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를 최초로 접했던 시기가 고등학교 때 읽었던 <가난한 사람들>이다.?이 책은 필자를 러시아 문학과 도스토옙스키로 이끌었다. 러시아의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서사는 한국의 가난한 이들의 정서와도 멀지 않게 느껴졌다.<가난한 사람들>은 도스토옙스키가 24세 청년 시절에 쓴 최초의 작품으로 당대 문학평론가 벨린스키, 시인 네크라소프의 극찬을 받으며 일약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사진=가난한 사람들(열린책들)중편소설이라기에는 분량이 다소 적은 이 책은 도스토옙스키가 청년기의 순수한 창작열로 쓴 작품이다. 이때까지는 간질 증상이 드러나기 전이었다.서간체 형식으로 쓰인 <가난한 사람들>은 도스토옙스키 작품 중 난해하지 않고 가난한 연인의 비애를 담은, 슬프고도 사랑스러운 소설이다. 필자를 도스토옙스키 세계 속으로 입문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차르 제국은 불안하지만, 여전히 건재하고 있었고, 하층민의 삶은 궁핍하기 짝이 없었다. 그럼에도 가난하지만, 자존감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는 <가난한 사람들>은 약 6개월간 서른한 통의 편지로 주고받은 내용으로 구성됐다.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며 겨우겨우 살아가는 가난하고 나이 많은 하급관리가 길 건너 하숙집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병약한 젊은 여성을 물질적으로 돕기 위해 자신은 더 쪼들리는 생활을 하면서까지 도움을 주고 염려하는, 그래서 연모의 정으로 발전하지만 끝내 가난 앞에 굴복하는 결말이다.젊은 여성 바르바라는 어느 늙은 시골 지주와 혼인을 결정하고, 마카르는 이를 안타까운 마음을 담은 편지를 보내며 끝난다. 바르바라의 편지글 속에 짧게 나오는, 책을 사랑하고 아끼며 모았으나 병이 들어 죽는 가난한 대학생 이야기는 이 책의 백미였다.가난할지언정, 가난을 극복하지는 못할지라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 애쓰는 궁상맞은 사람들 이야기였다.이어서 읽었던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매우 난해한 작품으로 도스토옙스키의 본격 심리소설의 시작을 알렸다. 이 책의 첫 문장은 강렬했다.
나는 아픈 인간이다.
마치 도스토옙스키에게 덜미를 잡혀 음침한 인간이 사는 지하실로 끌려 가는듯한 기분이었다. 끈질기게 한 인간의 심리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사진=표도르 도스토옙스키도스토옙스키가 살았던 19세기 중엽의 유럽과 러시아는 혼돈상태였다. 도스토옙스키는 <가난한 사람들> 발표 후 단숨에 러시아 문학의 주목받는 작가가 됐으나, 곧 나락으로 떨어지는 삶을 살게 된다.사회주의 사상에 흥미를 느껴 작은 문학 모임에 참여한 이유로 체포된 도스토옙스키는 시베리아로 끌려가 총살형을 선고 받았다. 당시 러시아 황제는 흔들리는 차르 제국의 권력 유지를 위해 사형 쇼를 자주 벌였다. 총살형 직전 황제의 극적 사면으로 지옥에서 건져진 도스토옙스키는 약 6년간 시베리아 유배지 생활을 한다.이때부터 간질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 문단에서 도스토옙스키의 이름은 잊혀졌다. 러시아 문학은 톨스토이, 투르게네프의 명성이 지배했다. 푸시킨도 마찬가지로 이들의 공통점은 뼛속 깊이 귀족이었다.톨스토이는 81세의 나이에도 말을 달리며 자신의 영지를 돌보았고, 죽는 날까지 대문호로서 추앙을 받으며 밀려드는 인터뷰와 추종자들의 접견이 일과였고, 러시아 황제의 극진한 존경을 받으며 자신의 삶을 정리했다.도스토옙스키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정반대의 삶이었다. 시베리아 죄수 시기 작품인 <죽음의 집에서의 기록> 발표 후, 병과 궁핍에 시달렸던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의 소설 판권을 싼값에 넘겼고 이때부터 죽는 날까지 가불인생, 가불노예로 글을 썼다.슈테판 츠바이크의 <도스토옙스키 전기>는 그의 전기문학 모든 작품이 뛰어나지만 그중 유독 도스토옙스키와 니체의 전기가 필자의 영혼을 뒤흔들었다. 니체의 전기는 영혼을 몽유병자처럼 헤매게 했고, 도스토옙스키의 전기는 영혼을 흐느끼게 했다.도스토옙스키는 간질 발작으로 고꾸라지며 피 흘리고, 입가에 거품이 묻은 채 책상으로 기어가 글을 썼다. 간질이 심한 어느 날은 쓰고 있던 작품의 줄거리는 물론 작중 인물들을 모조리 잊어버리는 기억상실이 오기도 했다.츠바이크는 도스토옙스키를 이렇게 말한다.도스토옙스키를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 내면세계에 끼친 그의 문학적 영향력에 관해 논한다는 것은 더더욱 책임이 뒤따르는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이 독보적인 존재의 작가의 문학적 방대함과 위력을 가늠하는 데는 새로운 가치 기준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중략) 그의 작품은 온통 비밀로 가득 차 있다.톨스토이는 그의 일상생활을 공개, 모든 문호를 개방하는 삶이었지만, 도스토옙스키는 완성된 작품 외에 어느 곳에서도 그의 심증을 밝히지 않는다. 그는 늘 혼자였다.도스토옙스키는 용광로에서 달궈진 청동의 형상이다. 그러나 운명을 사랑했던, 운명을 딛고 승리했다.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고, 병의 지배자가 됐다.당시 유럽에서 생산되는 책들은 모두 ‘행복’에 관해서 쓰여있다. 디킨스, 발자크도.하지만 도스토옙스키 인물들은 행복을 원치 않는다. 행복의 순간에도 정지하려 들지 않고, 모두 고통받는 사람들이다.도스토옙스키는 내적으로 철두철미 의식 있는 예술가였다. 인식의 꼭대기에서 영원히 돌을 굴리는 시지프스처럼! 도스토옙스키는 심리학자 중의 심리학자였다.그렇다. 츠바이크의 말대로 그는 심리학자 중 심리학자였다.도스토옙스키는 영혼을, 심리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분석하고 파헤쳤다. 프랑스의 어느 평론가는
도스토옙스키의 세계는 정신병원이다
고 했다.도스토옙스키의 장편소설 <죄와 벌>은 일주일간 벌어진 사건이며, <백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두 시간 동안 일어난 사건이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사흘간 일어난 일이다. 이런 작품에서 보듯 사람의 심리를 이토록 집요하게 파헤친 작가가 도스토옙스키 말고 그 누가 있을까.
사진=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문학동네)여기서 도스토옙스키를 평생 괴롭힌 간질 증세에 대해 말해보자. 츠바이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약 30년간 우정을 이어가며 서신을 주고받았다. 츠바이크는 프로이트 평전을 쓴 바 있다. 두 사람은 도스토옙스키의 간질병에 대해 매우 진지하게 서신에서 논한 적이 있다. 프로이트와 츠바이크의 견해는 서로 달랐다.츠바이크는 도스토옙스키의 간질 발작이 사실은 은밀한 쾌감으로부터 특정 형태의 발작에 대한 욕구가 도스토옙스키 자신에게 자라났다고 분석한다. 과거 총살 사형장에서 처형 직전 생의 절대적 밑바닥에서 되살아났을 때의 극단적인 쾌감은, 도스토옙스키가 소설을 쓰지 않을 때는 도박에 가진 전 재산을 걸고 느끼는 스릴로 발전했다는 것이다.하지만 프로이트의 분석은 달랐다. 프로이트가 츠바이크에게 보낸 서신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도스토옙스키의 간질은, 모든 거장은 틀림없는 히스테리 환자이다. 심리적 기질 자체에서 유래하는, 이 힘이 천재적인 예술가의 재능으로 피어난다. 도스토옙스키 작품 전체는 그의 히스테리 위에 건설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도스토옙스키의 병리학적 모습은 상반된 감정이 동시에 일어나는 양가감정으로, 강력한 양가감정의 기제가 유년기의 외상과 결합하면 평소와는 다른 격렬한 히스테리성 질환을 일으킨다. 도스토옙스키 거의 모든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양가감정을 지니고 있다.도스토옙스키의 간질 증세에 대해 츠바이크의 분석이 맞는지, 프로이트의 분석이 맞는지 필자는 알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은 평생 간질 발작에 시달린 토대 위에 세워졌다는 점이다.도스토옙스키 작품 이해도를 높이는 위해 도스토옙스키 연보 중 중요 부분만 정리했다.- 1821년 모스크바 자선병원 주치의였던 부친의 관사 빈민구제원에서 출생- 1838년 (18세) 도스토옙스키 부친, 농노들에 의해 살해당함- 1845년 (24세) <가난한 사람들> 집필- 1846년 간질 증세 발병- 1849년 (28세) 체포되어 사형선고, 황제특사 형 집행 중단, 강제노동 4년 수용소 생활- 1854년 (33세) 출옥- 1860년 (39세) <죽음의 집>, <백야> 집필- 1862~1864년 유럽 유랑- 1864년 (43세) <지하로부터의 수기> 발표- 1866년 (45세) <죄와 벌>, <백치> 쓰기 시작- 1871년 (50세) <악령> 연재 시작- 1878년 (57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쓰기 시작- 1880년 (59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출판- 1881년 60세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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