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축 성장의 역설’ 대한민국, 소멸 위기를 마주하다

[리뷰] 압축 소멸 사회

김서영 승인 2024.12.21 19:43 의견 0

이관후 교수가 신간 ‘압축 소멸 사회’에서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어떻게 대한민국은 복합 위기의 최전선에 서게 되었는가? 그리고 우리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답을 찾기 위해 펼쳐 보이는 논의는 매우 복잡하다.

저자는 초고속 압축 성장을 이룩한 한국이 이제는 같은 속도로 압축 소멸에 접어들고 있다는 진단에서 시작해, 한국 사회의 문제를 다양한 시각으로 조명한다.

압축 소멸 사회-압축 성장 대한민국은 왜 복합 위기의 길로 들어섰나(이관후/한겨레출판)

위기의 다층적 구조: 인구, 지방, 지정학적 위험

책이 다루는 위기의 범위는 방대하다. 저출산, 자살률, 지방 소멸, 초고령화라는 인구학적 문제부터, 기후 재난과 지정학적 갈등 같은 글로벌 도전까지를 망라한다.

특히 “속도”라는 키워드를 통해, 한국의 빠른 발전이 사회적 안전장치의 구축 없이 진행된 결과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단순히 인구 문제를 넘어, 제도적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는 경고로 이어진다.

의료와 교육, 복지 같은 사회 시스템이 유지되지 못하면 국가 소멸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점에서 경각심을 일깨운다.

이 책의 가장 큰 공헌은 문제의 본질을 정치의 실패로 귀결짓는 데 있다. 저자는 현 시대의 정치가 위기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위기를 방치하거나 심화시키고 있다고 꼬집는다.

여야를 막론한 무능과 무책임, 포퓰리즘과 팬덤 정치의 확산은 국민적 실망감을 자아내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행정 실패와 더불어 야당 역시 대안 세력으로서 설득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뼈아프다.

정치의 소멸은 단순히 리더십의 문제가 아니다. 저자는 정치적 토론과 합의를 가능하게 하는 공론장의 부재, 당파 간 적대적 배제가 한국 정치를 더욱 퇴행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단순히 권력 투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정치적 에너지를 점점 고갈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관후 교수는 절망을 조장하기보다 희망을 모색한다. 그는 대한민국이 소멸을 피하려면 반드시 정치가 복원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근본적 사회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참여와 숙의가 필수적이며,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책의 말미에서 제안하는 “한국판 베버리지 보고서”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사회적 연대와 합의를 통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설계하자는 그의 비전은 단순한 진단에서 나아가 대안을 제시하는 중요한 메시지다.

‘압축 소멸 사회’는 단순히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저자는 한국의 소멸 위기가 인류 문명사에서도 이례적인 사건이라며, 이를 통해 전 세계가 배우고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압축 성장과 소멸이 지구적 도전에 대해 어떤 통찰을 제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그의 논의는 이 책을 국내 독자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유의미한 저작으로 만든다.

결론: 한국 정치와 시민의 역할

이관후 교수는 정치 혐오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시민과 정치인 모두의 각성이 필요하며, 정치적 토론과 공론장을 통해 사회적 연대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저출산, 지방 소멸, 기후 위기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치적 경쟁이 단순한 권력 싸움이 아닌, 문제 해결과 비전 제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압축 소멸 사회’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고민하는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정치와 사회에 대한 근본적 문제의식을 제기하면서도,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하는 이 책은 시대의 방향성을 묻는 중요한 나침반이다.

“정치가 있어야만 사회도 있다”는 저자의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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