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큰 배신, 한 번쯤 겪어 보신 적 있으시죠?
얼마나 상처받아야 ‘큰’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엄살이 아닐 수 있을지 누구도 정해 놓친 않았지만 적어도 분명한 것 하나는 있어요.
아주 친밀한 관계였다는 것, 다 안다고 생각했었다는 것. 사건의 크기, 무게보다 상대와의 거리, 신뢰감이 배신감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나는 한 걸음 다가가는데 딸은 한 걸음 도망가고,
내 남편의 비밀을 나만 모르고,
내 비밀을 모두가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 역시 나만 모르고,
공적으로 취소된 약속이 나만 빼고 사적으로 다시 잡히고,
앞에서의 동경은 뒤에서의 호박씨로 바뀌고,
사십년지기 친구들 앞에서도 나를 다 설명할 수 없고,
사랑 속에 잠수 중인 줄 알았는데 약점 잡혀 죄의식 속에 갇혀 있는 중이었고.
그래서 아주 친밀한 사람이 사실은 가장 낯선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은 반드시 옵니다. 우리 모두에겐 비밀이 있거든요.
사람들은 누구나 세 개의 삶을 산다.
공적인 하나, 개인적인 하나, 그리고 비밀의 하나.
우리에게 비밀이 있는 이유는 완벽할 수 없어서겠죠. 뒤가 쿰쿰한 속내 및 행동은 이해받을 리 없으니 쉽게 공유할 수 없는 거죠. 서로가 너무 다르니까요.
남자와 여자는 안드로이드와 아이폰만큼 다르고 같은 목적을 향한 노력도 겉과 속만큼 다른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렇게 완벽할 수 없는 만큼 나약한 존재들이라서 쉽게 상처도 받아요. 그래서 비밀은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핸드폰을 공개하는 진실게임이 정말로 그 밤, 일어났다면 두 부부는 이혼했을 테고, 한 사람은 세 친구를 잃었겠지만 어쩌면 진실과 진심에 한발씩 더 다가갈 수도, 그래서 이런 깨달음에 달했을 수도 있었을 거에요.
한 가지는 확실하게 배운 게 있어.
‘모든 관계는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사람들이 다 다르잖아. 생각도 다르고 행동도 다르고 사랑하는 표현법도 다르고. 근데 우리는 그거를 보통 틀렸다고 말하고 상처를 주고받더라고. (중략) 나는 당신도 우리 관계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구나, 이런 거를 몰랐어요. 미안하다.
우리의 나약함이 뾰족한 가시가 되어서 상대를 찌르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만은 나의 그 나약함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그마저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죠.
월식을 소재로 삼은 이 영화의 장면 중에 이런 멋진 대사가 나와요.
사람의 본성은 월식 같아서 잠깐은 가려져도 금방 드러나게 돼 있어.
맞아요. 감춰지는 것, 거짓말하는 것, 그거 오래 안 가요.
완전히 가려지다가 붉게 변하는 달을 두고 블러드문(blood moon)이라고 부릅니다. 이름부터가 섬뜩한데 달이 붉어지는 그 순간에 저주가 퍼진다는 말도 딸려와요.
그러니까 본성이 완전히 감춰져 타인을 완벽하게 속일 수 있다면 그건 저주라는 거에요. 영원한 비밀이란 없는 거죠.
모두의 안녕을 위해 영화는 핸드폰을 공개하는 진실 게임을 하지 않는 결론을 택하지만 실제로 보이는 전개는 진실게임을 했을 때 벌어지는 상황입니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생각보다 훨씬 낯선 사람일까 봐 두려워 굳이 많은 것을 알 필요가 없다는 것은 이미 그에겐 내가 결코 알 수 없는 비밀의 삶이 하나쯤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죠. 몰래 엿본 우리는 그 비밀의 삶이 얼마나 위태롭고 치명적인지 확인했고요.
34년 전, 11살이었던 그들은 영랑호가 호수인지, 바다인지 한참을 실랑이하며 주먹 다툼까지 했었죠. 그때를 회상하며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답은 없지. 말 그대로 거기는 바닷물도 있고 민물도 있으니까.
야, 쉽게 생각해. 우럭 잡는 놈은 바다고 붕어 잡는 놈은 호순거야.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믿든,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외면하든 그 선택은 순전히 우리의 몫이겠지만 적어도 서로를 위해 노력은 해보았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나약해도 사랑하는 이를 지켜줄 수 있을 만큼은 강한 것이 사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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