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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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7 12:12 | 최종 수정 2021.09.30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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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위력에 의한 간음죄’ 등 성범죄 혐의를 받고 있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성관계 직후 “지사님 말고는 아무도 날 위로하지 못한다” 등 다소 모순적인 언행과 문자내역 삭제 등으로 주장의 신빙성이 인정되지 못했고, 무엇보다 안희정이 주변에 위력을 행사했다는 정황이 드러나지 않은 탓이 크다.
이에 각종 언론·단체·정당에서는 ‘미투운동에 찬물을 끼얹는 판결’이라는 식의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미투운동 국면에서 무리하고 파행적인 폭로가 있었던 점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안 전 지사에 대한 폭로에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 많다. 미투운동의 파행적 양상의 부작용에 대한 경고에 귀를 애초에 기울이지도 않고 나중에 부는 역풍만 탓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오히려 미투운동을 주도했던 언론과 여성계는 그 경고를 무시했던 청구서를 지금 받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여성계는 물론 진보진영 전반에서는 방법론상의 ‘실천적 책임’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생각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번 판결에 대해서도 시끌벅적한 ‘젠더감수성 경연대회’ 이상의 발언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이 한계를 넘어서 사건을 차분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개인에 대한 악마화
기본적으로 안희정 관련 판결에 동의하든 안 하든 재판에 임하는 전략이 잘못됐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많은 법조인은 (일부 피해 사실은 있을 수 있으나) 다섯 번의 강제추행이 있었다는 주장에 더해 네 번의 성행위 모두 위력에 의한 성폭행이었다는 공소제기가 처음부터 무리였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피해호소인의 변호인단과 검찰은 처음부터 안희정 개인을 ‘악마화’하는 데 몰입한 나머지 무리한 공소제기로 무죄판결을 자초한 셈이다.
안희정 개인에 대한 악마화는 법정에서 검찰 측이 안 전 지사를 두고 ‘덫을 놓은 사냥꾼’이라는 멜로드라마적 설정을 거론하는 데서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이것은 정작 피해호소인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했다.
초점이 안희정 개인의 ‘악마성’에 맞춰질수록 마찬가지로 피해호소인의 모순점과 인간적 결함이 더욱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여성단체는 ‘피해자다움’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항변하지만, 이는 적어도 가해지목인의 ‘가해자다움’을 부각시키는 측에서 할 말은 아닐 것이다.
애초 김씨측 변호인단과 여성단체의 전략은 안희정을 엄청난 위력을 소유한 ‘괴물’로 묘사함으로써 역으로 김씨의 진술에 다소 부족한 신빙성을 보강하자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가해자의 스테레오타입에 호소하는 것. 그러나 이게 멜로드라마적 서사를 좋아하는 일부 대중에게 먹힐지는 몰라도 법리적으로는 쓸모없다는 게 이번 판결에서 드러난 것이다.
물론 피해 사실 규명과 회복을 호소하는 목소리는 정당하다. 문제는 언론이나 사회운동단체 활동가 머릿속 한켠에는 이러한 목적이 상대를 (안희정의 경우처럼) 무시무시한 위력을 가진 악마쯤으로 묘사해야만 달성될 수 있다고 믿는다는 데 있다.
성폭력 피해호소인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비판하는 이들이 정작 가해지목인에 대해서는 어떤 스테레오타입을 만들어 확대재생산 하는 게 지극히 정당하고, 올바르고, 도덕적이라고 믿는 것은 커다란 아이러니이다. 이게 일부 언론과 여성계가 이끌어가는 미투운동의 가장 큰 모순점이지만 아무도 그 모순에 대해서 비판하지 않는다. 아마 이들은 자신들의 패착이 뭔지도 모른 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똑같은 역풍과 마주할 것이다.
법을 바꿔도 안희정 처벌은 무리
14일 판결을 보도한 JTBC 손석희의 <뉴스룸>은 우리나라에 ‘yes means yes’, ‘no means no’로 대표되는 비동의 간음죄 관련법이 없어서 안희정을 처벌할 수 없었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친 바 있다. 그다음 날 정의당 이정미 대표도 이러한 논리를 따라서 관련 입법 논의를 주문했다. 그러나 법을 바꾼다고 해도 안 전 지사에게 유죄가 내려질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상당수 법조인의 견해이다.
우선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노영희 변호사는 “(최근) 법원에서는 여성들이 싫다고 말했으면 그거는 저항한 것이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김씨 측에서 명확한 거부 의사를 보인 적이 없다는 점이다. 법이 바뀐다 해서 ‘바닥을 보며 중얼거렸다’는 주장이 거부 의사로 인정되기는 어려우며, 일부 해외사례처럼 ‘yes means yes’ 원칙을 따라도 명확한 거부 의사 없는 성적 행위를 무조건 처벌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
물론 다른 피해사례를 구제하기 위해 법을 바꾸자는 논의는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안희정 사건 단독으로는 그 입법 논의의 동력이 되긴 힘들 전망이다. 앞으로 안희정 사건 항소심을 진행하면 할수록 안희정에게 불리한 정황보다 김모씨에게 불리한 정황이 더 나올 수 있다. 지금까지 ‘2차 가해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김씨에게 불리한 정황에 대한 전달을 ‘억압’해왔던 것이 앞으로 더 ‘풀려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분노하는 진짜 이유
애초에 사건이 장기화하고 정보전달과 숙고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폭로인에게 불리한 양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김씨의 변호인단이나 지원단체도 ‘초전박살’을 노리고 안희정 개인을 ‘악마화’하는 여론전에 호소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렇듯 선제적인 폭로를 통해 한 개인을 악마화해서 자신에게 불리한 정황을 얼버무리는 것은 과거 90년대 ‘운동사회내 성폭력추방 위한 100인위’ 이래로 여성계에서 고질적으로 반복돼 온 반성폭력운동의 관행이다. 이번 판결의 의의는 이러한 운동의 방식이 어느 지점부터는 더는 안 통한다는 신호를 보낸 데 있다. 여성계가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경제학 박사. 프리랜서 작가. '그 페미니즘이 당신을 불행하게 하는 이유'(2019, 공저), '포비아 페미니즘'(2017), '혐오의 미러링'(2016),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2014), '일베의 사상'(2013) 출간. '2014년 변신하는 리바이어던과 감정의 정치'로 창작과 비평 사회인문평론상 수상과 2016년 일본 '겐론'지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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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xwon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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