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백한 표절, 즉 베끼기였다. 신경숙은 그때 문단을 떠나야 했다. 하지만 4년이 지난 현재, 창작과비평(창비) 계간지 여름호를 통해 문단에 복귀했다. 신경숙은 창비 계간지 2019년 여름호에 중편소설을 발표했다. 계간지는 문학출판사의 문학상 공모, 신진작가 등용문 등이 이루어지는 역할을 한다.
시간을 돌려 2015년 6월로 가보자. 그해 6월은 신경숙의 표절 행위로 문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발단은 소설가 이응준이 <허핑턴포스트>에 신경숙의 표절을 고발하면서였다. 이응준은 2015년 6월 16일 <허핑턴포스트>에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이라는 글을 써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이응준은 신경숙의 단편소설 <전설>(1996년, 창비)이 일본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 <우국>의 한 문장을 통째로 표절했다고 비판했다. 신경숙의 이런 표절 행위에 대한 비판은 이응준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미 2000년 정문순 문화평론가가 신경숙의 <전설>이 <우국>을 표절했다고 주장한 바 있었으나 흐지부지됐다.
하지만 <전설>에 나오는 문장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에 묘사된 문장과 동일하다. 이는 누가 봐도 명명백백한 표절 행위였다. 이응준은 해당 부분이 같은 글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하며 “순수문학 프로작가로서는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명백한 ‘작품 절도행위-표절’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표절 논란이 된 문장을 보자.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투성이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워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잘 응했다.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
- 1961년에 발표한 미시마 유키오 <우국>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 1996년 발표한 신경숙 <전설>
필자는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 <금각사>와 <우국>을 이미 오래전에 읽었다. 미시마 유키오가 일본의 우익 민족주의자라는 정치 성향을 떠나 그는 국내 중년 세대 이상에게는 익히 알려진 일본 유명 작가다.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는 문장이 유려하고 가슴을 묘하게 아리게 하는 일본적인 미학이 깊이 담긴 소설이다. 20대에 읽었던 <금각사>의 여운이 아직도 남아있을 정도로 말이다.
신경숙이 표절한 미시마 유키오 <우국>의 한 장면도, 필자가 읽었던 작품으로 도입부에 이어 바로 묘사되는 부분이다. 분명히 신경숙은 <우국>을 읽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째서 이런 글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소설 좀 쓴다는 사람치고 솔직히 일본 소설 영향 안 받은 국내 작가가 과연 얼마나 있나? 당장 무라카미 하루키가 국내 소설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보라. 메이저 문학출판사들의 무라카미 하루키 장사가 30여년간 이어지고 있다.
한국 문학이 일본 문학에 종속됐다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발표할 때마다 국내 출판사들의 선인세 지급이 20억원이라는 말이 나돌지 않나?그래서 오래 전에 출판된 일본 소설 <우국> 좀 베꼈기로 대수롭지 않다는 말인가??필자는 신경숙 표절행위에 격분해 당시 블로그에 여러 차례 비판의 글을 쓰면서,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왜 신경숙은 <우국>을 베꼈을까.
국내에서는 반일 감정이 팽배한 현상으로 말미암아 일본 우익은 엄청나게 배척받는 데다 특히 미시마 유키오는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미시마 유키오는 <우국>의 주인공 다케야마 중위처럼 1970년에 할복자살을 했다. 그래서 설마 한국인들이 <우국>을 읽었을까, 설령 읽었다손 쳐도 이 대목을 기억이나 할까, 신경숙은 이런 식으로 안이한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2015년 6월 23일자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신경숙의 해명은 더욱 분노를 일으켰다.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의 문장과 <전설>의 문장을 여러 차례 대조해 본 결과, 표절이란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제는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신경숙은 모호한 연막을 치는 언술로 표절 시비를 비켜나갔다. 당연히 사과는 없었다. 한술 더 떠 ‘표절킬러’로 명성이 자자한 신경숙의 남편이자 문학평론가인 남진우의 침묵이었다. 표절 작품에 대해 혹독한 비판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인물로 정평이 난 그는 하일지 장편소설 <경마장 가는 길>에 대해 협박에 가까운 평론을 한 바 있다.
필자가 하일지 <경마장 가는 길>을 읽게 된 계기가 남진우의 지독한 평론 때문이었을 정도였다. 그랬던 남진우가 신경숙 표절 사태에는 <문학동네> 편집위원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끝냈다.
당시 문단의 고질적인 표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몇몇 작가, 평론가가 이 사태에 대해 입을 열었을 뿐 문단의 기라성 같은 문인들은 쥐죽은 듯 조용하기만 했다.
문학계와 표절을 묵인하고 동조하며 활용해온 메이저 문학출판사들은 한바탕 태풍 같은 사태가 지나기만 기다리는 꼴이었다. 신경숙을 옹호하는 몇몇 인사가 힘겹게 입을 열었을 뿐이었다. 문학평론가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문화적 차원, 예술가의 양심이라는 차원에서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공적인 범죄행위는 아니다. 좀 더 자기에 충실한 작가였으면 좋겠다.
신경숙의 표절 사태를 불러온 <전설>을 출판한 창비의 설립자 백낙청 편집인은 애매한 심경을 페이스북에 썼다.
의도적인 베껴 쓰기, 곧 작가의 파렴치한 범죄행위로 단정하는데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 2015년 8월 28일
표절 소프트웨어도 학술논문이 아닌 문학작품의 경우에는 그대로 믿기 힘든 면이 있습니다. 말이란 원래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는데, 말을 가장 섬세하고 정교하게 구사하는 언어예술인 문학에서는 소프트웨어를 돌려서 나오는 일치율보다 그러한 단어들이 작품 전체의 일부로 어떤 효과를 내고 의미를 구성하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 2015년 8월 31일
그렇다고 그것이 일부러 베껴쓰지 않고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결과라고 보는 문학관, 창작관에는 원론적으로도 동의하기 어렵지만, 더구나 상상력까지 동원해서 저자의 파렴치한 베껴쓰기를 단정하고 거기다 신경숙은 원래가 형편없는 작가였다는 자의적 평가마저 곁들여 한국문학에 어쨌든(항상 좋은 작품만 써낸 건 아니지만) 소중한 기여를 해온 소설가를 매장하려는 움직임에는 결코 합류할 수 없습니다.
- 2015년말 백낙청 창비 편집인 퇴임사 중에서
그런가 하면 신경숙의 신간이 출판될 때마다 추천사와 비평가 진용은 화려했다. 저명한 문인을 비롯해 인기 평론가들의 추천사는 신경숙 작품에 대한 칭송이 이를 말해준다. 예컨대 신경숙 표절 사태 이전에 출간한 어느 작품에 대한 정여울 문학평론가의 평이다.
지독한 세속적 일상 속에서 신화적인 체험을 길어 올리는 미학적 시선은 여전히 신경숙 문학의 힘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너무도 난해한 평이라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 밖에 신경숙의 작품 단골 평론가들인 신형철, 권희철, 김남혁 등의 평은 같은 업계 종사자로써 화답 차원의 비평에 주례사 평론과 다름 아니었다.
신경숙은 창비 계간지 여름호 발행, 문단 복귀를 앞두고 문학담당 기자들 앞으로 ‘작품을 발표하며’라는 제목의 짧은 입장문을 발표했다.
젊은 날 한 순간의 방심으로 제 글쓰기에 중대한 실수가 발생했고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한 채 오랜 흘렀다. 비판의 글을 쓰게 하는 대상으로 혼란과 고통을 드렸다. 모두 저의 잘못이고 불찰이다.
신경숙의 문단 복귀의 입장문에는 4년 전 표절 건에 대한 본질적인 내용을 담은 진솔한 사과가 없다. 4년 전의 표절 사태가 일어났을 때와 뭐가 달라졌나? 표절 작품 <전설>을 출판했던 창비를 통해 신작을 발표하는 행위를 독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한국 문학계는 가뜩이나 빈사 상태다. 누가 한국 문학을 읽고 사랑하겠는가. 문인들의 표절 시비 잦음이 격을 떨어뜨리고 문학의 질적 하락이 된 지 오래다. 신경숙 표절 사태 당시 한 평론가의 말이다.
우주가 돕지 않는 한 한국 문단이 변하기 어려울 것
역시 이말대로 문단과 문학출판사들의 행태는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재차 깨닫게 한 신경숙 문단 복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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