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종 vs. 수능, ‘입알못’을 위한 안내서
[리뷰] 이천종 '학종유감'
이환희
승인
2020.01.31 14:59 | 최종 수정 2020.03.23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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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를 졸업한 지 10년도 더 지난 뒤 ‘학종’이라는 말에 눈길을 보낸 까닭은 한 편의 드라마 때문이었다. 기간제(비정규직, 계약직) 교사의 고군분투를 비롯해 고등학교 현장과 일선 교사들의 고락을 사실적으로 그린 드라마 <블랙독>을 한 회도 빠짐없이 시청 중인 상태였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진학부 말단 교사인데, 아마도 나라가 시작되고 한순간도 빠짐없이 모두의 바람일 학생들의 명문 대학 입학과 정교사(정규직 교사) 등극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뛴다. 그 과정에서 ‘학종’, 이른바 ‘학생부 종합전형’이란 말이 수차 등장한다.
보다 앞서는 전 법무부장관 자녀 입시 비리 파동 때였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의 영애는 ‘학종’전형이 아니라 그전에 존재했던 ‘입학사정관 특기자 전형’으로 명문 대학에 입학했다. 외부 경시대회, 인턴십, 논문 1저자 등재 등 도시 대학 입시 과정에 왜 이런 말이 등장하는지 싶었던 화려한 이력으로 화제가 된 참이었다.
이미 당대에도 문제는 모두가 느꼈는지 외부 수상, 경력, 이력을 제한 학내 실적만을 명기하는 ‘학종’체제로 탈바꿈한 지 벌써 몇 년이 됐다고 한다. 이게 다 무슨 일인가. 고교 졸업 후 10여 년, 과연 학교 현장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나.
‘학종을 둘러싼 논란의 맥락을 들여다보는 최초의 책’이라는 수식이 눈에 들었다. 세계일보 사회부 교육팀장으로 숱한 논란을 취재하고 기사로 적은 이천종 기자의 저서 <학종유감>을 읽었다. 책은 논쟁적이었고 필자가 모르던 세계에 눈을 뜨게 해줬으며 여러 통계와 수치로 현실을 탄탄하게 들여다보았다.
입시라고는 수능(정시)과 내신(수시)두 종류밖에 모르던 문외한이다. 저자의 말대로 ‘입알못’인 셈이다. 현재의 입시는 경우의 수와 전형에서 말 그대로 수십, 수백여 가지를 친다고 저자는 안내한다.
위에서 언급한 ‘학종’은 수시로 입시를 치르는 한 범주로 흔히 생활기록부라고 불리는 기록이 보다 복잡하게 변모해 이를 제출하면 대학 입학 당국에서 심사해 합격생을 뽑는 식이라고 한다.
생활기록부의 교과 항목은 과거 ‘수우미양가’와 석차 등 교과 항목의 성취도, 비교과 항목은 이른바 자(율활동), 동(아리), 봉(사활동), 진(로활동)으로 활동을 기록하고 담당 교사의 평가가 담긴 식이다. 이 교과 항목과 비교과 항목을 종합해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이를 1차 서류로 넣은 뒤 합격자에 한 해 면접을 본다.
드라마 <블랙독>에서도 섬세하게 묘사되지만, 이 활동과 교사 평가, 자기소개서에 이르기까지 아주 지난복잡한 학교생활이 펼쳐진다. 교과 항목에도 소홀히 할 수 없어서 요즘에는 ‘고교 재학 중 수능을 열세 번 치른다’라는 말도 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라는 내신이 워낙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특히 입학 후 첫 시험인 고1 중간고사는 아주 절대적이라는 사실은 입시 당사자와 주변인들에게선 불문율로 꼽힌다.
과거 입시를 치렀던 경험에 비추어보자면 1, 2학년 때는 입시에 큰 뜻 없이 문지방 넘듯 학교를 다니다 3학년 때 비로소 발등에 불붙어 역대 수능 기출문제와 평가원 모의고사 기출문제를 섭렵했다.
내신, 수시 전형은 포기하고 정시에 올인하는 식이었는데 지금은 이런 막무가내식 입시는 백전필패를 맛보고 만다는 전언이다. 수시, 특히 학종 전형이 대세를 이뤄 정시 비율은 줄어들고 수시에서 뽑히는 비율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책은 저술이라기보다는 한 권의 정책보고서 같다. 더불어 수능과 학종 간 논쟁 배경의 연원과 논리까지 짚어주는 안내서 노릇을 한다. 현재 우리 사회 가장 논쟁적이고 핵심적인 가치라고 이를 만한 ‘공정’이란 말에 비춰보자면 무엇이 더 공정한 입시 전형일까. 여론은 정시, 수능에 더 손을 들어주는 추세인 듯하다.
전국 수십만 입시생이 하루당일 고사장에 모여 동일한 시험을 치르는 방식. 물론 그날그날의 운과 불운이 작용할 수 있지만, 외향적으론 일견 이보다 공정해 보이는 시험이 존재하는지. 수능에 손을 들어주는 쪽은 이런 의견이 주를 이룬다.
책의 특장인 통계를 통해 보면 어떨까. 예상과는 달리 수능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의 통계를 내보면 특목고나 강남 학군들 출신의 N수생 비율이 압도적이라고 한다. 결과를 놓고 보자면 역시나 물적 자원을 많이 들인 축에 유리한 시험 같다.
외려 학종 전형으로 대학 입학을 한 통계를 내보았더니 정시 위주의 입시 당시 400여 개교에서 900여 개교에 이르게 학교가 다양화되었다고 한다. 전형의 다양화 덕분에 농어촌이나 실업계 출신도 유수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 이를 두고 학종을 지지하는 측은 “학종은 미국의 소수자 우대 입시 정책(Affirmative action)의 한국식으로 보면 된다”고 주장한다.
책 속에 등장하는 논쟁의 일단만을 나열했을 뿐이다. 입시 담당자와 학부모, 현장 교사, 대입 당국 정도가 궁금해하겠지만 더 다채롭고 풍부한 논리의 주장이 책 속에서 각축을 벌인다.
우선적으로 책을 읽은 감상은 숨이 막히고 답답했는데 책의 재미나 가독성을 논하는 게 아니라 현실의 치열함과 다단함 때문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이러나저러나 결론은 하나로 수렴되는 듯하기도 한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때인가’라는 물음의 답으로 갈음한다.
앞서 학종 입시 전형을 서술할 때 기시감이 들었다. ‘대입’을 위해 여러 스펙을 쌓고, ‘교과’ 성적에 피 튀기듯 목숨을 걸고 이를 분식하는 자기소개서를 공들여 작성하는 앞선 문장의 홑따옴표 속 낱말들만 바꿔주면 기시감의 정체가 드러난다.
좋은 회사를 들어가기 위해 여러 스펙과 학점에 목숨을 거는, 아주 오래되어 이제는 시대의 정언처럼 느껴지는 구직활동의 살천스러움이 고교, 10대 시절로 하방돼 버렸다. 비단 고등학생들뿐 아니라 좋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려는 중학생, 영재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선행학습(‘속진’이라는 낱말을 들어봤는가)에 숨 막히는 초등학생까지 ‘먹고 살기 힘든’ 이 시절의 핍진한 풍경이다.
책 속에 빈번히 등장하는 말이 하나 있다. ‘4차 산업 혁명 시대를 선도할 창의, 융복합 인재’. 이들을 양성하기 위해 보다 적합한 교육, 입시 방식은 무엇일까. 학교 현장의 다양화와 교사 평가의 추상같은 지엄함을 되살린(이를 두고 교사 기득권이라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학종일까, 전통의 암기식 공부와 사지선다식 줄세우기 운용의 묘를 계승하는 수능일까.
각을 살짝 비틀어 보자. 현재 4차 산업 혁명을 선도하는 리더로 꼽히는 사람들은 수능보다도 더 암기식, 더 욱여넣기 식의 본고사, 학력고사 시절에 입시를 치른 사람들 아니었나. 성적이 안 나오면 줄빠따를 맞고 문란한 생각을 거두고 학생의 본분을 지킨다고 머리를 삭발하며 학교에 다닌 사람들 아니었나.
과연 암기가 그렇게 무식하기만 하고 청산되어야 할 구식 학습방식이고 중, 고교 시절부터 자신의 진로를 위해 여러 활동을 전전하고 적당한 교사를 섭외해 유려한 서술로 평가를 받는 수완을 기르며 온 부모, 조부모가 나서 사회관계를 섭외해 실적을 쌓게 하는 것이 선진적이고 미래지향적 교육방식인가.
난마가 분야마다 산적한 이 나라에서 그 어떤 난마보다 부풀어 오른 ‘교육과 입시’라는 난마를 자를 ‘쾌도’는 부존해 보인다. 그래도 그 한 올, 몇 타래만이라도 더듬어보고 싶다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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