정적인 메시지에 대중들이 반응하길 바라며 만든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최 PD는 “임순례 감독은 언론인 역시 ‘제보자’로 봤다. 정말 어마어마한 권력을 상대로 한 언론 취재일 경우에, 언론인도 우리 사회를 향해 자기 몸을 바쳐서 호소하는 그런 제보자 역할이 아니겠느냐고 얘기를 하셨는데 충분히 이해가 갔다”라고 부연했다.
MBC가 당시 곤경에 빠진 건 메이저언론 종사자 특유의 자부심이 나쁜 방향으로 작용한 결과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강양구 기자는 9월 말 프레시안에 올린 회고 글에서 MBC <PD수첩>이 처음부터 좀 더 많은 이들의 도움을 구했다면 더 좋았을 거라고 논평하기도 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제보자-김병수-한학수 트리오의 비밀주의는 독이 되었다. 왜냐하면, 제보자의 신분이 노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결국 12월 초에는 몇 개월에 걸친 취재 내용을 보도하기는커녕 프로그램 자체가 존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후배의 특권으로 선배에게 좀 못 되게 얘기하자면, <PD수첩>과 한학수 PD는 공중파 고발 프로그램의 힘을 너무 과신했다. 좀 더 못 되게 얘기하자면, 희대의 특종을 독점하고 싶은 한학수 PD의 욕심도 과했다”라고 적었다.
최승호 PD는 이에 대해 일부분만 수긍했다. 그는 “당시 회상해보면 MBC와 <PD수첩>의 역할이 있었고, 또 다른 언론과 ‘브릭’을 중심으로 한 소장과학자들의 역할이 있었다”라면서도 “하지만 줄기세포가 가짜란 걸 밝히는 과정은 당시 <PD수첩>이 아니었다면 상당히 어렵지 않았을까 한다”라고 답했다.
최 PD는 “방송사는 분석 자원을 굉장히 집중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한학수라는 대단히 뛰어난 PD를 6개월간 투입했고, 공동PD, 조연출, 메인작가, 보조작가 등 여러 스텝들이 팀으로 움직여 많은 장애물들을 돌파해 마지막까지 갔다. 황우석 교수에게 줄기세포를 받아내 그걸 테스트했던 건데, 이건 MBC <PD수첩>이란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의문을 가지고 들어가지 않았다면 어려웠을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또 최승호 PD는 “중요한 건 당시 MBC가 국장책임제 등 나름대로 편집권 독립 제도가 확립되어 있었다는 거다. 그래서 보안을 유지하면서 끝까지 갈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최PD는 ”큰 매체들이 잘해주면, 사회에 영향이 오는 게 바로 보인다. 하지만 큰 매체들은 압력도 많이 받고, 그래서 더 훼절을 하기도 쉽다. 그래서 여타 상대적으로 압력을 덜 받으면서도, 유연하고 자유로운 매체들이 견제를 하는 그런 균형 상태들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메이저언론인 MBC와 대안언론인 뉴스타파를 두루 겪은 최승호 PD의 통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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