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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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4 16:01 | 최종 수정 2020.04.07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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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유튜브에 폭로 동영상을 올리며 논란을 일으켰다. 크게 보았을 때 청와대가 KT&G와 <서울신문> 인사에 개입했다는 주장과 청와대가 국채발행에 정치적 압력을 넣었다는 주장이다. 인사 문제에 대해 청와대는 즉각 반박했다.
애초 신씨는 관련 인사문제의 담당자도 아니었으며 옆 부서의 논의를 듣고 억측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신씨는 실체가 모호한 카카오톡 대화 내용과 자신이 엿들었다는 내용 외에는 이렇다 할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청와대가 정치적 이유로 국채 매입을 취소하고 추가적인 국채발행을 강요했다’는 주장은 여전히 논란이다. 청와대가 ‘박근혜 정부보다 경제를 잘하는 것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불필요한 국채발행을 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그의 기자회견 발언과 글을 읽어 보아도 그러한 정책결정이 어떻게 박근혜 정부보다 경제를 더 잘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것인지 필자는 도무지 납득을 할 수가 없었다. 또한 청와대 외압이 도대체 무엇인지 거듭된 폭로를 통해서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그가 폭로한 내용의 핵심은 단순히 말해 ‘추가세수를 기반으로 국채발행을 하는 것보다는 빚을 갚는 것이 낫다’는 자신의 의견뿐이다. 이것이 폭로거리가 되는지조차 의문이다.
많은 전문가는 그의 판단이 정책결정의 기술적 사항에 무지한 월권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고려대 조영철 교수는 페이스북 글을 통해 “신재민, 경험부족 사무관의 오해”라는 워딩으로 그의 행보를 비판했다.
또한 차현진 한국은행 본부장 역시 페이스북 글을 통해 1조원 국채 조기상환 취소를 ‘페이백’이라고 부르며 이미 일상적인 정책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기재부 역시 애초 논의됐던 4조원의 적자국채 추가발행 방안은 실제로는 실현되지 않은 데다가 실현됐다 해도 GDP 국가채무 비율을 단 0.2% 증가시키는 데 그쳐 ‘일부러 국가채무 비율을 높이려 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본지에서는 이러한 세세한 사실관계에 대한 지적을 그대로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다. 애초에 여기서 제시해야 할 근본적인 의문은 ‘경기회복을 위한 적자 국채 발행이 뭐가 나쁘냐’는 것이다. 실제로 신씨가 지적한 4조원의 국채발행은 기재부의 압력 끝에 끝내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진짜 문제는 기재부 관료집단이 청와대의 국정기조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면 어떨까.
신씨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그의 말을 들으면 그는 ‘국가부채와 확장적 재정정책은 죄악’이라고 보는 극단적 시장 보수주의적 경제 마인드와 설익은 관료주의로 무장한 ‘젊은 꼰대’로 보인다. 오히려 필자는 그에게 ‘균형재정론은 틀렸다(랜덜 래이)’ 같은 기계적 균형재정 정책에 반대하는 저서나 외국 좌파정당의 경제정책 강령 등을 찾아 읽고 ‘이런 견해도 존재하는구나’ 정도의 견문만이라도 넓힐 것을 권하고 싶다.
한편 여기서 드는 심각한 의문은 이러한 편향이 단지 신씨 개인에게만 나타나는 문제일까 하는 점이다. 실제로 그의 폭로 글(?)은 고려대 온라인 커뮤니티 고파스에서 널리 공유되면서 커다란 지지를 얻은 바 있다.
젊은 경제 관료에게 나타나는 이러한 이념적 경직성을 재생산하는 핵심 고리는 필자가 보기에는 관료의 등용문이 되는 각종 ‘시험제도’다. 문제는 이런 것이다. 마땅히 교과서적인 이론이 정립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철 지난 것으로 판명 난 과거 보수파 주류 경제학의 교리문답들이 여전히 대학가와 고시제도를 통해 확대재생산 되고 있다.
이를테면 이제는 주류 경제학에서조차 대부분 받아들이길 꺼리는 ‘래퍼곡선’의 논리(세금을 줄이면 오히려 경제활성화를 통해 세수가 늘어난다)는 단지 ‘시험에 내기 쉽다’는 이유만으로 여전히 강의실에서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교육과정을 통해 관료가 된 젊은이들은 특히 자신이 시험공부를 위해 암기한 사항을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 멘큐 교과서를 들고 찾아와 ‘그럼 여기에 적힌 진리를 부정한단 말입니까’라고 필자에게 반문한 한 대학생처럼 말이다.
신재민의 폭로는 결국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공직자로서 그가 한 부적절한 처신에 대한 합당한 처우가 기다릴 것이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똑같은 시장보수적 마인드를 장착한 채 ‘돌출행동을 하지 않는 제2, 제3의 신재민’이 향후 기재부 등 경제정책을 관장하는 부서에서 영향력 있는 관료로 성장하는 것이다.
신씨는 당초 폭로에서 청와대가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지만, 오히려 그의 폭로를 통해 기재부가 청와대의 정책기조수단에 상당한 압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일부 보수적 관료들이 국민이 선출한 주권자가 필요한 재정지출을 행하는 데 대해서도 집요하게 훼방을 놓지는 않을지 엄정한 사회적 감시가 필요하다.
경제학 박사. 프리랜서 작가. '그 페미니즘이 당신을 불행하게 하는 이유'(2019, 공저), '포비아 페미니즘'(2017), '혐오의 미러링'(2016),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2014), '일베의 사상'(2013) 출간. '2014년 변신하는 리바이어던과 감정의 정치'로 창작과 비평 사회인문평론상 수상과 2016년 일본 '겐론'지 번역.
박가분
paxwon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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