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장 가는 길’을 들고 한국 문단에 무단침입했던 하일지가 이번에는 독특한 그림을 들고 화단에 무단침입했다. 30여 년 전 그의 출현이 한국 문학사에 일대 사건이었듯이 이번에 그의 무단침입은 한국 미술사에 일대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나는 예감한다.
-김봉준(화가)
30년간 문학가로, 문학교수로 살아오다, 미술계에서 관심이 있든 없든 이제는 진짜 화가가 된 하일지. 개인전은 2019년 4월 최초로 파주 헤이리 논밭갤러리 전시회 후 이번까지 4번째다. 그룹전은 지난해 유럽 화가들과 프랑스 남부도시 ‘비시’, 동부도시 ‘포르바크’ 등에서 4번을 열었고, 예정된 그룹전만 해도 서울, 프랑스 그리고 뉴욕 전시회가 있다.
나는 하 작가가 화가로 탈바꿈한 과정을 누구보다 소상히 알고 있지만, “도대체 이게 가능한 일인가?”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 작가 본인도 “내가 화가가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했으니까 말이다. 발단은 2018년 3월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수업 중 김유정 ‘동백꽃’을 주제로 설명을 하다 벌어진 하일지 사태는 여학생들의 “미투 비하, 2차 가해”라는 집단 항의와 시위를 일으키며 발칵 뒤집혔다. 하 교수는 즉각 “미투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무례하고도 비이성적인 도발”이라 반박하며 사직 기자회견과 동시에 20여 년간 재직하던 강단을 미련 없이 떠났다.
나는 그 사태를 보고 곧바로 내 블로그에 ‘하일지 교수 사태와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라는 글을 썼다. 그리고 그해 6월에 두 차례에 걸쳐 하 교수의 심경을 담은 인터뷰를 진행했다. 하 교수의 칩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18년 11월 초, 화구를 장만하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새로운 삶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좀 웃긴 얘긴데, 하 작가가 그림을 그리겠다고 처음으로 인사동 화방을 찾았을 때 아크릴물감이 뭔지, 캔버스 호수도 몰랐다는 것이다. 화방 주인이 챙겨주는 대로 물감 몇 통, 붓 몇 자루 등을 사들인 게 그림 작업의 출발이었다.
그때부터 마치 손끝에 신이 들렸는지 그림에 몰두하더니 작품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분별없는 미투는 나를 화가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독창적인 화풍의 그림을 미친 듯이 그렸다. 12편의 장편소설, 여러 단편과 시집을 쓴 작가답게 문학적 내러티브와 상상력이 어우러진 자유분방한 작품들이었다. 파주 헤이리의 첫 개인전 ‘시계들의 푸른 명상’ 시리즈, ‘우주피스 공화국’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색깔은 푸른빛이다. 당시 나는 하 작가에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인 ‘누나’(2014)를 소재로 그림을 그려도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한 적 있다.
왜냐면, ‘누나’는 ‘경마장 가는 길’ 등 일련의 작품에서 보여준 포스트모던적인 경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작품이기 때문이었다. ‘누나’는 한국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오는 토속적인 전설과 신화적 판타지가 뒤섞인 해학적이며 독창적인 소설이었다. 마침내 ‘누나’는 ‘늙은 떡갈나무한테 시집간 처녀 이야기’라는 그림으로 재탄생했다.
‘늙은 떡갈나무한테 시집간 처녀 이야기’ 전시회는 하 작가가 소년 시절 잠시 살았던 충북 단양 근처 한 시골마을의 이야기다. 붉을 ‘단’, 단양이어서일까. 이번 전시회 빛깔은 주홍빛, 붉은 황토색으로 펼쳐져 있다. 12살 소년이 사는 마을은 기묘한 전설, 민간설화가 어우러진 곳이다. 또 이제 막 성적 호기심에 눈을 떠가는 12살 소년의 황당한 상상력이 해학적인 동시에 어떤 쓸쓸한 비애감을 자아낸다.
마침 나와 같은 시간에 하 작가의 지인 두 분과 함께 그림 설명을 듣고 난 후 잠시 비평의 시간을 가졌다. 그 중 한 분인 오정국 시인이자 전 한서대학교 교수의 비평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화가들은 대부분 대상에서 시작해서 그림을 그리지만, 하일지는 스토리에서 먼저 출발해 대상을 창작하고, 그 대상은 다시 자신에게로 향한다. 카뮈는 이런 말을 했다. ‘지상의 모든 풍경은 내 마음의 풍경이다’ 오늘 감상하는 그림이 그렇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동의했다. 문학적 서사와 엑스선을 투과하듯 대상을 보는 창의적인 해석이 하일지 그림 세계다.
현역 작가 중에 이렇게 그리는 사람을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그가 그려내는 그림들에는 천재성이 느껴진다.
-강찬모(화가)
작가로서, 화가로서 하일지는 한 마디로 천재다. 창작의 괴물이다.
-이무영(영화감독·교수)
비록 주류 미술계의 이단아로 취급받지만, 하일지 작품세계에 매혹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 됐다. 성공이다. 나에게 마치 앞날을 예견하듯 했던 말들이 모두 이루어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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