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와 물질, 무엇이 먼저인가

김용훈 승인 2018.03.22 13:00 | 최종 수정 2022.07.12 12:17 의견 0

송대 철학자 주자(1130~1200년)가 집대성한 성리학은 훗날 조선의 통치 이념이 됐다. 이것은 사단칠정논쟁(四端七情論爭·조선 중기 성리학자인 이황과 기대승 사이에서 일어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논쟁)과 같은 조선 선비들의 치열한 학문적 논쟁이 되기도 했다.

주희(출처 EBS)
주희(출처 EBS)

성리학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본성이 우주만물의 이치와 같음(性卽理也)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성리학의 핵심인 존재론적 명제는 이기론(理氣論)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시름할 때 고민하는 주제로서 생명이란 무엇인가? 혹은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놓고 볼 때 성리학적 이와 기의 두 가지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리(理) : 가치(섭리·필연·불변), 도덕적 인격, 자기수양, 성(性), 태극(太極·시간과 공간을 초월), 형이상
기(氣) : 물질(변화·우연·운동), 생리적 기능, 체(體), 음양(陰陽·시간과 공간), 형이하

‘기’가 눈에 보이는 존재 그 자체이자 물질이라면 ‘리’는 궁극적 원리의 실체이자 우리가 구현해 나아가야 하는 삶의 진정한 가치들이다. 요즘 시대가 아무리 물질 만능이라고는 하지만 유한한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눈에 보이는 화려한 것과 먹고 자고 마시는 생리적인 것 즉, ‘기’적인 삶에만 치우친다면 죽기 직전에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 삶의 가치는 바로 ‘리’이다. 진정한 삶의 의미란 이러한 ‘리’를 통한 인격의 완성에 있다. 맹자 고자상(告子上) 15장에는 이것에 관해 좀 더 자세하게 말하고 있다.

공도자(公都子)가 물었다.

“똑같은 사람인데, 혹은 대인이 되며 혹은 소인이 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답했다.

“그 대체(大體)를 따르는 사람은 대인이 되고, 그 소체(小體)를 따르는 사람은 소인이 되는 것이다.”

공도자가 물었다.

“똑같은 사람인데, 혹은 그 대체를 따르며 혹은 그 소체를 따름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답했다.

“귀와 눈의 기능은 생각하지 못하여 물건에 가려지니 물건(外物)이 물건(耳目)과 사귀면 거기에 끌려갈 뿐이요, 마음의 기능은 생각할 수 있으니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못하면 얻지 못한다. 이것은 하늘이 우리 인간에게 부여해 주신 것이니, 먼저 그 큰 것(心志)을 세운다면 그 작은 것(耳目)이 능히 빼앗지 못할 것이니, 이것이 대인이 되는 이유일 뿐이다.”

여기서 대체는 ‘리’이고, 소체는 ‘기’이다. 맹자는 눈과 귀는 생각 없이 외물에 쉽게 이끌리기 때문에 이것을 경계했다.

반면에 마음이란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수양을 통해 이목(耳目)의 욕심을 제거하고 고요함을 유지한다면 외물에 쉽게 흔들리지 않고, 그 대체를 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리’도 필요하고 ‘기’도 필요하다. 이기불상리(理氣不相離: ‘리’와 ‘기’가 서로 떨어질 수 없다)이다. 이러한 딜레마적 의문에 대해 대학(大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물건(物)에는 본(本)과 말(末)이 있고 일에는 끝마침과 시작이 있으니, 먼저 하고 뒤에 할 것을 알면 도에 가까울 것이다.”

대체가 근본이자 먼저요, 소체가 말단이자 그다음이라는 것이다. 근본인 대체를 먼저 닦으면 소체는 자연적으로 따라오기 마련이다.

지(志)를 마음(心之官)으로 ‘기’를 몸(耳目之官)으로 봤을 때 맹자는 “‘지’는 ‘기’의 장수이고 ‘기’는 몸에 꽉 차 있는 것이니, ‘지’가 최고요 ‘기’가 그다음이다.”라고 한 것이다.

이렇게 마음이 몸을 잘 다스려서 대체를 따르는 삶을 살 때 우리는 언제나 고요한 마음으로 맑은 정신을 잘 간직할 수 있다.

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이러한 상태의 ‘기’를 맹자는 ‘호연지기’라고 했다. 호연지기의 기상은 마음이 그 바름을 얻었을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지극히 크고 굳센 충만한 기운이다. 맹자가 제시한 대체(心)와 소체(氣)의 실천론은 유가의 적극적인 가치실현과 의리정신의 배양이 강조되었다는 것을 그 특징을 한다.

대체(大體) : 심지관(心之官), 사(思), 사즉득지(思卽得之), 대인(大人)
소체(小體) : 이목지관(耳目之官), 폐어물(蔽於物), 불사즉부득(不思卽不得), 소인(小人)

우리가 수양을 통해 공부가 높아질수록 삶에 집착하지 않고, 삶을 올바로 관조하며, 생명의 비본질적인 것들(소체)이 아닌 생명의 본질(대체)적인 것에 충실해진다. 진정한 도덕적 자기 주체로 서는 것이다.

겸손하게 하늘이 부여한 나의 소중한 삶, 생명을 온전히 하는 것, 이것을 깨달았다면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얻어 삶을 즐기게 될 것이다. 이것이 군자이고 대인이다.

소체만 따르는 삶은 피곤하다. 대체를 추구하는 삶은 단순하다. 담박한 삶을 살면 비로소 삶에 소중한 것(들판의 핀 꽃, 아이들의 웃음소리, 새소리, 경외감, 연민, 감사의 마음, 열정적으로 몰입하여 흘린 땀)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러한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삶 이것이 의미 있는 삶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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