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성격차지수(GGI) 115위’의 진실

박가분 승인 2017.03.23 15:53 | 최종 수정 2022.11.25 17:03 의견 0

2015년 당시 두 가지 상반된 한국의 성불평등 지수가 발표돼 논란이 일어난 바 있다. 먼저 UNDP(유엔개발계획)는 한국의 성불평등지수(GII)를 전 세계 23위로 발표했다. 반면 WEF(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한국의 성격차지수(GGI)는 115위로 이슬람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언뜻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지수이다. 이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많은 주요 선진국의 입장에서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WEF 기준으로 보았을 때 성격차지수에서 상위 20위권을 차지하는 국가들을 보면 아래와 같다.

△The Global Gender Gap Report, 2015

흔히 저개발국가 혹은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는 △르완다(6위) △필리핀(7위) △니카라과(9위) △나미비아(16위) △남아공(17위) 등이 당당하게 상위권의 성평등한 나라들에 랭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재밌는 것은 이들 국가는 UNDP 기준에서는 성불평등지수에서 하위권을 차지하고 있다(△르완다 80위 △나미비아 81위 △니카라과 95위 △남아공 83위 △필리핀 89위)는 점이다.

한편 WEF 순위에서는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국가가 하위권에 랭크되어 있는 것도 특징적이다. 예를 들어 WEF 순위에서 일본은 64위지만 UNDP 기준으로 26위였다.

한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 사이에서 저 두 가지 순위에 이토록 극명한 격차가 존재하는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국 불평등을 측정하는 방법론의 차이가 핵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여러 기사에서 다루어진 적이 있는 문제이므로 여기서는 핵심만 요약하겠다.

‘수준과 격차(level and gap)’의 문제

이 두 가지 지표를 보면 두 가지 통계치의 차이는 결국 ‘수준과 격차’의 차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성평등을 측정할 때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변수가 있는 데 첫 번째는 수준효과이고 두 번째는 상대적 격차효과이다.

WEF의 공식적인 설명을 보자. 자신들이 고안한 GGI는 ‘(여성이 누리는) 자원과 기회의 절대적인 수준이 아닌 성별 격차를 측정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Measuring the Global Gender Gap, 2015).

즉, 해당 국가들의 개발 정도, 그리고 그와 연관된 여성의 건강, 교육, 소득 등 삶의 수준(level)보다는 남녀 간의 격차에만 관심을 두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소득수준과 개발 정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일반적으로 여성의 교육수준과 보건수준은 높아진다.

그런데 WEF의 성격차지수는 이러한 수준효과를 최대한 배제하고 남녀의 순수한 상대적 격차만을 측정하기 위해 고안된 수치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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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일이지만 WEF의 수치는 여성의 삶의 질이 얼마나 높은지 자체를 측정하고 국가 간 비교를 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WEF의 성격차지수는 경제참여 및 기회, 교육, 보건, 정치 참여 분야의 14개 지표에서 남녀 간에 존재하는 이러한 상대적 격차들을 측정하고 각각의 변수들이 보이는 표준오차에 근거한 가중평균값을 산출한다.

결국, 다양한 영역에서 여성의 삶의 수준이 남성과 상대적 격차가 덜 난다면 더 높은 순위가 부여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세간의 오해와 달리 WEF의 성격차지수는 남성에게 불리한 항목에 가중치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산정방식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WEF 방식을 따르면 여성의 삶의 질과 수준이 낮은 국가라 하더라도, 즉 모두가 불행한 나라라고 해도 여성과 남성의 상대적 격차가 적다면 더욱 더 높은 순위가 매겨진다.

물론 이러한 측정방식에는 그 나름대로 의의(국가의 개발수준과 별개로 순수한 상대적 격차만을 본다는 것)가 있지만, 현실 체감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특히 WEF의 방식은 사회의 질적인 차이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

가령 저개발 전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을 강하게 띄는 국가일수록 국가와 시장에 제공하는 소득, 교육, 보건 등의 혜택에서 남녀 모두 소외된 동시에 이러한 통계에 잡히기 어려운 가부장적 사회관계(여성할례, 명예살인, 조혼, 부부강간의 합법화 등등)의 특성이 강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출처 유니세프

그러나 국가 간의 일률적 비교를 위해 고안된 지표들에서는 이러한 부분들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할례나 여성에 대한 명예살인이 사회적으로 남아 있는 일부 국가들이 일부 선진국보다 더 성평등한 나라로 나오는 웃지 못할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GGI는 고등교육진학률을 측정하는 방식에서 의문점에 노출되며 임금 격차를 측정하는 데 있어서 더 나은 방법을 놔두고 서베이(여론조사)에만 의존하는 방법론도?비판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이미 여러 차례 언론에 소개된 비판이므로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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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국이 23위를 기록한 UNDP의 성불평등지수(GII) 산정방식을 보도록 하자. GII 역시 남녀의 ‘상대적 격차’를 다룬다는 골자는 비슷하지만, 인적개발의 수준을 보여주는 건강(산모사망률, 미성년자 출산율), 권한(중등교육진학률, 의회비중), 노동시장참가율 등 다섯 가지 지표를 비교한다.

그런데 이 다섯 가지 지표 모두 국가의 개발수준 및 소득수준에 강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변수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즉 국가의 인적개발 정도가 높은 선진국일수록 일반적으로 성불평등지수는 개선되는 특징을 보인다.

또한, 여성의 삶의 질을 측정하는 Female gender index에는 산모사망률과 여아사망률이 포함되어 있지만, 이는 male gender index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당연히 이 지표(산모사망률과 미성년출산율)도 국가의 일반적인 발전수준에 영향을 받는 대표적인 변수이다.

△GII 산정방식(UNDP, 2015)

한국 역시 상당한 수준으로 개발된 국가이고 소득수준도 상위권이기 때문에 (비록 국가의 소득수준을 명시적 변수로 고려하지는 않으나) 일부 그 영향으로 성평등지수에서 상위권을 기록했다. 특히 미성년출산율(1000명당 2.2명, GII 기준 1위인 슬로베니아의 경우 7명)이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이라는 점이 점수를 끌어올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UNDP 지표상에서 뚜렷한 페널티를 받은 항목도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여성의 의회점유율(16.3%)과 여성의 노동시장참가율(50.1%)이다. 물론 이 지표는 GGI 상에서 성별임금격차(55%)와 여성 정치인 및 임원 비율(12%)과 더불어 WEF에서도 한국의 순위를 떨어뜨린 주범들 중 하나이다.

이미 예전 글에서 다루었듯이 이것은 상당 부분 한국이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인해 여성의 노동시장 참가와 정치적·사회적 참여의 역사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짧았다는 부분에서 기인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의 개선 정도를 보려면 순위 자체가 아니라 그동안의 추세를 볼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예전 글에서 다루었던 한국의 OECD 기준 성별 임금 격차는 2000년에서 2013년 사이 5.15% 감소한 반면 동일기간 OECD 평균 임금 격차는 2.76% 감소한 바 있다.

UNDP와 WEF 두 가지 지표를 비교한 의의를 요약하자면, 애초에 정책적·이론적 관심 자체가 다른 두 지표 사이에서 무엇이 더 ‘우월하냐’는 논의는 무의미하다. 가령 WEF의 GII는 이미 보았듯이 현실의 삶의 수준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에 전일적인 국가 간의 순위 매기기에는 별 효용이 없고 차라리 UNDP 기준으로 인적자원개발이 비슷한 수준으로 이뤄진 국가군이나 OECD 가입 여부를 기준으로 한 국가군 사이에서 상대적 격차를 비교하는 보조지표로 활용하는 편이 더 나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일련의 한계들을 고려한 채, 성격차지수를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정책당국과 연구자의 관심사에 따라 달라진다 하겠다. 한편 이 지표들은 국가 간 순위 매기기를 좋아하는 언론 및 대중의 관심사와 맞물려 실제 지표가 개발된 목적과 무관한 불필요한 논쟁을 낳았다

논란을 부추긴 보도

항상 그렇지만 연달아 보도된 이 두 가지 지표들은 일련의 선정적인 보도를 낳았다. 예를 들어 당시 이 통계를 보도한 <한겨레>는 다음과 같은 표제로 기사를 냈다. ‘여성이 남성 임금 받는 데 118년 걸려…한국 양성평등 115위’ 물론 이 기사에는 해당 지수에서 “한국, 필리핀·르완다·부르키나파소보다 낮은 순위”를 기록한 이유는 제대로 설명되어 있지 않다.

물론 지금도 여성주의 단체들의 문건과 성명은 여러 해 100위권을 기록한 한국의 WEF 지수를 전가의 보도로 인용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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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여성주의 매체 <일다>에서도 “성평등지수 115위, 그래도 여성전용주차장이 부럽니?”라는 선정적인 제목으로, 성격차지수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여성전용주차장을 화제로 끌어들이고 있다. 물론 젠더이슈 논쟁에서 뜬금없이 여성전용주차장을 끌고 오는 남성 네티즌들을 비판하고 양성불평등에 관심을 환기하고 싶은 의도이겠지만, 이 칼럼 자체도 그러한 네티즌들의 갑론을박과 똑같은 수준으로 퇴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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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달리 <주간경향>은 성격차지수에 걸려 있는 쟁점을 비교적 정확하게 짚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뜬금없이 이 통계에 반발하며 ‘꼴페미’와 ‘여성가족부’를 비난하는 남성 악플러들을 소환한다. 정작 남성 네티즌들의 비판 대상이 되어버린 여성가족부는 한국이 100위권을 기록한 이 WEF 통계를 보도자료 등을 통해 반박한 바 있다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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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여성가족부가 WEF 통계를 반박하는 조치를 취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여성주의를 떠나 관료적 입장에서 보면 국제적으로 악화한 지표가 발표된 것은 국회 국정감사 등의 자리에서 질책을 받을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실제로 받았다).

출처 jtbc 비정상회담

‘재밌는 것은’ WEF의 발표에 대한 남성 네티즌들의 반발이 아니라 여성계의 양면적인 태도이다. 한편에서 WEF 지표는 ‘운동진영’의 경우 한국이 얼마나 여성에게 열악한 사회인지(그러나 실제로 여성의 삶의 열악한 정도를 비교하는 지표는 아니다)를 선전할 수 있는 좋은 소재인 동시에 ‘관료적 입장’에서 보면 여성 관련 부처의 정책수행능력을 의문에 부칠 수 있는 사안(그동안 너희들은 뭐했냐 등등)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가족부 등 관계부처에서는 적극적인 반론보도와 정정요청을 한 것이다. 사실 이러한 일련의 해프닝 자체는 지금까지 누적되어 온 국가 간 순위 비교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이 낳은 폐단이기도 하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해프닝을 통해 ‘평등’이라는 관념 자체에 대해서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다 같이 못살고 불행한 국가의 평등과 어느 정도 삶의 수준이 개선된 국가에서의 불평등을 일률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어렵다.

한국의 경우는 50년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급속히 진행된 소득, 교육, 보건의 발전수준에서 이제는 어떻게 사회적 자원과 기회를 성별, 계층별, 연령별로 공평하게 배분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입장이다. 그런 점에서 저개발 국가들과 한데 묶어 한국의 성격차지수가 전세계 100위권이라고 운운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별로 큰 의미가 없다.

사실 이러한 식의 전일적인 순위 매기기에 집착하는 태도는 GDP와 국민소득 지표 혹은 국제무역 규모 등의 단일지표로 국가들의 우열을 나누는 것에 비판해왔던 진보진영 일각의 모습과 괴리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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