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알게 된 건 2007년께였다. 당시 검찰과 경찰 간 수사권 조정 논의에 소극적이었던 경찰 총수를 날선 언어로 비판했다. 까마득한 후배이자, 부하직원의 하극상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경찰대 1기 출신이고 검경 수사권 조정에 관한 경찰 측 최고의 이론가 황운하 총경의 이름이 방송 화면과 신문에 연일 등장했다. 그는 늘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얼마 전에는 청와대 발 하명 수사의 총괄 책임자였다는 의혹에 이름을 올리는가 하면 곧 있을 총선에 출마한다며 대대적인 출판기념회를 열기도 했다. <검찰은 왜 고래고기를 돌려줬을까>란 책이었다.
책은 공저다. 황운하 현 경찰인재개발원장이 신동아 조성식 기자와 펜촉을 맞췄다. 조 기자는 검찰과 조폭 등 선 굵고 거친 영역을 취재하고 기사로 다뤄 일가를 이룬 기자로 평가받는다.
그가 쓴 <대한민국 주먹을 말한다> 속 조폭의 계보나 격투 장면은 자세하고 묘사가 사실적이어서 대가 황석영 작가가 이를 따다 쓴 적도 있을 정도다. 대검찰청 강력부장을 지내며 당대의 조폭 김태촌 등을 붙잡은 조승식 검사와 이름이 비슷하기까지 해 이른바 어깨들 사이에선 널리 알려졌다.
황 원장과 조 기자의 인연은 지난 신동아 인터뷰에서 시작된 거로 짐작되는데, 조 기자의 또 다른 저작 <나 아닌 사람을 진정 사랑한 적이 있던가>에서 두 사람의 일합을 확인할 수 있다.
책은 황 원장의 자서전격이다. ‘격’이란 의존명사를 붙인 이유가 있다. 1장은 대부분 검경 수사권 조정에 관해 서술됐다. 수사권 조정의 연원, 경과, 필요성, 중요성, (경찰 측)논리, 방법, 이로 인한 이점까지 숨도 쉬지 않고 서술한 듯한 집요함을 보여준다.
황 원장의 검찰권력을 향한 저항과 비토는 유명했다고 한다. 관행으로 굳어진 경찰 인력 검찰 수사진 차출, 피의자 인치(구속영장 청구여부를 판단하는 위해 체포된 피의자를 검찰청으로 데려오라는 취지)명령 등을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그도 이유는 있었다. 열심히 수사하고 체포해 조서까지 꾸며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긴 피의자를 검사 혹은 검사의 친지와 가깝다는 이유로 풀어주거나 무혐의를 내리는 모습을 마주했다.
용의자를 체포하거나 압수수색이 필요한 때에 역시 알 수 없는 힘으로 영장이 청구되지 않는 경우를 수없이 지켜봐야만 했다.
수사지휘권, 기소독점권, 독점적인 영장청구권 등 검찰이 지닌 엄청난 권한에 법률에 따른 저항을 이어갔던 이유였다. 그가 늘 수사권 조정, 검찰 개혁을 외치던 까닭이었다.
경찰대 1기 졸업생이라는 필생의 자부는 그를 지배했다. 그는 경대를 입학하고 졸업하면서 사명을 세우길 검찰로부터의 수사권 독립과 기구의 중립 등을 꼽았다. 똑같은 행정부의 외청이지만 검찰과 경찰의 권한과 입지가 다르다는 현실적 제약이 이 머리 좋고 피 끓는 젊은이에게 한을 심어준 모양이다.
반면, 경대 특권론에 관해선 단호히 부정한다. 경찰 일선에선 경대 출신자들이 승진, 인사상 이익 등 지대한 특권을 독점한다는 여론이 팽배하다. 단지 수능 시험, 입학시험을 잘 쳤다는 이유 하나로 평생을 걸쳐 특권과 혜택을 전유한다는 비판은 타당하게 들린다.
이를 두고 황 원장은 어느 나라든 엘리트 교육과 인력은 존재한다는 반론을 펼친다. 쉽게 납득하긴 어렵지만.
책의 2부는 그가 수사 일선에서 활약했던 시절 이야기다. 그는 수사권 조정에 관한 이론통이기도 하지만 수사통이기도 했다. 승진이 잘 되는 정보, 기획, 공안 쪽 업무는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유명 여자 연예인 가정폭력 사건, 이태원 여대생 살인 사건, 대통령 아들 마약 투여 사건과 검사 홍준표를 일약 스타덤에 올린 슬롯머신 비리의 초기 수사까지 그의 손을 거쳤다.
특히 그가 대전 중부경찰서장에 재직했을 당시 유천동 집창촌을 철거했던 행정집행은 아직도 회자되는 대작업이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집창촌의 특성상 한 번 뿌리를 내리고 영업을 시작하면 정말 끝을 본다는 마음 없이는 철거할 수 없다.
한때 서울 종암경찰서장 김강자 총경과 대전 중부서의 황운하 총경은 성매매 산업 종사자들 사이에서 꼽는 이적(二敵)에 오르기도 했을 것이다.
3장은 그의 생애를 그린 자전적 이야기. 많은 정치인이 선거를 앞두고 급하게 찍어내는 도서 속 이야기마냥 조악하고 거친 질감이다. 경찰 내부에서 이름을 떨치고 영향을 주었던 그의 이력에 비춰 오랫동안 준비하고 기획해 책을 출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대목이다.
책 장정과 폰트, 구성 역시 선거용이구나, 급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나마 문장이 고르고, 정돈된 느낌을 주는 건 공저자의 조력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그(황운하)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정계 진출설에 대해 단호히 부인했다.
‘내가 정말 억울한 것이 그런 의심을 받는 것이다. 튀는 행동으로 인지도를 높여 정치권으로 진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런 얘기는 내 행동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나는 경찰관으로서 성공하고 싶을 뿐이다.’
-조성식 <나 아닌 사람을 진정 사랑한 적이 있던가>에서
2013년 출간된 조성식 기자의 책에서 황운하는 정치인으로의 변모 이야기에 질색하는 반응을 보인다. <검찰은 왜 고래고기를 돌려줬을까>에서도 조직 내 분란과 화제를 일으키는 자신에게 들려오는 정치, 선거 출마설에 난감해했다는 회고를 털어놓는다.
마음이 바뀐 걸까. 아니면 본래 있던 마음이었을까. 일각에선 청와대 하명 수사사건의 피의자가 돼버린 그가 국회의원이 돼 불체포 특권을 이용해 검찰의 수사를 회피하려는 의중이 있지 않은가 하는 이야기도 도는 모양이다. 오랜 기간 봐온 것에 비춰 경찰 황운하가 그렇게 짜치는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치 이전에 경찰 조직과 구성원을 위한 NGO, NPO를 설립해 제2의 수사권 독립, 기구 중립 운동을 선행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장신중 전 총경이 그런 활동을 펼치고 있다.
결을 달리해 경찰 수사 전반에 대한 논리와 방식, 기법 등을 일구는 씽크탱크를 하나 출범한 뒤 몇 년을 두고 궤도에 올린 후 정치에 입문했으면 보다 좋은 모양새가 됐을 수도.결국 검경 수사권 조정은 황운하의 염원대로 이뤄졌다.
‘경찰은 수사, 검찰은 기소, 국민은 혜택’이란 구호는 경찰 측에서 내놓은 캐치프레이즈였다. 검찰의 경찰 수사지휘권이 사라졌고, 송치 이전 수사에 검찰의 권한을 없애 경찰에게 수사권과 수사종결권이 이전됐다.
이를 두고 검찰은 거대한 집단 반발을 나타내고 줄사표로 항의를 이어가는 중이다. 대표적인 인물은 베스트셀러 <검사내전>을 쓴 김웅 법무연수원 교수다. 경찰의 구호대로 ‘경찰은 수사, 검찰은 기소’한다지만 ‘국민은 혼란’스럽다.
수사권 조정이 국민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어떤 면에서 더 혜택이 생기는지, 검찰은 왜 격렬한 반발을 하고 경찰은 왜 뜨거운 환호를 보내는지 카드사 혜택 안내 매뉴얼 책자처럼 하나 만들면 좋겠다.
검찰 인사 하나, 경찰 인사 하나, 중재 혹은 사회 보는 인사 하나 정도면 인적 구성은 될 테다. 기왕 책을 내고 정치활동을 하려는 마당인데 황운하 치안감이 링 위에 올라주면 어떨까.
검찰 측에선 수사권 조정 대응 업무를 맡은 바 있는 김웅 교수가 올라와 주면 좋겠고. 두 사람 모두 수사권 조정 관련 각 기관 대책회의에서 책임 있는 자리를 맡은 바 있다.
<검찰은 왜 고래고기를 돌려줬을까>란 책은 현실 수사 사례에 바탕을 둔 수사권 조정 대응 이론집인지, 정치지망생의 구색 갖추기 저술인지 모를 책이었다. 추천사를 쓴 이들은 저자가 출마할 대전지역 정계의 거두, 울산지역 학계의 원로, 검찰개혁 이론가 등이다.
아, 아들에게 기를 쓰고 교회를 물려주려는 서울 지역 모 교회의 목사님도 계시다. 이들을 보니 더더욱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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