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쓰다듬는 인문의 힘

[리뷰] 김시덕 '갈등 도시'

이환희 승인 2019.11.21 13:10 | 최종 수정 2020.07.15 17:47 의견 0

이 책을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하나. 어느 대목에선 필자의 유년이 스쳤고, 어느 장에선 할머니의 회고가 어렸다. 지극한 도시답사 기록인가 하면, 아련한 동네의 서정과 따스한 골목 안 정취마저 감도는 책이다. 김시덕의 <갈등 도시>를 며칠에 걸쳐 읽었다.

'갈등 도시'(김시덕 지음/열린책들 출판)
'갈등 도시'(김시덕 지음/열린책들 출판)

제목부터 매력을 느꼈다. 책 출간 소식을 접할 무렵 필자는 새 단편을 적는 중이었다. 서울 남부 한 철거촌을 밀어버린 행정대집행이 있기까지 현장에서 신음하며 자랐을 한 소년의 이야기. 단편을 적으며 이 책 제목을 보자 마음이 갔다. 목차를 보니 눈 두었던 지역이 나온다. 선권에 고민 한 점 없었다.

저자는 문헌학을 공부하는 소장 학자이다. 많이 읽고 걸으며 기록한 뒤 책으로 엮는 일련의 저술 활동을 성실히 수행해왔다. 이 책의 전편이라 할 만한 <서울 선언> 역시 서울을 비롯해 우리가 흔히 수도권이라 부르는 지역의 흔적과 붕괴의 편린을 깊은 애정으로 들여다본 책이다.

저자가 전편부터 주장하는 ‘대서울’ 혹은 ‘대경성’이라는 말은 생경하다. ‘서울세력권’이라고 풀어 말할 수도 있는 이 말은 “서울시 바깥의 도시들에 살면서 서울시로 출퇴근하려는 시민들이 주택 구매를 고려하는 지역의 바깥 한계”를 일컬으며 “부동산 업계에서는 강원도 춘천, 충북 청주까지도 서울 세력권에 들어온 것으로 관측”한다. ‘대경성’은 일제강점기에 기획된 경성부에서 사대문 밖 남서쪽 영등포, 시흥, 부천, 부평, 인천까지의 ‘경인(京仁)’으로 대표되는 개념으로 ‘대서울’이라는 메갈로폴리스의 아버지뻘 되는 말이다.

책의 저간을 흐르는 이 개념을 기억하자. 저자는 걷는다. 면으로 구획된 기존의 행정구역을 답사하는 개념이 아니라 저 대서울을 누비는 선으로서 길을 걷는 것이다. 걸으며 길가에 남은 세월의 시층(시간이 쌓인 곳)을 느끼고 자료를 찾아본 뒤 고민과 연구를 거듭해 기록한다. 조선 500년에 일제강점기 36년, 미군정을 포함한 대한민국 건국에 이르기까지 세 개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무늬, 세월의 냄새, 건축의 질감 같은 것들이다.

요즘은 신경을 써야 찾아볼 수 있는 ‘머릿돌’ 혹은 ‘정초(定礎)석’을 아는지. 건물이 지어지면 시공일을 기록하거나 시공자를 적어놓은 돌이다. 흔히 지나칠 수 있는 이 기록물에서 저자는 상당히 많은 의미와 당대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시대마다 서체가 다르고, 서기인지 단기인지 구분되어 있는 둥 존재만으로 ‘대서울’을 스토리텔링할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된다.

연세가 들어 시간이 살처럼 가버린다고 말하던 할머니는 숱한 날 손자를 붙잡고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영등포 고무공장 노동자일 적과 부평 새댁 시절의 이야기. 천호동까지 머리에 물목을 이고 가 집마다 돌며 팔곤 했다는 이야기와 옛날 경기도 광주, 지금 지명 송파 시댁에서 있던 이야기까지. 들으며 필자는 끄덕이는 시늉만을 보였을 뿐이다. 옛날 일을 알 리가 없고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등포 공장지대(출처 서울역사편찬원)
영등포 공장지대(출처 서울역사편찬원)

책을 읽고 나서 왜 할머니가 직장을 영등포에서 다녔고 신접을 부평에서 꾸렸으며 장사를 그 멀고 먼 천호동까지 가게 됐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영등포 공업단지에 대거 필요했던 인력, 그 인력이 자리를 잡고 곤한 몸을 뉠 수 있는 베드타운 노릇을 하던 부평이란 후방 단지, 거기에 아직 강남이 논밭과 황무지였을 시기 지금 강남의 주거, 상업 기능을 수행했던 천호까지. 책을 읽으며 실마리가 잡힌 셈이었다.

말하자면 이 책은 옛날이야기의 부연, 그것도 아주 친절하고 세심한 구연 설명을 해준다. 시종 존대어미를 쓰는 서술도 대서울 답사라는 조금은 무거운 주제를 술술 읽게 해주는 장치로서 십분 기능한다(필자가 쥔 책은 초판인 모양인지 간혹 오탈자가 보였다).

얼마 전 강남의 형성을 다룬 여러 책을 찾아서 읽은 기억이 있다. 왜 강남 지역에 오르막이 많은지, 5대 공립, 5대 사립 같은 명문학교가 이동을 하고, 최우방국의 적대국 수도 (이란의 테헤란)이름이 도로에 떡하니 붙었는지 따위를 설명한 책들이었다.?시간은 없고, 저 말 많은 강남의 역사를 알고는 싶은데 방대한 자료를 다 읽을 수 없는 사정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 된다. 책의 한 장에서는 ‘강남형성사’를 조망하는 일종 약전도 담겼다.

성남에 있는 서울공항, 경기도 고양에 있는 서울시립승화원 등 경기도 외곽에 자리한 기반시설들 이름에 왜 ‘서울’이란 이름이 붙었는지도 책은 친절히 설명해준다. 깊은 이유가 있지는 않았고 과거 무소불위의 지위에 있던 서울의 정책결정자들이 그 같은 시설들을 강제 이전했다는 이유였다.?불편하고 흉물스럽다고, 보기 언짢다고. 그뿐이었다. 해서, 오늘날 서울 시민들은 그런 과거에 조금씩 고마움을 느껴야 마땅하다고 하는데 이는 응당한 지적이었다.

이 밖에 광명에 있는 기아로 시작되는 이름의 온갖 시설과 지명이 조성된 경위, 서울 창신동에 있던 채석장, 녹번동에서 나오던 신비한 광물 산골(山骨), 한 레이온 기업의 총수가 화신백화점을 세운 박흥식이라는 사실, 서울 외곽에 있었던 여러 한센인 시설과 집창촌, 후배가 한때 살았던 ‘수색’의 정강(精剛)한 이름과 기운이 어디서 비롯된 건지 들여다볼수록 누군가를 붙잡고 아는 척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이다. 무릇 인문서의 위력과 효용은 이런 게 아닐까. 책은 이에 여실한 힘을 지니고 있다.

책을 읽으며 머릿속을 스쳐 간 책 한 권이 있다. 전 국민을 팔도답사 열풍으로 몰고 갔던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였다. 편집자가 의도했는지는 몰라도, 사진 삽입이나 장 구성 등에서 그 대단했던 책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의도(아니면 참고라도)했을 것이다. 그만큼 충만한 자신감이 있어도 되는 책이다.

감히 말하건대, 이 책은 우리 시대 <나의 (도시)문화유산 답사기>다. 나라 곳곳을 훑고 일본을 거쳐 중국으로 떠나 아득히 흔적만 남은 유홍준의 빈자리를 메우고 남는다. 유홍준의 저서는 고졸(古拙)하고 어딘지 모르게 완경(玩景)하는 시선이라면, 김시덕의 저작은 보다 아프고 시리고 추운 곳에 깊은 애정이 담겨있다. 소멸해버리고 사라져가는 것들을 쓸쓸히 여길 수 있는 사람과의 도시 답사라면 함께 걸을 만하지 않을까.

공연한 수고를 들여 저자의 나이를 찾아봤다. 75년생이었다. 요즘 약진하는 선배들의 나이대다. 함께 범주화시켜 말하기엔 조심스럽지만, 필자는 저들의 학구와 독서, 집필에서 게으르고 책 안 읽어 무식한데 탐욕스럽기만 한 86세대를 궤주시킬 씨앗이 있다고 생각한다. 근 15년 동안 이른바 86세대라는 자들이 지은 뛰어난 저작과 빛나는 저술을 한 번 만나지 못했다. 이것은 전적으로 내 생각이며 저자의 생각과 저술 의도와는 일절 아무 관계 없음을 서평 말미에 부기한다.

오랜만에 만난 알차고 충실한 책이었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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