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그늘에서 꿈을 향해, 한 청년의 회고록

[리뷰] 힐빌리의 노래
힐빌리의 노래가 던지는 질문

김승한 승인 2024.12.10 16:27 의견 0

그가 태어난 곳은 미국의 러스트벨트, 쇠락한 공업지대였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단어가 도달할 수 없는 거리만큼 멀게 느껴지는 곳에서, J.D. 밴스는 자신을 “비참한 미래를 앞둔 아이들 중 하나”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그는 지금 예일대학교 로스쿨 졸업생이며, 실리콘밸리의 성공한 투자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힐빌리의 노래’라는 한 권의 책으로 미국 사회의 이면을 전 세계에 드러냈다.

책을 펼치면 한 개인의 성장담 이상의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밴스는 자신의 삶을 관통한 가난과 폭력, 소외의 상처를 날카롭게 드러내며, 그 이면에 숨겨진 더 큰 문제들을 묵직하게 묻는다.

힐빌리의 노래(J. D. 밴스/흐름출판)

가족의 붕괴와 그 안에서 살아남은 아이

밴스의 유년기는 불안정 그 자체였다. 그는 약물 중독에 빠진 엄마와 함께 끊임없이 새 집과 새 ‘아빠 후보자’를 맞아들이며 살아야 했다. 어른들 중 누구도 제대로 된 보호자가 되어주지 못한 그의 삶에 유일한 빛은 다혈질이지만 손자를 끔찍이 아끼는 할머니, ‘할모’였다.

할모는 그를 지켜주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친구 관계를 제한하며 “내가 금지한 친구와 놀면 차로 받아버리겠다”는 위협도 서슴지 않았고, 무책임한 어른들 속에서도 그에게 최소한의 안정감을 제공했다. 그러나 할모의 보호에도 불구하고, 밴스의 가정은 그에게 안정 대신 끊임없는 위협을 안겨줬다.

어느 날, 차를 몰던 엄마가 “같이 죽자”며 폭주하던 일화는 그의 삶이 얼마나 위태로웠는지를 보여준다. 차에서 도망쳐 시골 들판을 전력으로 달리던 어린 밴스의 모습은 그가 겪은 공포와 절망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밴스는 말한다. “내가 해병대에 들어간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그는 해병대에서 독립과 자립을 배웠고, 가난 속에서 자신을 제한하던 마음의 족쇄를 벗어던졌다. 해병대 경험을 통해 “노력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그는 오하이오주립대학교와 예일 로스쿨로 이어지는 학업의 길에 나섰다.

그러나 성공은 그를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했다. 러스트벨트의 가난 속에서 자란 밴스는 명문대에서 “문화적 이주자”였다. 그는 정장과 면접 예절을 몰라 망신을 당하기도 했고, 예일 동료들과의 격차를 뼈저리게 느꼈다.

밴스는 자신의 성공이 개인의 능력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를 지켜준 사람들, 필요한 순간에 도움을 준 멘토들이 없었다면, 그는 그저 또 한 명의 “낙오자”가 되었을 것이다.

힐빌리, 문화의 문제와 사회적 단절

‘힐빌리의 노래’는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다. 밴스는 힐빌리 문화의 고질적인 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그는 자신이 자란 지역의 사람들이 사회적 실패를 정부 탓으로만 돌리며 책임을 회피한다고 지적한다. 약물 중독과 폭력, 학습된 무기력은 단순히 가난의 결과가 아니라, 그 지역 문화 속에 뿌리박힌 문제라는 것이다.

밴스는 또한 사회적 자본의 부재를 언급한다. 예일에서 그는 자신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단절되어 있었는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는 성공한 동료들 대부분이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며 이미 사회적 연결망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격차는 단순히 장학금과 같은 물질적 지원으로는 메워질 수 없었다.

희망과 책임을 묻다

밴스는 이 책에서 두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첫째, 어떻게 소외된 계층에 희망을 줄 수 있을까? 둘째, 그 희망은 누가 만들어야 하는가? 그는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며, 문화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책의 마지막에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 자신을 돕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그는 사회가 할 수 있는 것뿐 아니라, 개인이 감당해야 할 책임에 대해 묻는다.

‘힐빌리의 노래’는 단지 러스트벨트 지역의 이야기가 아니다. 계층 간의 격차, 가정의 붕괴, 문화적 단절과 같은 문제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한다.

밴스의 회고록은 그저 개인의 성공담을 넘어서, 우리가 사는 사회의 단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폭력과 소외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려는 한 개인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질문들을 떠올리게 한다.

책장을 덮고 나면, 밴스가 던진 질문이 여운처럼 남는다. “우리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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