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처는 철학자를 만들고, 분별력 없는 ‘미투’는 나를 예술가로 만들었다.
하일지 작가가 개인전 오프닝을 앞두고 필자에게 한 말이다. 삼십여 년간 문학가로 살아왔던 하일지 전 동덕여대 교수가 미술 작가로의 전격 변신은 한국 문학사에서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3월 동덕여자대학 강단을 떠난 후, 고독한 시간과 고립된 나날의 연속이었다. 하일지 시집 <시계들의 푸른 명상>에 나오는 시구처럼 반복되는 시간을 돌고 도는 시계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천재적 상상력과 창의적인 영혼이 어딜 가겠는가. 고독의 심연 속에서 마치 용암처럼 솟아오른 예술혼은 문학이 아닌 회화로 표출되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11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하 작가로부터 들었다. 올해 3월 말경 개인전 소식을 알려왔을 땐 경이로운 충격이었다. 무려 89점을 전시한다니! 그것도 <시계들의 푸른명상> 하일지 개인전이었다.
혹자들은 하 작가가 평소 그림을 취미로나마 그렸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겠지만, 그는 전혀 정식 미술 교육을 받은 적도 없으며, 중·고등학교 미술 수업 시간에 그렸던 것이 전부라면 믿겠는가. 약 넉 달간에 걸친 그림 작업으로 대가가 탄생한 것이다.
평생 그림에 몰두한 대부분 작가의 작품을 두고 전기·중기·후기로 나누어 평가하기도 하지만, 단 몇 달 만에 완성한 작품을 두고 전기·중기·후기로 나누어 감상한다는 사실도 조금은 이상하고 놀랍다.
지난해 11월부터 잔잔한 강물과 숲, 나룻배를 소재로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하다, 돌이 박혀있는 나무들 시리즈는 마치 하 작가가 처한 당시의 심경과 세간의 눈초리를 대변하는 듯 했다.
이어 자신의 시집 <시계들의 푸른명상>(1994)의 이미지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이번 전시회의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자신의 소설 <우주피스 공화국> 내용으로 한 약 16점이 넘는 작품 시리즈다.
더없이 이국적인 인물과 풍경, 엔틱한 색채와 눈보라 치는 쓸쓸한 저 먼 나라 우주피스 공화국을 찾아 헤매는 소설 속 주인공 ‘할’의 비극적 여정이 압축돼 있다.필자는 개인전을 앞둔 하일지 작가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만약에 별 일 없이 그냥 강단에서 문학 수업을 쭉 이어왔다면 지금처럼 그림을 그렸을까요?
이에 하 작가는
강단에 있었으면, 늘 하던 대로 수업하고 학부생들 학점 매기고, 사람 만나고 대학교 일로 업무상 회의나 하면서 그렇게 지냈겠지.
세상일은 참으로 알 수 없고 아이러니하다. 지난해 느닷없이 한국 사회를 덮친 ‘미투 운동’은 하 작가로 하여금 강단을 떠나게 만들었다. 그 일이 결과적으로하 작가를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만들었으니.지난 13일 개인전 오프닝에 참석해 그림을 감상하며 드는 생각은 이랬다.
강단에서 이런 천재가 묵히기에는 아깝지 않은가!
오히려 강단에서 쫓아낸 동덕여대생들이 고마울 정도라는 다소 황당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 덕에 한국 문학사에 있어 문학과 그림을 동시에 이룬 인물을 만들어냈으니까.
하일지 전 교수는 1990년 문제적 장편소설 <경마장 가는 길>로 데뷔한 이래 12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그중 두 편인 <경마장 가는 길>과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는 영화화됐다.
또 여러 편의 시집을 발표했는데 그 중 이번 개인전 타이틀인 <시계들의 푸른명상>은 먼저 영어로 쓴 시집으로 국내 번역·출판됐다. 프랑스어로 직접 쓴 <내 서랍 속의 제비들>은 파리에서 출간된 작품이기도 하다.
필자는 지난해 6월 미투 운동 비하 논란으로 사과를 거부하며 강단을 떠난 하일지 전 교수를 두 차례 인터뷰한 적이 있다. 새로운 작품을 쓰시라는 말에 하 작가는 “인격 살해당했지만 새로운 소설 쓰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아직은 집필에 착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언론과 학생들의 난데없는 비난에 정신적 충격이 좀 컸습니다. 문화혁명 당시 느닷없이 들이닥친 홍위병들에 의해 온갖 수난을 당했던 중국의 노학자나 문인들의 심정이 저와 비슷했을 것입니다.
(중략)
그런데, 내가 왜 그런 비난을 받아야 했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비난 받아 마땅한 짓을 한 적이 없으니까요.
(중략)
언론이 철없는 학생들이 퍼트린 것을 생각 없이 받아 무슨 경천동지할 일이 일어난 것처럼 떠들어댄 게 사건의 전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론과 학생들은 사과를 요구했고, 저는 단호히 거절했는데, 이것이 위기라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제가 기자회견을 열어 강단을 떠난다고 선언한 것이 절정이라고 할 수 있지요.
훗날 사람들은 한 문학 교수가 강의실에서 한 발언이 미투운동가들의 심기를 건드려 결국 강단에서 물러난 사태를 두고 한국사회에서 일어난 가장 아이러니하고도 코믹한 사회·문화적 사태 중 하나로 오랫동안 이야기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필자가 주변의 소설 지망생에게 참고로 권하는 소설 작품이 바로 하일지 <경마장 가는 길>과 <경마장은 네거리에서>다. 현대적이고 독창적인 문학적 형식을 만날 수 있으며, 구성이 완벽에 가까운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주피스 공화국>은 한국 소설 중 최고로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걸작이다. 한국 소설 중 이렇게 예술성과 더불어 낯설고 환상적인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돌이켜보면, <우주피스 공화국>은 회화적인 상상력을 충분히 갖춘 소설로, 하 작가 본인의 소설을 그림으로 그려냈으니 작품의 전달력에 있어 더 말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싶다.
<시계들의 푸른명상> 하일지 개인전을 개최한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위치한 논밭 갤러리에 1층은 하 작가의 초기 풍경화가 전시돼 있고, 3층 두 개의 방에는 ‘돌이 박혀있는 나무’와 ‘시계들의 푸른 명상’ 그리고 방 한 개는 ‘우주피스 공화국’ 시리즈로 연결돼 감탄을 자아낸다.
개인전 오프닝에 참석한 강찬모 화백은 극찬을 쏟아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며, 그림에 더욱 정진한다면 일가를 이룰 것이라 장담했다. 또 한국 문학계의 거두 이문열 작가는 그림 한 점 한 점을 놓치지 않고 찬찬히 들여다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얼마 전에 필자에게 들려준 후일담 한 가지가 떠오른다. 지난해 11월 처음으로 하 작가가 인사동 화방에 들러 캔버스와 물감 등 그림 도구를 사기 시작했다. 취미로 그리려니 짐작하는 사람치곤 도구를 사도 너무 많이 사들이니 이상하게 여겼다고 한다.몇 달 후 하 작가가 개인전 소식을 들려주며 자신의 그림 몇 점을 보여주니 한국 사람이 이런 유형의 그림을 그릴 수가 있느냐며 단시간 내에 이런 경지에 오른 것을 일찍이 본 적 없다면서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지난해 6월 필자와의 인터뷰 말미에서 하 작가가 강하게 말한 대목이 있다.
저는 죽을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이고, 제가 해야 할 일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바로 이점 때문에 과격한 미투 운동가들은 저에 대하여 분노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할 수 없죠.
그렇다, 그는 죽지 않았다. 미투 운동의 광풍 속에서 살아남아 또 다른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다. 페미니스트계는 이런 하일지 작가가 불편할 것이다. 불편한 것이 당연할 터이지만, 그녀들이 불편하다고 해서 한 개인의 예술성을 폄하하거나 저지하지는 못할 것이다.
필자의 바람은 하 작가가 시집 <내 서랍 속의 제비들>과 가장 좋았던 소설 <누나>를 소재로 그림 작업에 도전하는 일이다. 독보적인 상상력이 담겨있는 작품으로 자신의 문학을 그림으로 재탄생시키는 일 또한 전례가 없는 사건일 테니 말이다.
<초대전 소식>
- 전시명 : <시계들의 푸른명상> 하일지 개인전
- 전시기간 : 2019년 4월 13일 ~ 2019년 5월 5일
- 전시장소 : 논밭갤러리(경기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93-45)
- 전시장르 : 회화
- 관람 안내 : 수~일요일 오전 11시 ~ 오후 6시 / 매주 월·화요일 휴관
- 문의 : avecagency@gmail.com(큐레이터 김선한·천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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