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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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4 12:42 | 최종 수정 2020.04.0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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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몇 해 전부터 <경향신문>을 구독해 왔는데 그 넋두리부터 꺼내겠다. 어느 날 <한겨레>가 툭 끊겼다. 지국에 전화를 걸어 봤더니 구독자가 줄어서 문을 닫았단다. <경향신문>은 배달해 준대서 그쪽으로 돌렸다. 구독자 사정이 별로 다르지 않을 텐데? 알고 보니 <중앙일보>를 곁들여서 지국을 운영한단다.
요즘 들어 <경향신문>이 부쩍 미덥잖아졌다. ‘나의 아저씨’ 소동을 겪고 난 뒤부터다. 여성계와 (한겨레·경향 같은) 진보동네가 페미니즘의 오랜 쟁점(낙태, 성범죄 법 개정 등)을 놓고 편싸움을 벌인 거라면 ‘그러려니’ 할 수도 있겠다. 그래 왔던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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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멀쩡한 드라마를 놓고도 다들 편싸움 논리에 넋이 나가 집단 사팔뜨기가 된 것은 너무 심하다. 왜 드라마를 드라마로 안 보고 남녀 패싸움의 도구로 삼는단 말인가. 페미니스트들이야 저희 서러운 것에 갇혀 살다 보니 그렇다 쳐도, 당사자들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서 둘러볼 여유가 있고 또 그런 시야를 확보해야 할 ‘진보’ 언론마저 거기 휘둘린 것은 정말 믿기지 않았다.
예전에도 <경향신문>의 논조에 미덥지 못한 구석은 있었다. 이를테면 시리아 사태를 놓고, 유럽 제국주의 세력이 벌여온 작전에 대해선 따져 묻지 않고 아사드 정권만 타박하는 기사를 써댄 것도 그렇고, 노동 문제를 다룬 기사가 빈약한 것도 그렇고(보수층들은 경제면이 빈약하다고 꼬집겠지).
하지만 대부분 기사는 크게 흠잡을 것이 없어 보였고, 내용이 풍성하건 빈약하건 간에 세상 소식을 단숨에 훑어 내리게 해주는 것이 만족스러워서 애독자로 지내 왔다(아침 화장실에 컴퓨터를 갖고 들어갈 수는 없다).
그런데 요즘은 문득 ‘그저 그런 신문, 꼭 봐야 하나?’ 싶은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지 1년 반이 지난 지금, 이 정권한테 기대할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날로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진보’ 언론들도 현 정권과 더불어 동반 몰락하는 것은 아닐지, 의구심이 들었다. 현 정권이 바른길을 가도록 그들이 과연 쓴소리를 제대로 내고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개혁도, 분배도 종쳤다
요즘 개혁의 현주소는 너무 황량하다. 대통령이 개헌 의제를 꺼내 들었다가 흐지부지됐고, 대통령이 밀어서 대법원장이 된 사람도 한갓 바지저고리다. 검찰이 사법부 적폐 청산을 과연 시원하게 해낼 수 있을지도 몹시 미심쩍다. ‘최저임금 인상’도 속 빈 강정이 될 공산이 크고, 입시개혁에 대해 기대를 모았던 교육부 장관도 빈손으로 귀가했다. 최근 모처럼 대중의 분노를 등에 업고 유아교육법 개정에 나선 박용진 의원의 노력도 과연 빛을 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왜 개혁이 모조리 실패하고 있는가? 의회가 발목을 잡고 있어서다. 지금의 의회는 무슨 입법이든 여야가 적당히 타협을 볼 때라야 성사가 되는 과두제(寡頭制)다. 의회는 여당이 빗나간 정치를 하려 들 때 그걸 얼마쯤 견제해내는 구실은 하겠지만(예전에 민주당이 박정희 독재를 좀 견제한 적 있다), 여당이 민심을 등에 업은 개혁을 꾀할 때도 늠름하게 견제해낸다. 요컨대 자유한국당이 동의하지 않는 개혁은 정말 성사되기 어렵다.
의회 내 정치지형이 크게 바뀌거나(자유한국당의 몰락, 노동대중을 대변하는 정당의 진출), 민중이 의회를 견제할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되거나 해야 하는데(가령 민중의 입법 발의권) 후자의 경우, 개헌이 필요하다. 그런데 의회를 거치지 않고서 개헌할 길이 없다. 한국 정치가 지금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현 정권 지지율은 근래 들어 50%대로 떨어졌다. 50%대 밑으로 더 떨어질 수도 있다. 개혁이 성사된 것도 없을뿐더러 경제와 민생 분야에 대한 대중의 실망이 워낙 커서다. 세계 전체가 10년째 대불황을 겪고 있으니 타개책이 시원하게 나오기 어렵고 그래서 얼마쯤의 지지율 하락은 피할 수 없다.
주체들이 왕따 당하고 있다
문제는 어디를 지향해 정치해나갈 거냐는 질문이다. 민중을 주체로 세우게끔 민주개혁을 해내고, 민생을 돌보게끔 성장 아닌 분배의 노력을 확실히 해낼 것인지를 묻는다. 그러려면 노동운동 및 사회운동과 튼튼히 협력하는 게 필수인데, 현 정권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여태껏 벌인 결과가 왜 변변찮으냐 따지는 것보다 왜 정치의 주체로 북돋아야 할 동네와 선을 긋느냐를 캐물어야 한다.
현 정권은 노동운동을 격려할 마음이 없다. ‘분배’에 애쓸 생각이 없으니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 불참해도 느긋하다. 민주노총 배제는 ‘경제민주화 불발’로 끝나지 않는다. 노동운동에 힘이 실리지 못하니 국가기구(사법부, 검찰 등)의 민주화 과제에 지원군을 모으기가 벅차다.
지난 여름엔 6·15 기념대회를 위한 방북단에 참가하겠다고 민주노총과 민족운동단체에서 신청을 넣었는데 정부가 퇴짜 놨다. 알다시피 요즘 북미 핵 협상은 미국이 협상에 성의를 보이지 않은 탓에 멈춘 상태다.
미국에 쓴소리를 건넬 사회운동 집단을 왕따시키면서 현 정권이 무슨 수로 미국더러 ‘협상에 성의를 보이라’고 압박할 수 있는가. 사회운동의 조직역량을 갖추지 못한 ‘문빠’들의 응원만으로 북미 화해든, 개혁 입법이든 벌이겠다고 그들 집권세력이 꿈꾸는 것이라면 ‘얼른 꿈 깨시라’고 말씀 올려야 한다.
민주 시민들 가운데는 아직 ‘촛불 혁명’의 여운 속에 사시는 분들이 많을 줄 안다. “어렵더라도 문재인이 뭘 해내겠지!”하고 여전히 우상바라기를 한다. ‘촛불’의 시효가 다 끝났음을 모르는가. 정권 교체 덕분에 떠들 기회를 얻은 데는 페미니즘 동네뿐이었다.
(2차 공황이 다가오는데도, 지구온난화·미세먼지가 발 등의 불이 됐는데도) 노동운동이건 환경운동이건 힘을 받고 있지 못하니 민주개혁조차 앞날이 어둡다. 거기 지원군으로 나설 촛불 시민들도 다 맥이 풀렸다. ‘진보’ 언론들도 그 걱정을 아니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건성·관성으로 훈수를 둔다는 인상이 짙다. 어째야 쓸까.
이 글을 쓰고 난 다음날 배달 온 ‘진보’ 언론을 들춰 보니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야당 의원들에게 개혁 입법을 설득해 보라고 논설위원이 충고해 놨다. 그런 답답한 얘기, 해봤자 뭐하나? 들메끈 동여매고 거리로 나서라고 해야지! 노동자와 시민들 편에 서서 견결하게 싸우라고 해야지! 훗날 수구 보수당이 오뚝이처럼 일어선다고 해도 놀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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