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1. 조국 사태, 아직 남아 있는 질문들
2. 당신이 믿는 선은 정말 윤리적일까
3. 윤리적 삶을 위한 두 가지 원칙
지난 가을, 광장은 2년 만에 다시 열렸다. 그리고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올해는 뭔가 달랐다. 그곳에는 광화문과 서초동이라는 두 개의 광장이 있었다.
조국 사태는 진보를 둘로 나누었다. 누군가는 현실 논리를 들어 정권에 대한 지지를 외쳤고, 누군가는 원칙과 상식을 들어 정권에 대한 실망감을 표현했다. 격렬한 분노와 논쟁이 대한민국의 가을을 달궜다. 그리고 그 시기 필자가 느낀 감정은 당혹과 혼란이었다.
필자를 당혹스럽게 한 첫 번째는 대학생들의 촛불을 향해 쏟아진 싸늘한 시선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대학생들의 집회를 ‘사회의 부정을 향해 외치는 아직 때 묻지 않은 양심의 소리’로 여겼다.
하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학생들이 자신의 학교에서 벌어졌을지 모를 입시비리에 대해 촛불을 든 순간 그들에게는 이전과는 다른 의심이 쏟아졌다. 그들의 촛불은 자신이 가진 학벌 타이틀의 정당성을 지켜내고 현 사회 제도를 보다 철저히 수호하고 강화하기 위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그것이었다.
촛불을 든 학생들은 ‘조국의 자녀들이 누린 특혜는 공정하지 않다’고 외쳤고, 비판자들은 ‘네가 가진 학벌 기득권은 공정한가’라며 응수했다. 공정에 공정이 맞섰고 공정에 공정이 겹쳐졌다.
그리고 이런 혼란스러운 논쟁 속에서 불행히도 마땅히 다루어져야 할 두 개의 공정 모두는 결국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의 씁쓸한 결과에 대해 한가지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우리가 마주한 불행은 ‘룰은 모두에게 반칙 없이 적용되는가’라는 전자의 질문 앞에 대답 대신 ‘룰 자체는 공정한가’ 라는 다른 층위의 질문을 겹치는 순간 이미 의도된 효과는 아니었을까.
또 한 가지 필자를 당혹스럽게 한 것은 바로 진보진영이 보여준 ‘가치의 공백’이다. 우리는 각자가 가진 가치관에 따라 보수와 진보의 스펙트럼 사이 어딘가에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갖는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은 왜 진보주의자가 되는가? 거기에는 분명 자신의 생존과 현실의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다른 마음이 존재한다.
노동운동에 뛰어든 민주화 세대가 품었던 마음, 고통받는 타인에 대한 연대 의식, 미래는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역사의 진보에 대한 소망, 거기에 있는 것은 바로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윤리적 열망이다.
그런데 이번 조국 정국에서 다수의 진보주의자는 ‘너희는 얼마나 깨끗한가’라는 말로 이번 사태가 제기하는 윤리적 질문을 가볍게 생략해버렸다.
그들은 그동안 진보가 호소해온 도덕적 기반과 윤리적 이상 대신 ‘정치는 친구와 적을 구분하는 것’이라는 현실주의적 정치 논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법조 카르텔이라는 강력한 적에 맞서기 위해서는 그 전쟁의 최전선에 서 있는 조국을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선명한 진영논리는 그가 저지른 과오를 모두 구조의 문제로 환원해 개인의 윤리적 책임을 탈색시켰고, 그 과정에서 진보는 ‘내로남불’의 오명을 얻었다. 그리고 그 격렬한 광장의 전쟁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남겼다.
그렇다면 조국이 면제받은 우리 사회의 원칙들은 이제 어떻게 되는가? 그것들은 폐기되어야 하나, 수정되어야 하나, 복원되어야 하나?
이제 수사의 당사자는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에 올라도 되는가? 이 원칙은 언제 누가 지켜야 하며 또 언제 어떤 기준으로 예외가 되는가?
우리 사회에 진영논리를 넘어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할 보편적 원칙은 존재하는가? 우리에게 옳고 그름은 없으며 오직 적과 친구의 구분만이 존재한다면, 진영 갈등에서 우리가 진보의 편에 설 이유는 무엇인가?
보편적 가치에 대한 추구 없는 현실 논리만으로도 진보정치는 존재할 수 있는가? 그리고 현실 논리 만으로 작동하는 진보정치는 정말로 진보적일 수 있을까
치열했던 광장의 전쟁은 조국의 장관직 사퇴로 일단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광장의 시민들에게 응답하며 ‘공정’에 대한 국민들의 염원을 엄중히 듣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필자는 조국 사태 내내 자신들이 세운 원칙에서 스스로 예외가 되었던 정부·여당이 말하는 공정이란 게 도대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진영을 넘어 모두가 지켜야 할 보편의 가치, 보편의 원칙이 없다면 공정이란 애초에 성립이 불가능한 개념이 아니었던가.
광장은 닫히고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진보가 스스로 쌓고 스스로 무너뜨린 원칙들은 아직 보수되지 않았다. 우리는 무너진 원칙의 혼란스러운 잔재 앞에서 지난 가을의 광장이 눈감고 넘어갔던 질문을 다시 물어야 한다. 그것은 스스로의 내로남불에 눈감으며 지난 몇 년간 진보가 꾸준히 회피했던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과연 보편적 가치가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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