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마드 몰카범 실형 판결 의미는?

박가분 승인 2018.08.14 18:47 | 최종 수정 2021.09.30 11:49 의견 0

최근 홍대 누드크로키 수업에서 남성모델을 대상으로 몰카를 촬영·유포한 워마드 회원 안모씨(25)가 실형(징역 10개월 및 성폭력교육 40시간 이수) 선고를 받았다.

이에 여성계에서는 몰카 초범에게는 이례적이고 편파적인 판결이라며 반발하지만, 이는 평소 몰카범죄에 대한 엄정대응 주문에 비춰 모순이라는 지적이 많다. 오히려 여성계에서 외쳐온 ‘성별 동일범죄 동일처벌’이라는 구호가 여성계가 평소 지향했던 바대로 실현된 셈이다.

동일범죄에 대한 동일수사 즉각 진행하라(출처 한국여성단체연합)
동일범죄에 대한 동일수사 즉각 진행하라(출처 한국여성단체연합)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서라도 가해자 안모씨를 선처해야 된다’는 주장을 노골적으로 할 게 아니라면, 몰카범죄에 대한 경각심에 힘입어 나온 이번 판결에 대해 ‘편파’ 운운하는 발언은 결국 하나마나한 소리다.

또한 이미 여러 언론과 전문가가 지적했듯이 이번 판결이 실제 법리적인 ‘형평성’에도 어긋나지 않기 때문에 최근 논란은 결국 해프닝으로 끝날 전망이다. 흔히 비교 대상이 된 (집행유예 등으로 끝난) 다른 몰카사건들은 대개 피해자의 처벌불원, 피해자의 얼굴이 나오지 않음 등을 고려한 경우가 많다.

이와 달리 홍대 몰카 사건의 경우에는 피해자의 강력한 처벌 의사뿐만 아니라, 얼굴 등의 신상 유출, 몰카의 2·3차 유포 및 재가공 정황이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이 때문에 최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이은의 변호사는 (비록 워마드에 동정적인 입장으로 보이지만)

홍대 누드모델 몰카 공판에서 나온 실형 선고 역시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는 견해를 밝혔다. 오히려 이번 판결에서 곱씹어야 할 의의는 다른 데 있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워마드의 2차 가해가 형량을 키우다

사실 재판부가 워마드 몰카범에게 실형을 선고하게 된 1등 공신은 정작 워마드 회원 자신이라는 점을 당사자들이 깨달을 필요가 있다. 판결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워마드에서 피해자의 신상이 유포된 점을 판결의 직접적인 배경으로 언급하고 있다.

피고인은 남성혐오 사이트에 피해자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나게 해 심각한 확대재생산을 일으켰다.

물론 이번 판결은 몰카범 안모씨를 대상으로 나왔지만, 워마드 회원들이 홍대 몰카 피해자의 사진을 악의적인 방식으로 반복 게시한 행위가 형량에 영향을 미쳤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워마드 시위 현장에 등장한 2차 가해 및 남성혐오 피켓
워마드 시위 현장에 등장한 2차 가해 및 남성혐오 피켓

실제로 워마드에서 유포된 사진과 피해자를 조롱하는 그림은 ‘혜화역·광화문 워마드 시위’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시위 피켓으로 쓰였다. 워마드 성향 네티즌들은 이러한 행동이 가해자를 엄호한다고 생각했으나, 오히려 가해자에게 독이 돼 돌아온 것이다. 결국 워마드 회원 자신들의 ‘멍청함’이 일을 더 키웠다고 할 수 있다.

망상에 기반한 집단행동은 사회적 상식을 이길 수 없다

아울러 워마드뿐만 아니라 다수의 여초 사이트에서 홍대 몰카 피해자가 일부러 신체를 노출했다는 등의 헛소문이 사실인 양 유포됐지만, 이번 판결로 이러한 주장 어느 하나도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 명확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헛소문에 기반한 집단망상이 혜화역 시위 등의 도화선이 됐던 것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집단망상에 빠진 집단행동의 규모가 얼마나 됐던 그것이 사회적 상규와 논리를 이길 수 없다는 교훈을 이번 판결을 통해 얻을 수 있다.

‘남성혐오’라는 사회적 실체를 명시하다

그동안 많은 페미니스트는 ‘남성혐오’는 성립하지 않는다거나, ‘남성혐오’는 ‘여성혐오(미소지니)’와 달리 그 수준이 경미하다는 주장을 반복적으로 제기했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실제 현실적 규범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번 판결이 재확인시켜줬다.

과거에도 이미 여성 혐오발언인 ‘김치녀’ 등에 뒤이은 ‘한남충’ 등의 남성 비하발언을 모욕죄로 인정한 판례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재판부(여성판사)가 직접 워마드를 “남성혐오 사이트”라고 명시한 것이다. 이 판결 앞에서 ‘남성혐오는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여성계의 각종 주장은 힘을 잃게 됐다.

사실 이들의 ‘이론적’ 주장이 ‘현실적’ 규범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은 결국 이들의 주장이 처음부터 이론에서도 틀렸기 때문이다. 애초에 ‘여성혐오와 달리 남성혐오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여성혐오’에 대한 일부 페미니스트의 ‘조작적 정의’에 기반했기 때문이다.

사실 페미니즘계의 여성혐오 담론은 ‘미소지니’라는 고대그리스어 합성어에 ‘본래부터’ 무언가 특별한 의미(예 여성혐오는 하나의 초역사적인 사회구조다)가 있다고 주장하는 일종의 ‘지적 사기’에 가깝다.

미소지니를 ‘여성멸시’로 번역하든 ‘여성혐오’로 번역하든, 그 어원 미소지니(misogyny)는 마찬가지로 ‘남성멸시’, ‘남성혐오’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 미산드리(misandry)에 비해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거기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해석하는 행위는 후대의 페미니스트일 뿐 심지어 그 해석에도 이렇다 할 역사적, 학문적, 이론적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자세한 반박은 <포비아 페미니즘>·<소모되는 남성> 참조).

분노하는 이유조차 까먹은 그들

물론 어떤 여성 혹은 남성들은 단지 ‘여성에게 실형이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이번 판결에 분노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어느 순간부터 ‘왜’, ‘무엇에’ 대해 분노했는지 잊은 사람들이다. 성별 외의 어떤 변수가 사건에 영향을 미쳤을지에 대한 사고능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들의 분노에 공감하기 이전에 그들이 사고능력 상실은 물론 자아망실 상태에 빠지게 된 불행한 사태의 이유를 ‘멈춰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여성단체들과 함께 지난 10일 낮 12시 경찰청 정문 앞에서 경찰의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출처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여성단체들과 함께 지난 10일 낮 12시 경찰청 정문 앞에서 경찰의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출처 한국여성단체연합)

실제로 우리 사회에는 일베, 태극기 부대에 이어서 메갈리아, 워마드까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분노를 위한 분노’가 만연해 있다. 이것은 분명 진지한 분석이 필요하다. 하지만 또 중요한 점은 그 분노에 다른 정상인들도 휩쓸리지 않는 것이다.

우리 사회 일각은 이유를 불문한 맹목적 분노에 공론의 에너지를 지나치게 허비해온 나머지 이성적 논의가 불가능할 지경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극단적 분노를 낳은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불안정성, 상업주의적 언론, 세대와 성별 간 문화적 단절 등등의 ‘뿌리’를 잊지 않되, 현실의 대안과 규범에서는 이성적 태도를 견지해 나가는 균형감각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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