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솔로’ 출연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방송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건 언제나 조심스럽다. 방송에 출연하는 게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인지, 방송에 나간 내 모습을 보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근거 없는 억측을 하고, 그로 인해 출연자들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좋은 얘기만 하고 싶다. 물론 필자도 한 사람의 시청자로서 더 정감이 가는 출연자가 있고, 그렇지 않은 출연자가 있지만 되도록 후자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어제는 조금 불편했다. 출연진들에 얽힌 여러 가지 논란들 때문은 아니었다. 어차피 인터넷 상에 떠도는 이야기들의 상당수는 헛소문이다. 그리고 설령 진실이라 해도 크게 문제될 일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하다. 그래서 실수를 한다. 물론 필자도 그렇다. 마음먹고 파헤친다면 허물을 찾아내는 것쯤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해할 수 있다. 정의를 구현하는 건 법과 공권력이지 네티즌 수사대가 아니다.
어제의 불편함은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왜 존재하는가, 우리는 이걸 왜 보는가에 대한 것이다. 물론 이 글 역시 상당 부분 필자의 편견과 억측에 근거할 것이다. 여느 네티즌들이 쓴 글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특히나 출연진이 혹시라도 이 글을 보게 된다면)너무 진지하게 읽지는 않았으면 한다. 제목에도 밝혔지만 이 글은 전 출연자로서의 글이 아니라, 한 시청자로서의 글이다.
어제부로 ‘나는 솔로’ 13기가 끝났다. 모든 남자들이 최종 선택을 했고, 영자를 제외한 다섯 명의 여자가 최종 선택을 했다. 다섯 커플. 역대 최다 커플의 탄생이었다. 세 커플이 탄생했던 6기의 기록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인터넷 검색을 해봤는데 다섯 커플 모두 헤어졌다고 했다. 별로 놀랍지 않았다. 아쉽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회사 동료나 친구들과 얘기도 해보고, 유튜브에 올라온 리뷰 영상들도 찾아봤지만 다들 비슷했다. 많아야 한두 커플 나올 줄 알았는데 다섯 커플이나 나온 게 의아했다는 반응이었다.
방송에서 서로를 선택한 커플이 밖에서까지 만남을 이어가지 못했다는 것 자체는 잘못된 게 아니다. 촬영 시점과 방송 시점은 보통 3~4개월 정도 차이가 난다. 마지막 방송을 기준으로 한다면 5~6개월 정도가 된다. 호감이 생겼다가 식어 버리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실제로 절반 이상의 커플이 첫 방송이 시작되기도 전에 헤어진다.
심지어 아예 사귀지 않았다고 해도 문제는 없다. 솔로 나라는 특수한 공간이다. 직장 동료들도, 가족들도, 친구나 애완 동물도 없는 곳이다. 할 거라고는 사랑밖에 없는, 오로지 사랑만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하지만 현실 세계는 다르다. 가족이나 친구도 챙겨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솔로 나라에서의 모습과 현실의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나 ‘나는 솔로’는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이다. 남은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찾으러 나온 것이다. 그러니 신중할 수밖에 없다. 필자가 출연했던 4기도 그랬다. 정식(공기업)과 영숙(리사이클 인형 사업)은 서로를 택했지만 바로 연애를 시작하지는 않았다. 밖에서 좀 더 알아보며 이곳에서의 호감을 이어나가고 싶다는 의미로 서로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들을 두고 진정성이 없다고 한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설령 그들이 결혼까지 가지 못했더라도 그들을 욕할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건 그들이 최선을 다했기 때문일 것이다. 4박 5일이라는 기간 진지하게 상대방을 알아보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역대 출연자들 중에는 연예인과 일반인의 중간쯤에 위치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최종 선택을 했지만 밖에서까지 만남을 이어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을 보고도 이런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홍보건, 이미지 관리 목적이건, 연기건, 적어도 그 안에서는 주어진 배역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방송을 하러 나왔다면 방송 분량이라도 확실하게 뽑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게 없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커플이 몇 쌍이나 나왔다.
물론 편집을 탓할 수도 있다. 4박 5일, 120시간. 그리고 여섯 쌍의 남녀. 총 720시간. 그 중에 방송에 나오는 건 불과 일주일에 한 시간, 그리고 7주. 다 합쳐서 7시간. 출연자들이 했던 말과 행동들 중 방송 화면에 담길 수 있는 건 1%가 채 안된다. 촬영 기간 많이 소통하고 서로에게 진심 어린 호감을 표현했더라도 그 모습이 방송에 다 나오지 못하고 편집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말이 안 된다. 축구란 무엇인가. 골대에 공을 집어넣는 스포츠다. 그렇기 때문에 골이 들어가는 순간은 축구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골을 넣은 선수를 기억한다. 2002년 월드컵 때 수비수인 김태영이나 최진철도, 미드필더인 유상철과 이을용도 모두 최선을 다했지만 축구 전문가가 아니라면 그들의 플레이를 자세히 기억하지는 못한다. 우리의 기억 속에 남은 건 이탈리아 전 안정환의 헤딩 골과, 포르투갈 전 박지성의 가슴 트래핑 이후 발리슛이다.
그렇다면 ‘나는 솔로’란 무엇인가. 우린 이 프로그램을 왜 보는가. 두 남녀가 만나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보고 싶어서다. 그러면 당연히 연인이 된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서사는 그들을 중심으로 그려진다. 최선을 다했지만 커플이 되지 못한 출연자의 이야기가 방송 분량상 편집이 될 수는 있지만 커플이 된 출연자가 그럴 수는 없다. 모든 커플의 이야기를 담기에 방송 분량이 부족하다면 늘려서라도 어떻게든 담아준다. 10기 돌싱 특집이 10주 동안 방송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번 기수에서는 커플에 대한 서사가 빈약했다.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했고, 어떻게 호감을 갖게 되었는지, 왜 서로를 선택했는지가 전혀 설명되지 않았다. 그래놓고 뿅하고 커플이 됐다. 그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말로 교감이 없었다는 거다. 정말로 뿅하고 커플이 되었다는 거다. 제작진이 할 수 있는 건 출연자들의 720시간을 7시간으로 압축하는 것이지, 없는 장면을 만들어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럼 그들은 왜 충분히 교감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선택을 한 건 왜일까?
방송을 보고 느낀 불편함은 그것이었다. 그냥 다른 기수처럼 한두 커플만 나왔다면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0커플이 나왔더라도 이것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서로를 온전히 파악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구나, 끌리는 상대가 없었구나, 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결과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열한 명의 선수들이 모두 자기가 골을 넣겠다고 골대 앞에서만 기다리다가 망쳐버린 축구 경기를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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