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옥은 빼어난 르포 작가였다. 타인의 일과 말을 전하고 옮기는 일에 탁월한 사람이었다. 용산 참사와 터전이 철거될 위기에 얽힌 사람들의 말을 책으로 엮은 <여기, 사람이 있다>와 ‘여전히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생애를 진술로 이으려던 <섬과 섬을 잇다>라는 저술에서 이미 그의 존재는 눈에 두드러졌다.
르포 작가라는 개념조차 생경스러운 10여 년 어간이었다. 그의 글을 읽으며 아팠고, 무기력했다. 서투른 희망이나 섣부른 승리를 이야기할 수 없는 당대의 현실을 이선옥은 오래 그리고 깊이 들여다봤다. 그런 그의 글을 읽으며 타인의 말을 옮기는 일의 쓸모를 생각해보기도 했던 무렵이었다.
그가 자신의 글과 말을 하기 시작한 지 언제인지는 모른다. 그의 이름이 박힌 자리 옆에 더 이상 타인의 이름이나 삶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이것이 우리의 다행인지, 이선옥의 진화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세상을 깊게 응시하고 관찰하며 물러섬 없이 할 말을 하고야 말았다.
모르는 일이나 개념에는 주변 사람들을 찾아가 묻고 배우고 익히는 기색이 그의 말과 글 행간에 묻었다. 몰라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고 정제되거나 여과되지 않은 말들을 배설해내는 우리 시대의 풍토에서 이선옥의 말을 주목해야 할 이유는 수두룩하다.
그의 글은 깊은 사유와 오랜 응시가 어려 있는데도 어렵거나 난해하지는 않았다. 사유와 응시가 배인 단단한 저술 <단단한 개인>은 르포 작가 이후 이선옥의 내면을 보여준다.
젠더 갈등 혹은 남녀 갈등으로 대표되는 이 시대의 폐허를 검색하면 자리한 켠에 이선옥의 이름이 있다. 여러 다툼이나 논쟁 자리에 나서서 토론하고 의견을 나눴기 때문이다.
이 책 역시 시작부터 중반까지 젠더, 페미니즘, 정체성 정치,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그의 논리적 특장이기에 적힌 대목이라기보단, 그가 느끼기에 우리 시대의 가장 화급한 문제이기 때문에 서술된 게 아닐까 한다. 그는 르포 작가 시절에도 가장자리, 꼭대기, 한데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곤 했다.
이선옥은 이 뜨거운 이슈와 논쟁에 타격이나 선언, 비판이나 단언으로 맞서지 않는다. 역시 깊이 생각해보고 논리를 마련하고 상대방의 주장이 내 논리와 맞물릴 여지가 있는지 살펴봄으로써 논의의 격절 공간을 좁히려고 애를 쓴다.
이러한 노력은 여지와 물러섬이라고는 전혀 없는 상대를 마주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상대의 틈이 아니라 품을 찾는 사람의 세심한 심성이 건조한 논리라는 외피를 뒤집어쓴 채 책에는 시종 서술된다.
리얼돌, 무고죄, 남녀간 임금차별 등 아주 뜨겁고 양쪽 한치 물러설 생각이 없는 주제들이다. 이 주제를 두고 어느 날은 홀로 열을 내며 머릿속에서 도상 토론을 한 적이 있었는데 차분한 서술을 보며 전날이 머쓱해 혼날 지경이었다.
책에는 좌우를 넘나들고 세대를 아우르는 십 수 명의 추천사가 적혔다. 이선옥의 생각을 존중하고 그의 응시를 격려하는 의중처럼 느껴졌다. 추천인 가운데 하나는 SNS상에서 날선 글과 독살스러운 멘션을 날리기로 이름난 이인데 도무지 그의 글이라고 믿기 어려운 추천사가 실려 거듭 읽어볼 정도였다.
필자에게 <단단한 개인>을 권한 이는 우선 ‘잘 읽힌다’고 추천했다. 몇몇 장을 제하곤 금세 가독에 속도가 붙었다. 다만 가독성이 좋다고 책의 수준이 낮거나 다루는 이슈가 뜨겁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낙태죄나 무고죄, 리얼돌 도입, 노키즈존을 다룬 장에선 이선옥의 표현을 빌리자면 ‘권리논증’이란 사고 전개방식으로 서술되는데 이때 동원되는 근거나 자료는 헌법적 가치와 근대 이래로 우리가 지키고 쟁취해왔다고 여겨졌던 가치들이다.
읽다 보면 고개를 갸우뚱해, 덮어두었다 다시 열어보기도 했다. 어렵고 난해하다고 느꼈지만, 그의 논증에 따라갈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는 전직 대법관이 보증할 정도다(책의 뒤표지를 참고하라). 영미법적 간소함과 대륙법적 난해함, 그런 개념은 필요 없다.
글을 쓰거나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싶은 사람들은 많은 경우 ‘세상을 바꾸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힌다. 약한 자의 편에서 그들의 권익을 끌어올리고, 부조리한 제도 혹은 구태 사고를 단숨에 갈아치우고 싶은 생각에 빠진다.
얼마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아나운서 I의 경우도 그래 보였다. 누대에 걸쳐 언중이 숨 쉬듯 사용해왔던 낱말 하나를 자신이 읽은 몇 안 되는 글줄에 따라 그것은 옳지 않다고 단언하고 낙인찍어버리는 식이었다. 옳지 않을 수 있었다. 모든 구습은 옳지 않다는 여러 경로의 판단과 논쟁,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거쳐 변해왔으므로.
그러나 그러한 판단을 내리고 거기에 언중이 동의하기까지는 오랜 기간과 기나긴 논의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 끝에 결국 옳은 쓰임이라고 낙착 지어질 수도 있다. 그는 세상을 바꾸려고, 아니 작은 말 한마디에 담긴 누대에 걸친 사고방식 전부를 감당하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이선옥의 말을 들어보자.
인간은 그렇게 다양한 존재이며 같은 환경에 있다고 해서 똑같은 사고체계를 가지지 않는다. 얼마나 알 수 없는 존재인가 인간이란 종(種)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이 세상을 바꾸겠다는 말은 공허하다.
- 내가 ‘프로불편러’의 삶을 떠난 까닭에서
아나운서 I와 같이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자신이 생각하는 몇몇 사고방식이 최우선 옳다는 운동가, 정치가, 단체들이 너무 많다. 몇 달 전 생때같은 목숨을 스스로 저버린 아이돌들을 두고 중계 혹은 해설하듯 남녀 우위 구도를 난삽하게 설파하려고 했던 저널리스트 W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의 생각을 세우는 일에 치열하고 집요하면서도, 타인의 다름을 존중하는 유연함을 가진 단단한 개인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이 책은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 함께 단단히 서 있자고 조심스럽게 내미는 손입니다. 당신이 나의 손을 덥석 잡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머리말에서
결국 인간일 것이다. 이선옥의 <단단한 개인>은 여러 사례와 이슈, 논쟁을 거치고 지나와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 인간에게 말을 거는 책이다. 이선옥은 반론이 틈입하지 못하는 반지성의 세계, 나와 다른 것은 끝까지 다른 이 첨예한 사회에서 나아가 남과 다른 내 생각도 존중받으며 자유롭게 서로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서로의 의견을 존숭하는 사회를 꿈꾼다.
그의 꿈에 동의한다.
저작권자 ⓒ 리얼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