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글 쓰는 ‘서연’입니다.
속해 있는 모임 중 한 곳을 제외한 나머지의 풍경은 거의 비슷한데요. 몸은 한 공간에 함께 있지만, 정신은 네모난 프레임 속에 따로 있는 모습에서 어쩐지 ‘웃픈’ 감정이 들었습니다.
외로워서 만났는데 외로워서 헤어지는 연인들처럼, 행복한 순간을 코앞에 두고도 하늘을 올려다보는 바보들처럼 웃기고도 슬픈 현실을 사는 것 같아서요.
안에 들어갈 기세로 열중하는 그곳에는 반짝이고는 있지만, 허울뿐인 이미지가 있죠. 녹초가 되도록 잘라내고 붙여낸 편집 기술은 특유의 세련미로 현실의 속살을 가리고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환상으로 유혹합니다. 그러니 본능적으로 끌리는 그 세계에 쉽게 유혹당하는 것을 탓할 수만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러자 생각나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리플리 증후군’은 미국의 소설가인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의 주인공 ‘리플리’의 이름에서 비롯된 용어로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일삼고 그 거짓말이 완전한 진실이라고 믿는 인격장애입니다.
소설의 결말처럼 심각하고 끔찍한 증세이지만 모든 끝에는 처음이라는 순간이 있었고, 모든 광기에는 순수한 열망이라는 싹이 있었을 테니 병적인 증세라고 불쾌하게 바라보기보단 그 안에 서려 있는 인간의 본성, 우리 안에도 사는 동경과 욕망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소설이 원작인 영화 <리플리>는 <태양은 가득히>라는 또 다른 영화로 이미 제작된 적이 있는데요. 각각의 영화가 초점을 둔 부분이 조금씩 다르지만 나름의 재미와 설득력이 있습니다.
주인공 톰은 자신의 못난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상류사회라는 먼 세계를 동경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저 그런 현실 속의 그가 가진 유일한 재능이 있다면 누군가를 흉내 내는 것이었는데요. 어느 파티에서 피아니스트 행세를 하다가 선박 부호인 그린리프의 눈에 띄게 됩니다.
그는 톰에게 신뢰를 갖고 흥청망청 삶을 낭비하고 있는 아들 디키를 데려와 달라는 제안을 합니다. 톰에게는 솔깃한 일이죠. 동경하던 세상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으니까요.
그는 온갖 정보를 알아내 디키를 만나 호감을 사고 디키의 여자친구와도 친해집니다. 디키가 빠져있는 재즈음악에도 깊은 조예를 보이며 긴밀한 관계를 다져갈 수 있도록 수를 쓰는데요. 그러나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왔던 변덕스러운 디키는 금새 톰에게서 싫증을 느끼고 거리를 두려 합니다.
그 과정에서 톰은 디키를 예기치 않게 죽이게 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디키와 톰, 두 사람의 삶을번갈아 살며 완벽한 거짓을 연기합니다. 영화이기에 가능할 이 범죄의 진실은 끝내 밝혀지지 않고 그의 삶은 그렇게 계속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초라한 현실보다 멋진 거짓이 더 나아.
그러나 거울에 비친 분열된 자아, 반사되어 쪼개진 얼굴이 상징하듯 그가 동경했던 디키, 그 후 디키로 살았던 톰 자신의 얼굴 그 어디에도 행복한 미소는 없었습니다. 그의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낳아야 했고 때문에 늘 불안과 초조함으로 악몽을 꿔야 했습니다.
진실로 사랑하고 사랑받지 못했으며 무엇보다 자신을 잃었죠. 획득보다는 상실이 큰 삶, 겉으로는 얻어가는 것 같지만 실은 잃은 것이 더 큰 삶이었던 것이죠. 온갖 부와 명예를 가졌더라도 마음 하나 편하지 못한 그곳은 가시방석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끔찍한 죄악도 합리화하게 돼 있어. 누구나 자신은 착한 줄 알지.
이렇게 말했던 그는 그러나 큰 지우개가 있다면 추악한 마음의 바닥을 지워버리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순수한 동경은 사람을 더 높은 곳으로 데려다 놓을 수 있습니다. 동경은 사람을 꿈꾸게 하고, 꿈은 사람을 노력하게 하거든요.
그리고 노력은 사람을 발전하게 하고, 발전은 사람을 성장하게, 그리고 성숙하게 합니다. 그래서 예전에 내가 살던 세계에서 한 걸음 더 멀리 나아가고, 한 단계 더 높이 올라갑니다.
이제 그는 예전의 그는 아닙니다. 그래서 꿈은 아름다운 것임에 틀림없지만 때때로 추악하게 변하기도 합니다. 뒤틀린 욕망, 엇나간 사랑, 거짓된 열정은 저주받은 마녀의 꿈처럼 무서운 것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애초에 없었다는 듯 첫 마음을 완전히 잊을 수 있고 정반대의 의미로 예전의 그는 아니게 됩니다.
요즘 드는 생각은 우리가 쌓아가고 확장해가고 있다고 확신하는 삶의 영역들이 사실은 내 만족을 채우기 위한 자위에 불과하지 않았나 싶은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나를 버리면 끝인데, 남들이 뭐라 해도 내가 행복하면 된 건데 마음과 달리 삶을 좌우하는 조건들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내가 고정시켜놓은 삶의 원칙들이 나의 발목을 잡기도 하고 그 원칙들의 기준이 내 마음이 아니라 남의 시선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채 모르고 내가 나를 속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다 내려놓고 매일 내게 질문해봐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행복했느냐고, 진실로 그랬느냐고, 타인의 눈 속에서 웃는 나의 모습을 본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서 춤추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본 것이 맞느냐고 말이죠. 리플리가 우러러보는 허공 속의 높고 멋진 거짓보다 두 발 뻗고 누울 낮고 편안한 현실을 믿는, 나 자신의 정체를 믿는 오늘의 ‘서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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