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북 전단 살포를 비난하는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담화 이후 통일부의 대처는 신속했다. 고작 3시간여 만에 관련법을 제정한다는 계획을 세웠고 대북 전단 단체들에 유감 표명을 나타냈다. 남북 상호 간에 공박과 전통문 등으로 의견을 교환하고 기색을 나타내는 일은 잦았지만 이번 경우처럼 북한의 담화에 한국 정부 부처가 대책 마련이라도 하는 듯한 모양새에는 아연했다. 이를 두고 SNS상에서는 말들이 들끓었다. ‘최고 존엄의 뜻에 어긋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대체 어느 쪽 정부 부처인지. 통일부인지 통일전선부에서 나온 논평인지 알 수가 없다’는 말 등이었다.
#2. 제21대 국회 개원은 여당 단독으로 이뤄졌다. 단독으로 의장단을 선출했고, 곧 원 구성까지 마칠 전망이다. 180석(현재는 177석) 공룡 정당으로 낙착된 지난 제21대 총선은 국내 민심이 아직도 대통령과 여권을 지지하는 뜻으로 비쳤다. 코로나19 변수와 긴급 재난지원금 등의 정책에 영향을 크게 받은 결과라는 분석이 이어졌지만 순수하게 선거로 만들어진 이번 결과를 두고 한국 사회의 정치 지형, 나아가 권력 지형은 크게 변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당장 여당은 12개 국회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전부 여당 몫으로 달라는 엄포를 놓았다. 유례 없던 일이다. 국회 상임위원회의 꽃이라는 법제사법위원회와 예결위원장을 여당 몫으로 따내려는 강공이란 분석도 있었다.
#3. 여당 초선의원은 사법부의 적폐 판사를 입법부에서 탄핵하려는 심사를 내비쳤다. 전직 대법원장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인사상 불이익을 당했다고 옷을 벗은 인사였다. 해당 블랙리스트에 정말로 등재돼 불이익을 받은 것인지조차 의문투성이인 가운데 여당이 압도적인 국회 과반의 힘을 믿고 삼권 분립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 방안에도 모르쇠로 일관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중이다. 이 초선의원은 앞서 국립 현충원에 안장된 친일 의혹을 받는 인사들을 파묘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의견을 내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문재인 정부는 여당의 압도적인 총선 승리로 후반기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게 됐다. 얼마 전 있었던 청와대 비서관 인사에서 대통령의 측근과 우호 인사들이 대거 등용됐다. 후반기 국정을 보다 강하게 이끌어가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이제, ‘야당과의 협치’라는 낱말은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듯 느껴진다. 개헌 빼고는 뭐든지 할 수 있는 여당과 지지율 60% 이상의 청와대의 위의는 단단하게 보인다.
전직 주한 일본대사가 쓴 <문재인, 한국인에 재앙>이라는 책을 읽었다. 전적으로 제목, 그리고 저자의 약력에 힘입어 구한 책이었다. 한일관계는 건국 이래 최악이라 할 정도로 악화일로인 상황, 저자는 그 틈에서 외교부의 초치를 당하고 물러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의 이전 저서는 한국 국민감정을 험하게 만들기 충분했지만, 그것은 제목(<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다>)에서 비롯된 바였고 정작 내용은 사실에 바탕을 둔 한국사회 비평쯤으로 알려졌다.
국민 다수가 문재인 정부와 현 여당에 적지 않은 힘을 실어주는 듯한 마당인데, 책은 왜 또다시 이 같은 제목으로 화제의 중심에 섰는지 알고 싶었다. 책에는 문재인 정부 들어 있었던 일련의 외교 일화들과 각종 지표, 언론 보도, 대사로서 정보 수집한 바들을 두고 평가를 하는 식으로 이어졌다. 제목에서 짐작했겠지만 대개, 아니 전부가 비판이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출간, 사태에 대처하고 국민에게 평가받는 대목은 담기지 않았다.
목차 가운데 눈길이 가는 부분은 외교였다. 아무래도 저자의 전문성이 가장 발휘되는 대목이었다. 저자는 혹평한다. 혹평에서 그치지 않는다. 역대로 이런 정부, 이런 외교 당국은 없었다는 평가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숙원인 남북 평화 정착을 위해 다른 나라와의 관계나 조치는 일절 무시됐다는 것이었다. 비핵화에 초점을 맞춘 UN 제재를 임의로 위반하거나, 북한 측의 의중을 일방적으로 동북아 관련국에 전해 외교 역학을 이지러뜨렸다는 말이었다.
북미 하노이 회담 역시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전하는 중개자 노릇을 했지만, 북한의 의중은 미국이 바라는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의 비핵화)에는 못 미쳤다. 대신 영변의 핵시설만을 폐기하는 수준으로 미국의 각종 금융, 경제 제재 해제를 바랐고, 지원을 원했다는 후문이었다. 대사는 막후에 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UN에서 결의한 제재 조치를 일방적으로 어긴 문재인 정부의 일화들도 공개했다. 해상에서 북한에 반입되는 금지 물목을 허용하고 모르쇠 했다는 증언도 여럿이었다. 사실이라면, 문재인 정부의 대북 중개자 노릇은 북한 최고 지도자의 사치품을 배송하는 심부름 수준이었다.
이 같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그 때문에 G20 정상회담이나 ASEAN+3 같은 자리에서 신의 없는 지도자라는 평판과 반응이 돌았다. 네티즌들이 간혹 회담 화면을 우스꽝스럽게 편집해 대통령의 위치를 조롱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일본 전직 대사의 기록으로 마냥 허구가 아니라는 사실이 증언되는 셈이었다.
주한 일본대사 시절 외교부 실상을 다룬 이야기도 집중해 읽었다. 그는 현재 외교부의 미국, 중국, 일본에 유능한 인력이 배치되고자 하는 의지가 다 없어졌다고 말했다. 책임 있는 위치에서 사명을 가지고 과업을 수행하다 정권이 바뀌면 하루아침에 타국과 영합하는 부역 공무원으로 낙인되기 때문이란다.
문재인 정부 집권 후 과거 당국자들이 맺었던 아시아 여성기금이나 한일 징용 협정 모두 무위로 돌아가고, 이를 집행한 당국자들을 언론에 부정적으로 몰아세우면서 생긴 기피 기색이었다.
또한 정권 교체 후 외교부 국장급 인사에는 오랜 관록으로 일해 온 공무원들이 물러나고 정권과 코드가 맞는 인사들이 대거 임용된 전적이 있어 공무원들의 전문성보다는 줄을 어디에 잘 서느냐에 따라 관운이 결정되는 식이라는 말도 있었다. 더불어 통역사 출신의 외교부 수장이 입각해 외교의 기본부터 전무한 지경이니 대통령이 타국에 가면 크고 작은 해프닝(주로 외교결례)의 연속이었다고 저자는 전했다.
책은 외교뿐만 아니라, 경제, 정치, 사회 등 한국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문재인 정부의 독재적 기질과 과거 반 군사독재 전선에서 이제는 기득권이 되어버린 사회 중추세력이 내뿜는 기운을 우려한다는 서술이 등장한다. 이들은 과거 한국의 발전기를 일방적으로 폄하하고, 자신들의 방침과 뜻에 반한다면 전부 적폐로 몰아 사회적으로 숙청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한 작가는 ‘치욕과 수모의 역사도 다 우리의 지난 역사’라는 말을 했다.
문재인 정부를 향한 저자의 우려는 하늘을 찌르지만, 지난 총선과 현 여론조사는 이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국민은 기대를 하고, 이 정부와 여당을 지지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포의 심정이 배어있는 것일까. 앞서 정부와 여당의 두 사례를 돌이켜보자.
책에서 우려하는 바가 어느 정도, 아니 더 심화할 듯하다는 전망도 든다. 일본 대사의 혹평 일색이라고, 한국을 부정하고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바라기 때문에 쓴 책이라고 평가절하하기보다는 한 번 읽어보며 생각을 다듬어 봐도 좋지 않을까. 언젠가부터 인지 몰라도 이 정부와 대통령을 비판하는 모든 말들은 불온하고 음험한 말이 돼버린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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