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뺀 한일 교류 가치 있을까

[리뷰] 허남정 ‘일본은 원수인가, 이웃인가’

양의모 승인 2020.09.22 17:32 | 최종 수정 2020.09.23 14:55 의견 0

일본의 대변인이 되어 버린 일본전문가의 친일적 주장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지만, 역사에만 매달리는 민족에게도 미래는 없다.

저자 허남정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외대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일본 관계의 분야에서 주로 실무를 하며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을 연구한 허남정 박사는 지난해 한일관계의 악화를 우려해 1111km에 달하는 일본의 국토를 횡단하며 한일관계의 미래를 모색했다. 많은 사람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역사나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낸 결론이 바로 이것이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말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국의 미래는 불행했던 이웃과의 과거사에서 벗어나 미래를 향해 한 발을 내디딜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해묵은 반일 정서를 극복하는 일이 우리가 다시 한번 세계무대에서 도약할 수 있는 열쇠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상의 내용을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은 의도가 엿보인다. 

1. 지나간 일은 잊어라. 뭐 그리 옛날 일에 집착하는가?
2. 역사문제를 해결할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우리만 잊으면 끝난다.
3. 반일 정서는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니 무조건 버려야 한다.  
4. 반일 정서를 극복하면 우리에게 세계무대에 도약할 길이 열린다.

이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일본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내용임을 알 수 있다. 마치 일본 정부의 의사를 대변해주는 것과 같다. 대표적 혐한인사인 전 주한일본대사 무토 마사토시에게 훈장을 수여 받은 전형적 친일파의 모습이 비친다.

무토 마사토시는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다’라는 반한 서적을 출판하고 방송에서 혐한발언을 거듭하는 전형적인 혐한인사이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불과 20일 정도 지난 시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최악의 대통령으로 평가해 반문재인 정서를 드러내며 지금까지 반문재인인사로 활동하기도 하고 있다.

문재인, 한국에 재앙(무토 마사토시 지음/ 비봉출판사 출판)
문재인, 한국에 재앙(무토 마사토시 지음/ 비봉출판사 출판)

취임 20일에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평가가 가능할 리가 없다. 그가 반문재인정서를 갖게 된 것은 자신이 한국에서 근무할 당시 문재인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해 지한파를 자처하지만, 그것은 겉모습일 뿐 영락없는 혐한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지난해 9월 3박4일에 걸쳐 대마도를 여행하며 현지인들과 한일관계에 대한 인터뷰를 시도했다. 그때 그들이 내세운 이야기도 한결같이 위와 같은 내용이었다. 식민지지배의 죄악에 대해서도 무지하며 자신들이 한국에 대한 침략적 행위에 대한 죄의식도 전혀 없었다. 심지어 식민지지배는 인류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오리엔탈리즘적 가치관을 앵무새처럼 떠들었다.

필자는 이에 대하여 이렇게 반론을 했다. “만일 당신의 아들딸을 강제노동과 성적 착취를 강요한 자들을 아무런 사과나 보상 없이 용서할 수 있는가?”라고. 그들은 “어른이라면 지난 일을 잊고 화해하여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 도리이다. 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일 것인가?”라고 제반박했다.

이 주장은 일본에서 자주 인용돼 관용어구이다. 하지만 한일관계에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로 사이가 나빠진 사람들이 “지나간 일을 흘려 버리고 새롭게 출발하자”라고 이 관용어를 사용한다. 그것은 상호 간에 대등한 관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우리와 일본은 전쟁한 사이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지배 피지배의 관계에 있던 사이다. 오용도 이 정도면 수준급이다. 몰라서 그랬다면 무지한 것이고 알고 그랬다면 뻔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허남정 박사는 평생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실무적인 일을 하였다. 그에게 학문은 역사의식을 가지게 하기에는 부족했던 것 같다는 인상을 이 책을 통해 받았다. 그런 그에게 한일관계의 아픔이 제대로 느껴질 리가 없다. 한일관계가 나빠지면 자신의 입지가 좁아지니 필사적으로라도 이를 막아야 할 입장인 것이다. 이것이 실무자의 한계라면 한계이다.

그러한 자신의 처지를 반영해 그의 논조는 매우 단순하다. ‘과거를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잊고 미래를 향하자’ 누구좋으라고 이런 말을 하는가? 허남정 박사는 비록 본의는 아닐지 몰라도 철두철미한 친일매국행위를 하는 셈이다. 허남정 박사의 이런 생각은 한일 관계에 대한 깊은 연구나 성찰이 없는 한국인들에게는 제법 그럴듯하게 들린다.

일본의 기만에 동조하는 친일세력의 거짓 선전을 경계하라

하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다. 아베 신조가 우리에게 경제제재를 가한 것은 그들이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보는 것인가를 보여준다. 그들은 아직도 우리가 식민지지배를 받았던 열등한 민족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즉 역사문제는 과거의 것이기에 잊힐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임을 이번 경제제재는 보여주었다. 그들이 우리를 대등한 파트너로 여겼다면 절대 그런 폭거는 있을 수 없었다. 아마 이른바 물밑작업을 통해 끊임없이 교섭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일방적 통보였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 ⓒshutterstock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 ⓒshutterstock

독일은 전후 75년이 지난 오늘도 전범을 체포하면 법의 심판을 받게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집단수용소에서 근무했었던 95세 남성이 전범 재판을 받게 됐다. 13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독일 서부 부퍼탈 지방법원은 슈투트호프 수용소에서 경비원으로 일했던 95세 남성을 수백 건의 살인을 공모한 혐의로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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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이러한 성실함은 유럽의 국가들에게 신뢰를 받고 독일에게 헤아릴 수 없는 이익을 부여하고 있다.

유럽이 제안하면 메르켈이 결정한다. 

독일의 높은 위상을 잘 말해주는 이야기이다. 75년이 지나도 시효 없이 이루어지는 독일의 역사에 집념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FEBRUARY 5, 2015 - BERLIN: Chancellor Angela Merkel after a meeting with the new Iraqi Prime Minister in the Chanclery in Berlin. ⓒshutterstock
FEBRUARY 5, 2015 - BERLIN: Chancellor Angela Merkel after a meeting with the new Iraqi Prime Minister in the Chanclery in Berlin. ⓒshutterstock

허남정 박사의 말대로라면 독일은 미래가 없는 나라다. 75년이나 지난 과거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오히려 역사를 무시하는 일본이 우리에게 중국에게 제대로 된 신뢰를 받지 못해 자신들의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있다.

만일 그들이 과거에 역사적 과오를 제대로 사과하고 그것을 자신들의 역사 교과서를 통해 후손에게 전하는 노력을 기울였다면 오늘의 일본의 위상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일본이 필요한 교훈이야말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인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원하는 것을 이렇게 대리로 퍼트리는 친일매국세력은 의외로 우리 사회 여기저기에 자리 잡고 있다. 지일파를 자처하지만 무토 마사토시처럼 실은 역사문제를 제기하는 한국을 비난하고 일본을 옹호하는 친일파들이다.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하자면 필자도 이러한 과오와 무관하지 않았다.

아울러 우리가 일본과의 역사문제를 잊어야 미래가 열린다는 주장은 어떠한 근거도 없는 기만적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일본은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줄 나라가 못 된다. 과거에는 압도적 경제력과 기술력으로 우리의 길을 제시한 선배였으나 지금은 더 이상 일본이 우리를 이끌 수 있는 나라가 아닌 것이다. 물론 수평적 협력은 가능하나 어디까지나 대등한 입장에서의 이야기이지 우리의 모든 자존심을 꺾으며 협력해야 했던 과거와는 다른 입장이다.

허남정 박사가 만난 사람들과 사이좋게 사진을 찍고 훈훈한 이야기를 나눈 것이 한일관계의 개선에 의미 있는 영향을 주었다고 믿는다면 착각도 대단한 착각이다. 만일 허남정 박사가 그들에게 역사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꺼냈다면 판은 금방 깨지고 분위기는 험악해졌을 것이다. 이것은 필자가 대마도에서 여러 번 경험한 것이다.

허남정 박사는 장기적으로 일본 체류를 한 적이 없어 모를지 모르나 일본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남에게 미소를 짓는 것에 관한 한 달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다. 그들이 자신들의 나라에 일부러 찾아와 대화를 요청하는 손님에게 환한 웃음으로 대하는 것은 자신들의 장기를 발휘하는 것이기에 어려움이 없다.

그런 교류를 백날 해봐야 개인적 친분 쌓기 이상의 소득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허남정 박사는 알고 있을까. 그런 식으로 교류를 한다면 필자도 고민 없이 일본열도를 백번이라도 횡단 할 수 있다.

섣부른 화해 시도가 아니라 장기적인 관계 개선의 노력이 필요하다

실은 필자도 지난해 여름 비슷한 구상을 하고 지인들과 상의한 적이 있다. 필자의 경우 100일 정도의 시간을 들여 서울에서 동경까지 에도시대 조선통신사의 길을 도보로 지나가고자 했다. 깃발에 ‘우리 한국사람들은 일본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습니다’라는 구호를 새겨 매달고 다닐 생각이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역사문제에 대한 팸플릿을 전하고 질의응답에도 응하면서 양국국민의 간극을 좁혀보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사전 답사형식으로 들러 본 대마도에서 일본인들의 의식이 너무나 잘못돼 있음을 알고 계획을 철회했다. 이런 상태에서의 만남은 도리어 상호 간의 불신과 불화를 가져올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돌아와 계속 한일관계의 개선에 대한 글을 써왔다. 그것은 역사문제를 중심으로 한 근본적인 개선책이었다.

그 모델이 된 것이 마틴 루터킹 목사와 독일의 브란트 수상 그리고 링컨 대통령이었다. 그들은 적과의 관계에서 이유 없는 양보를 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추구해야 할 숭고한 가치를 세워 상대에게 이를 권유하고 설득했다. 그 과정에서 상대에 대한 적대감은 최대한 자제했다. 왜냐하면, 상대는 악한 자들이 아니라 어리석은 자들이며 그렇기에 무지하다는 전제를 가지고 설득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17년 1월 16일(현지시간) 워싱턴의 일자리 가족 우선 보호소에서 마르틴 루터 킹 목사를 기념하는 ‘희망의 벽’ 벽화의 마무리 작업을 돕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17년 1월 16일(현지시간) 워싱턴의 일자리 가족 우선 보호소에서 마르틴 루터 킹 목사를 기념하는 ‘희망의 벽’ 벽화의 마무리 작업을 돕고 있다

일본인들은 개인적인 도덕성은 우리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짧게는 메이지시대부터 길게는 에도시대부터 집단이나 조직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역할과 본분을 배워온 사람들이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것은 단순하지만 매우 위대한 도덕률이고 이를 일본사람들은 생명처럼 소중히 여겼다.

일본이 수행한 전쟁은 많지만 그 과정에서 지배층이 자녀의 병역을 면제시켜 주거나 군수품을 빼돌려 막대한 이익을 취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들은 고도성장기에 정직한 자세로 산업을 발전시켜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런 선량함이 식민지지배나 전쟁에 대한 책임을 면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죄의식이 없는 것은 그러한 선량함으로 인해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양심적 가책을 가지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했다는 자부심은 그로 인한 피해를 본 사람들에 대한 죄의식을 상쇄시켜 버린 것이다. 마치 사형수를 살해하는 사형집행인의 의식과 같다. 사형집행인은 자신의 임무를 한 것이니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일본인에게 피침략국가의 국민은 자신들이 마땅히 죽여야 할 사형수였다.

그렇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에게 제국주의와 침략주의의 죄악을 폭로하고 그들에게 세계평화와 행복을 함께 이루자는 고귀한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공유하는 것이다.

마틴 루터는 백인을 악마라고 비난하지 않고 “형제자매들이여! 우리와 함께 피부색에 의한 차별이 없는 세계를 만듭시다”고 손을 내밀었다. 그것이 그 유명한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하는 연설이다. 그의 그러한 자세는 많은 백인 동지들의 지지를 얻었고 그는 피부색을 떠나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돼 그의 생일은 미국에서 유일하게 국경일로 기념되고 있다. 링컨도 워싱턴도 아닌 흑인이 그런 영광을 차지한 것은 실로 엄청난 결과였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

우리는 허남정 박사의 주장 같은 달콤하지만 해로운 ‘거짓 화해’의 독주를 마셔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일본을 미워하고 일본인을 배척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와 자유 인권 그리고 인류공영이라는 가치이며 그것을 위해 침략과 제국주의 지배가 얼마나 위험하고 해로운 것인가를 상기시키며 과거의 그러한 행위를 깊이 반성해 그를 바탕으로 한 참된 화해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1965년 우리는 경제적 발전이라는 눈앞의 당근을 위해 역사문제를 미해결한 채 일본과의 조급한 국교 수립을 단행했다. 그것이 오늘까지 한일관계의 근본적 안정을 가져오지 못하는 원인이 됐다. 비록 후진국으로서 부득이했다고 해도 다시는 이러한 문제를 회피하고 성급한 화해를 맺어 또다시 양국 간에 문제의 불씨를 남겨서는 안 될 것이다.

일본은 원수인가, 이웃인가(허남정 지음/ 글로벌 마인드 출판)
일본은 원수인가, 이웃인가(허남정 지음/ 글로벌 마인드 출판)

맛있지만 김빠진 맥주와 같은 책

허남정 박사의 저서는 저자의 육체적 정신적 노력이 깃들어진 수작이기는 하나 아쉬움이 남는 문제작이기도 하다. 일본여행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좋은 가이드북이 될 수도 있다. 또 일본에 대한 여러 가지 상식을 배우기도 좋다.

하지만 그의 저서는 역사와 정치라는 가장 중요한 주제가 빠졌기에 맛은 좋으나 김빠진 맥주처럼 싱겁다는 인상을 주기 쉽다. 술은 쓴맛에 먹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으니 그냥 맛있는 음료와 같아진 것이다.

허남정 박사와는 개인적으로 친분도 있어 그의 역작을 무조건 칭찬하고 싶으나 그럴 수 없는 필자의 입장을 이해 해달라고 부탁드리는 바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많이 남기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어쩌면 그의 뛰어난 인격이 도리어 한일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 대신 자상하고 부드러운 시선을 가지게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아울러 독자들이 허남정 박사의 저서를 통해 일본인들의 소박한 모습을 이해하고 그들에 대한 적대심을 해소하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일본은 원수인가, 이웃인가’는 매우 가치있는 명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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