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갈피 못잡는 한국 보수

박수현 승인 2019.04.02 12:18 | 최종 수정 2020.04.09 17:28 의견 0

최근 들어 필자를 황당하게 만드는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 바로 한국 특유의 반일정서와 소위 ‘국뽕’이라고 불리는 민족주의 과잉현상을 비판하다가 갈피를 잃어버린 나머지 자국 비하를 일삼는 사람들이다.

단순히 반감을 드러내는 정도였다면 상관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에게선 그 어떤 구체적 대안도 찾을 수 없을뿐더러 고작해야 국민의 보편 정서를 냉소하며 우월감을 과시하는 게 전부라는 점이다.

대중들에게 어필할만한 자신들만의 가치 체계가 얼마나 허술한지, 윤서인 같은 교조주의에 물들어 있는 만화가를 추종하는 거로 모자라 대놓고 혐한을 콘텐츠로 삼은 외국인 유튜버를 대안으로 세우기도 한다.

윤서인의 유튜브 '윤튜브'
윤서인의 유튜브 '윤튜브'

물론 필자도 쇼비니즘과 같은 배타적 집단주의나 신선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각종 대중문화작품이 습관적으로 꺼내 드는 반일코드를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이를 통해 개인의 사생활마저도 검열하려 드는 사람들을 보면 당혹스럽기도 하다(예: 3·1절에 일본 음식을 먹었다는 이유로 매국노로 매도하는 행위).

하지만 무언가를 안티하기 이전에 제대로 된 안티테제(antithesis)부터 찾는 게 우선이다.

그게 안 되는 몇 가지 유형을 살펴보자. 가령 페미니즘이 싫어서 여성혐오적 발언을 쏟아 내거나, 꼰대 문화를 비판한다는 빌미로 윗사람한테 대드는 걸 ‘자랑거리’ 내지는 ‘멋’으로 여기거나, 군인에 대한 열악한 처우를 논하면서 군인들이 느끼는 일말의 자부심마저도 ‘노예 족쇄 자랑’이라고 격하시키는 경우 등이 그렇다.

구체성 없는 안티테제들이 대개 이렇게 갈피를 못 잡고 헤매기 마련이다.

윤서인, (비록 망했지만)유머저장소, 스시코TV 등의 근변에서 흐르는 반민족주의 정서 또한 다르지 않다. 민족주의는 과해질 경우 쇼비니즘이나 파시즘을 낳을 위험은 있지만, 그 자체로 개인을 뛰어넘는 거대한 사회단위에 결속력을 제공하는 원천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에 대한 반감으로 자신이 속한 민족 정체성을 ‘미개하다’고 냉소하는 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이중적 기만일 뿐이다.

내친 김에 말하자면 자기가 속한 나라의 근본마저도 통째로 부정하며 타국 워너비 인생을 살 바엔 차라리 국뽕에 취하는 게 낫다. 후자는 동기라도 있기 때문이다.

대안 우파들의 고질병

새삼스럽게 얘기했지만 이건 인터넷 대안우파, 한국 보수들의 고질병이다. 이들은 요즘 같이 욜로(YOLO) 정신이 유행하는 시대에 정말로 가치 있을 법한 보수주의 철학을 제시하기보단 언제나 진보·좌파들에 대한 ‘안티테제’에 머무를 뿐이었다.

자기들 스스로 가치를 생산할 능력이나 그만한 결속력이 없으니 오로지 좌파에 대한 반감만을 동력원 삼아가며 겨우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윤서인, 유머저장소, 스시코TV 같은 가십성 콘텐츠에 매몰되는 건 부지기수다. 당연히 이런 가십성 콘텐츠에는 대중들을 위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이 없으며 그들만의 지적 완결성과 언더도그마만이 팽배할 뿐이다.

하지만 요즘같이 젊은 세대에게 보수적 가치를 어필하기 좋을 때도 없다. ‘신자유주의’, ‘가부장제’ 따위의 거대담론으로 일축하는 진보진영의 논리 습관도 약발이 거의 다 했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이제 구시대적인 이데올로기 논리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원하고 있다. 더군다나 현재의 20대는 진보·좌파의 입에 발린 청년동정론에 예전만큼의 위로감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이들은 보수주의자인 조던 피터슨의 ‘네 방부터 정리하라’는 말에 강한 자극을 받곤 한다. 용이 되진 않더라도 개천에서 벗어나 계급 상승의 꿈을 꾸지, 개천물을 맑게 한다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조던 피터슨 심리학과 교수의 강연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조던 피터슨 심리학과 교수의 강연

또한 이들은 ‘욜로(YOLO·You Only Live Once의 약자로, ‘인생은 오직 한 번뿐’이라는 의미)’와 ‘자유’를 말하지만 동시에 ‘인싸’, ‘아싸’ 담론에 집착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들은 “너희가 아무리 욜로를 외쳐도 너희를 인싸로 받아주고 소속감을 제공해줄 곳은 결국 ‘가족’밖에 없단다”는 말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미개한 조선인들은 답이 없다. 쯧쯧” 이상의 무언가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보수의 미래도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고 본다.

저작권자 ⓒ 리얼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