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헌고 성평화 동아리 해체 반대 시위 현장에 가다

[인터뷰] 한국성평화연대 이명준-인헌고 성평화 동아리 왈리 최인호

사막호 승인 2019.05.20 16:44 | 최종 수정 2020.12.23 13:07 의견 0

최근 필자는 ‘성평화주의라는 것을 추구하던 어느 고등학교 동아리’가 “페미니즘에 위배된다”며 학교 측에 의해 해산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대체 성평화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동아리가 해체되는 걸까.마침 한국성평화연대(이하 한성연)가 지난 18일 오후 6시 서울시 관악구 낙성대역 2번 출구에서 동아리 해체에 반대한다는 시위를 벌인다기에 필자는 조금 일찍 찾아가서 이들을 만나기로 했다.

오후 5시 즈음 현장에 도착해보니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중 한성연의 이명준 대표(이하 ‘이’)와 사실상 해체상태인 인헌고 성평화 동아리 왈리(WALIH)의 회장 최인호(이하 ‘최’) 군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성평화연대 이명준 대표(사진 왼쪽)와 인헌고 성평화 동아리 왈리 최인호 회장(오른쪽)
한국성평화연대 이명준 대표(사진 왼쪽)와 인헌고 성평화 동아리 왈리 최인호 회장(오른쪽)

성평화는 차이를 인정하고 남녀 간 화합을 도모하는 사상.

Q. 만나서 반갑고 인터뷰에 응해주어 고맙다. 먼저 ‘성평화’라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명준 : 평화란 남녀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화합을 도모하자는 사상이다.

Q. 조금 모호한 것 같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 이를테면 성 담론을 다루는 기존 사상들과의 차이점 같은 것들 말이다.

이명준 : 현 페미니즘과 비교를 해 보겠다. 현 페미니즘은 남녀 간의 근본적 차이를 부정하며, 궁극적으로 남녀가 모두 똑같이 되는 것을 추구한다고 본다. 그러한 관점하에 남성성이란 그저 강간과 폭력이나 저지르는 하찮은 것으로, 여성성이란 그저 노예성 정도로 폄하한다.

나는 이러한 기존 페미니즘의 담론의 인위적 남녀동일화 추구가 오늘날 젠더갈등 현상에 많은 원인을 제공했다고 보았다. 그래서 남녀 간의 차이를 폭압적으로 부정하는 종래 페미니즘의 관점을 넘어, 남녀 간의 근원적 차이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인정 속에서 서로 간에 이해와 화합을 도모하는 ‘성평화’사상을 만들게 됐다. 그리고 사람들을 모아 우리의 뜻을 알리고 있다.

Q. 마치 조던 피터슨의 사상을 접하는 것 같다. 남자는 남자이고 여자는 여자라는.

이명준 : 비슷하다.

Q. 다만 그런 식의 관점은 문제 역시 존재한다고 본다. 이를테면 남성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여성성이 강한 사람이 있고 여성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남성성이 강한 사람이 있다. 만약 조던 피터슨식 “남자는 남자, 여자는 여자”를 추구할 경우 그런 개개인은 어느 정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이명준 : 우리는 남성성이 강한 여성이나 여성성이 강한 남성에게 그들이 가진 남성성 내지 여성성을 억누를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이 가진 남성성과 여성성대로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

우리의 주장은 그런 차이들을 폭압적으로 억누르자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볼 때 남성 전반과 여성 전반 간의 어느 정도 차이는 존재한다고 말하고픈 것이다. 남자는 남자여야 한다고 여자 같은 남자에게 남자답게 굴라고 강요한다면 폭력이 될 수 있지만, 또한 ‘그런’ 남자들의 존재를 들며 다수 남성에게 나타나는 ‘특정 남성적 성향’ 전체를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 역시 잘못이라 본다.

Q. 마치 개별 개체간 소소한 차이를 넘어 흑인종과 황인종간의 신체적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처럼(흑인종은 근육 밀도가 높아 수영에 불리하며 황인종은 흑인종보다 팔다리가 짧다)?

이명준 : 그렇다. 개개인 간 정도의 차이는 존재하겠지만 남성 전반과 여성 전반으로 비교해 볼 때 근원적인 차이는 존재한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차이를 말하는 것은 차별하자는 것이 절대 아니다.

Q. 혹시 성평화사상은 동성애자와 같은 성 소수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명준 : 그들은 그들 나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소수자의 존재에 대해 성평화주의는 별다른 부정적 입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다만 극단적 페미니즘 신봉자 중에 일부는 의도적으로 일반 여성들에게 레즈비언 성향을 퍼뜨리려 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 것은 잘못됐다고 본다.

한국성평화연대가 지난 18일 오후 6시 서울시 관악구 낙성대역 2번 출구에서 인헌고 동아리 해체에 반대한다는 시위를 벌였다
한국성평화연대가 지난 18일 오후 6시 서울시 관악구 낙성대역 2번 출구에서 인헌고 동아리 해체에 반대한다는 시위를 벌였다

Q. 성평화사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겠다. 그럼 이번에 문제가 된 인헌고 성평화 동아리 사태에 대해서 알고 싶다.

인헌고 성평화 동아리와 한성연은 전혀 연계 관계가 없어.

최인호 : 나는 페이스북을 통해 성평화 사상을 접했고 이에 감명받아 올해 3월, 교내에 성평화를 추구하는 동아리를 창설했다. 담당 교사분도 섭외했고 교내를 돌며 회원을 모집해 그렇게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다.

Q. 한성연의 연계단체로 만들어진 것인가? 이를테면 산하단체라던가.

최인호 :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성평화’라는 사상에 동의할 뿐 한성연과 실질적인 연계 관계는 없다. 해체소동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한성연 대표와 저는 페이스북에서 몇 번 접한 것을 제외하곤 서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였다.

Q. 일본의 사회당과 프랑스의 사회당이 사회주의라는 사상에 대해 비슷한 관점을 가지고 있을 뿐 실질적인 연계는 전혀 없는 것처럼?

최인호 : 그렇다. 그런 식이다. 이번에 성평화 동아리 해체 문제가 있고 나서야 한성연 측에 사연을 전달했고 한성연에서 우리를 위한 시위를 기획해 주었을 뿐이다.

Q. 알겠다. 그간의 일들을 계속 이야기해 달라.

최인호 : 잘 지내오다 문제가 생긴 것은 활동비 보고서를 제출했을 때였다. 활동비 요청서에 적은, 현 페미니즘 실태에 부정적인 논조의 서적 구입의사를 보고 평소 페미니즘 성향이었던 담당 교사분이 문제를 제기했다. 간단하게, 우리들이 반 페미니즘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성차별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곤 우리들의 담당 교사직을 내려놔 버렸다.

Q. 학교 동아리는 담당 교사 없이는 운영 불가능한가?

최인호 : 그렇다. 학교로부터 공식 동아리로써 지원을 받기 위해선 반드시 담당 교사가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담당 교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어렵사리 다른 선생님을 설득해 우리 동아리를 담당하겠다는 허락을 받아내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그분도 원래 우리 동아리를 담당했던 교사분의 이야기만을 듣고 우리를 담당하지 않겠다고 돌아서 버렸고 그렇게 우리는 담당 교사가 없는 상태로 남게 됐다.

우리는 처음 동아리를 담당했던 교사로부터 우리를 폐쇄시키겠다고, 말 안 하고 폐쇄해도 그만이지만 너희를 생각해서 통보는 해 준다는 식의 말까지 들어야만 했다.

성평화는 성차별과 달라. 차별 옹호 동아리로 매도하는 것은 부당해.

Q. 듣기로는 교육청과 인헌고 간에 무슨 공문이 오갔다고 들었는데?

최인호 : 그 사연은 이렇다. 우리 동아리가 적은 글을 어떤 페미니즘 성향 네티즌들이 퍼다 날라 넷 상에서 모독하고 비난한 일이 있었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인헌고에 성차별을 부추기는 동아리가 있다”는 식으로 교육청에 민원까지 넣었다.

결국 교육청에선 인헌고 측에 성평등 동아리 ‘WALIH’의 교육부 지침 위반 여부를 질문했고 학교 측에선 “성평화 동아리 ‘WALIH’는 양성평등의 가치를 훼손하고 성차별을 부추기는 동아리이다”고 답변한 것이다. 한마디로 성평화는 성차별적인 사상이며 그런 잘못된 사상을 추구하는 동아리는 교내에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성평화사상은 절대 성차별사상이 아니며 우리를 차별 옹호 동아리로 매도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교장선생님께도 찾아가 따져 보았으나 “너희는 성차별을 옹호하고 있다. 너희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 과거에 여성들이 차별받았으니 현재 남성들이 차별을 감수할 수 있다” 등의 이야기만을 들었을 뿐이다.

여초카페에서 문제가 됐던 왈리의 글. “여성 CEO가 적은 것은 여성의 모험심이 남성의 그것보다 부족한 때문”과 같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부분은 있으나 그것이 사상의 자유가 용인되는 대한민국에서 동아리 해체까지 각오해야 하는 부분인지는 다소 의문이 든다
여초카페에서 문제가 됐던 왈리의 글. “여성 CEO가 적은 것은 여성의 모험심이 남성의 그것보다 부족한 때문”과 같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부분은 있으나 그것이 사상의 자유가 용인되는 대한민국에서 동아리 해체까지 각오해야 하는 부분인지는 다소 의문이 든다

Q. 이 사태에 대해서, 이번 시위가 있기까지 학교 측에 항의하는 외부의 목소리들은 전혀 없었나?

최인호 : 많은 항의 전화가 걸려왔다고 들었다. 한때 학교 전화가 마비될 정도였다고 한다. 학교 측에서도 이 문제로 상당히 골치 아파하는 것으로 안다.

Q. 오늘 열리는 이 시위에 대해서 학교 측에선 알고 있나?

최인호 : 알고 있다. 다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우리 동아리 회원들의 학부모들한테 “당신 자녀가 시위 나가는 것을 알고 있냐?”고 연락해 우리에 대해 나쁘게 말하고 있다고 들었다.

Q. 본인이 시위에 나가는 것을 부모님은 알고 계시나?

최인호 : 알고 계신다.

인터뷰가 끝나고 본격적인 집회가 시작됐다. 인헌고 학생 3명을 포함, 서른 명 남짓한 인원이 모여 성평화의 가치와 인헌고의 처사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에 나섰다. 시위자들은 돌아가며 앞으로 나와 인헌고의 처사 및 현 페미니스트들의 행보에 대해 비판하는 즉석발언을 했으며 성토가 끝날 때 마다 참가자들의 호응이 이어졌다.

인헌고의 성평화가 죽었다는 의미로 검은 테이블 위에 하얀색 국화를 올려두었다
인헌고의 성평화가 죽었다는 의미로 검은 테이블 위에 하얀색 국화를 올려두었다

참가자들은 인헌고의 행태는 명백한 사상탄압이며, 대한민국은 사상의 자유가 있는 나라이기에 현 주류 페미니즘과 다른 의견을 표출했다고 해서 탄압을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다만 기획했던 서명 운동은 관련 자료 준비 미흡으로 취소됐고 이날 시위는 오후 7시가 조금 넘은 시점에서 종료됐다.

한성연 측에서는 인헌고의 성평화동아리 문제가 바람직한 결말을 맺을 때까지 어떤 식으로건 계속해서 이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낼 것이라 밝혔다.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그 의견을 말할 자유를 위해서 기꺼이 싸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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