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 간 통합을 둘러싸고 3개월 가까이 이어진 한미그룹 창업주 가족 간 경영권 분쟁이 통합을 반대한 형제 측 승리로 마무리됐다. 소액주주들의 전폭적 지지가 이번 경영권 분쟁에서 통합을 주도한 모녀를 상대로 형제가 재역전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날 형제 측의 신승으로 27일 한미약품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한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사장의 창업주 고(故) 임성기 회장의 승계자 지위는 ‘1일 천하’로 끝났다.
28일 경기 화성시 라비돌 호텔에서 열린 한미그룹 지주사 한미사이언스의 제51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임종윤·종훈 형제 측이 주주 제안한 이사진 5명의 선임 안건이 모두 통과했다.
이로써 임종윤·종훈 사장은 사내이사, 권규찬 디엑스앤브이엑스 대표이사와 배보경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기타비상무이사, 사봉관 변호사는 사외이사가 됐다. 한미사이언스 이사진 9명 가운데 형제 측 인사가 5명으로 과반을 차지하게 됐다.
임종윤·종훈 형제는 둘 다 52% 내외 찬성표를 얻으며 출석 의결권 수 과반의 찬성표를 받아 사내이사 선임에 성공했다. 권 대표와 배 교수도 둘 다 51.8%의 찬성표를 얻어 이사진에 이름을 올렸다. 사 변호사는 찬성표 52.2%를 얻었다.
반면 임주현 부회장과 이우현 OCI홀딩스 회장은 둘 다 찬성표가 48%로, 과반에 미달해 선임되지 못했다.
사측이 제안한 나머지 이사진 후보인 최인영 한미약품 R&D센터장, 김하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 서정모 모나스랩 대표이사, 박경진 명지대 경영대 교수도 찬성표 과반을 얻지 못해 선임에 실패했다. 이에 따라 서 대표와 박 교수의 감사위원 선임 의안은 자동으로 폐기됐다.
이번 경영권 분쟁에서 임종윤·종훈 형제가 어떻게 송영숙·임주현 모녀에게 역전에 재역전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지난 26일 국민연금이 OCI그룹과의 통합을 추진한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 측 지지를 밝히면서 임종윤·종훈 형제가 열세에 놓였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소액주주들의 결집을 일으켰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날 주총 직전까지 형제 측은 지분 확보나 법정 공방 등 모든 면에서 유리하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전날까지 형제 측이 확보한 공개 우호 지분은 전체의 40.57%로 송영숙·임주현 모녀 측이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약 43%보다 다소 열세였고, 앞서 OCI그룹과 통합에 반대하며 법원에 제기한 가처분 신청도 기각됐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소액주주의 표심이 대거 형제 측으로 몰리면서 재역전이 된 셈이다.
창업주 가족과 이번 주총에 앞서 형제 지지를 사전에 밝힌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12.15%), 모녀 측 지지를 밝힌 한미사우회(0.33%)를 제외하고 이날 주총 의결에 참여한 소액주주 등 지분은 4.5% 정도로 파악된다.
결과를 놓고 볼 때 이들 소액주주 대부분이 형제 측에 표를 몰아주면서 그 이전 2%p대의 격차를 뒤집은 셈이다.
이처럼 소액주주 표심이 형제 측에 기운 것은 개인 최대 주주인 신 회장의 지지 선언, ‘이종 기업’인 OCI·한미그룹 통합에 대한 의구심, 송 회장 경영 시기에 낮아진 주가에 대한 불만 등이 복합적으로 받아들여진 결과로 해석된다.
형제가 지분 경쟁에서 열세이던 지난 23일 형제 측을 공개 지지하고 나선 신 회장은 국민연금의 송 회장 측 지지로 형제가 다시 열세에 놓이자 “장기적 차원에서 무엇이 본인을 위한 투자와 한미의 미래, 나아가 한국경제 미래에 도움이 될지 좋은 결정을 해달라”며 소액주주들에게 형제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게다가 주가 하락도 소액주주들이 송 회장 등 현 경영진에 등을 돌리게 된 계기로 보인다.
2020년 8월 임성기 창업주 별세 이후 송 회장이 회사를 이끌며 그해 연말 7만~8만원대였던 한미사이언스 주가는 지난해 한때 3만원대 이하로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소재·에너지 중심 기업인 OCI와의 ‘이종 기업’ 간 결합 역시 국내 기업사에 유례없는 일로 주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한 것도 이번 결과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통합을 주도한 모녀 측의 패배로 끝난 주총 직후 OCI그룹은 통합 중단 방침을 알렸다.
OCI홀딩스 측은 “주주분들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통합 절차는 중단된다”며 “앞으로 한미약품그룹의 발전을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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