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은 문성호 한국성범죄무고상담센터 소장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센터의 출발이라 할 시민단체 ‘당신의 삶과 당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하여’(이하 당당위)를 출범하고 첫 번째 대중 집회를 마친지 꼭 2년이 된 날이다. 그 사이, 아니 그 이전부터 성범죄란 그악한 죄명을 뒤집어쓴 채 법적 처벌을 받은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문 소장은 이 부조리에 분노했고, 이 분노는 공분이라는 보다 큰 목소리로 발화했다. 전북 부안 고 송경진 교사 누명 사건, 박진성 시인 사건, 광주 데이트 폭력 사건 등 세상이 손가락질하지만 정작 정확한 진실과 혐의는 보이지 않아 억울하게 범죄자로 몰리거나 숙어들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곁에 문 소장과 당당위가 있었다.
당당위 출범 2년째. 단체는 진화했다. 단체와 뜻을 같이하는 시민의 지원으로 산하에 무고, 누명 피해자들을 전문적으로 돕는 한국성범죄무고상담센터를 두게 됐다. 기존의 활동이 집회와 주장 등 여론에 호소하고, 법원에 올바른 판결을 촉구하는 식이었다면, 센터는 검경 수사과정 나아가 법원 재판 과정 측면에서 무고 피해자를 법률적이고 전문적으로 지원하고 조력하는 역할을 더했다.
문 소장은 노련해졌다. 당당위 대표 자격으로 원내 정당 관련 경험을 거쳐 판세와 제도, 정치와 사법 그리고 현실 간 역학에 눈을 떴다. 당당위와 센터는 이제 단순한 법률 지원과 조력, 여론을 넘어 그 이상을 응시한다. 그는 “아무래도 현재 잘못된 사법부의 관행이 단순히 법원이나, 검찰, 경찰 조직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권에서 제도적으로 짚어주고 다뤄줘야 한다”며 “단순히 억울한 피해자들에게 지원하고 조력하는 부분을 넘어서, 그러한 피해자들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제거해야 할 필요성, 그 시작은 역시 정치이다”고 역설한다. 헌법소원 같은 제도적 구제 절차, 입법 청원 등의 대국회 활동, 원내 정치인과 협업을 통한 법률안 재·개정까지 구상 중이다.
문 소장과 센터는 억울한 사람이 거듭 발생하는 현실 속에서 그들을 조력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보다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문제에도 집중한다. 그는 첫 집회 2주년 소회를 담은 페이스북 글에서 “이제 겨우 2년입니다. 저희가 쟁취해야 할 사법정의의 길은 아직도 멉니다. 힘든 길이지만 멈추지 않고 지치지 않고 계속해나가겠습니다. 앞으로도 당당위와 한국성범죄무고상담센터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고 적었다. 성범죄 무고 피해자, 누명을 쓴 채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는 사람 곁 제일 앞줄에 문성호 소장이 있다. 인터뷰는 지난 22일 서울 서초동 한국성범죄무고상담센터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Q. 당당위(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 한국성평화연대 등 여러 조직과 사람이 함께 했다고 들었다. 출범하게 된 배경을 설명해준다면.
우선 당당위라는 단체부터 설명해 드리겠다. 당당위는 근대사법의 원칙이라고 할 무죄추정, 증거주의 재판이 무너진 사례로 알려진 곰탕집 성추행 사건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출범된 시민단체이다. 기존 당당위 조직이 온라인에서 모인 젊은 친구들 위주로 구성돼 있다 보니까 실질적이고 사법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를 느꼈다. 변호사 등 법무 전문가들과 함께 제대로 피해자를 조력하자 이런 취지로 출범한 곳이 성폭력무고상담센터이다. 기존 당당위 시민단체 조직과 자문해주시는 변호사님들이 모여 사무실을 마련하고 활동 중이다.
Q. 출범한 지 석 달째? 당시에도 밀려드는 의뢰 건수에 과부하가 걸릴 지경이라고 들었다. 요즘은 어떤가. 여러 매체에서 들려오는 무고 관련 케이스가 적지 않던데.
큰 홍보 없이도 당초 예상했던 수치보다 훨씬 많은 상담에 여력이 없을 정도였다. 성범죄 무고라는 피해는 꾸준히 발생하는 반면에 이를 다루고 조력하는 상담센터가 없다. 그 때문에 출범 소식만으로도 많은 의뢰와 상담 요청이 들어왔다. 현재는 처음보다 많이 안정돼가고 있다.
Q. 홈페이지나 SNS 등은 왜 개설하지 않은 건지. 현재 밀려드는 케이스도 부담스러울 숫자인가.
차근차근 준비 중이다. 본래는 출범과 동시에 제작하려고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밀려드는 사건 의뢰와 상담에 거기까지 챙길 만한 여력이 없었다. 한동안 사건 파악과 상담에 총력을 기울였으나, 이제는 센터 업무도 기틀이 잡혀가고 궤도에 올라가는 중이니 홈페이지나 SNS도 운영해 나갈 예정이다.
Q. 기존 법률 조력 서비스에 비해 적은 실비 정도를 받고 사건을 수임한다고 들었다. 운영이 어려울 듯하다. 아무리 공익적 목적이라지만 지속가능성이 담보되어야 하지 않나.
성범죄 무고라는 부분에 문제의식을 느낀 시민이 기본적인 후원을 맡는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해바라기센터(성폭력 피해자 지원 센터)를 생각하면 된다. 그곳 예산이 정부에서 나오는 것처럼, 기본적인 운영비는 기업에서 나온다. 센터 직원들 인건비나 임대료 등은 거기서 지불되고. 변호사들은 센터 소속이 아니라, 이웃한 로펌에서 활동하는 분들인데 역시 성폭력 무고라는 데에 문제의식을 함께 하시고, 사건을 맡아주실 때마다 약간의 수임료를 받는 구조다.
기존 당당위는 뜻을 함께하는 분들이 후원하는 구조였다. 현재도 당당위 카페를 통해 후원은 받지만, 센터도 출범했기 때문에 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을 염두에 둬야 한다. 센터 지원 시민과 후원회원, 이 두 축으로 움직인다.
Q. 사건을 수임하는 데 있어 가장 중점적으로 혹은 예민하게 주목하는 부분이 있다면.
개별 사례마다 꼭 짚어서 조언하는 점은 다양하겠지만, 공통으로 강조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사건이 어느 정도 진행된 뒤에 조력을 위해 센터를 찾아오면 그때는 늦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대한민국 성범죄 재판이 명확한 증거를 찾거나 이를 바탕으로 수사하고 심리(증거재판주의)하기보다는 피해자중심주의 성인지감수성이라는 개념으로 피해자 진술을 중심에 넣고 사건을 풀어나간다.
그러다 보니 결국 조사를 받으며 내가 했던 진술, 상대가 했던 진술 서류 몇이 쌓여 법정에서 심리에 사용되는 근거의 전부가 되어버린다. 이때 피해자중심주의라는 개념이 성범죄 재판을 지배하면서 피고(피의자)에게 잘못이 있나, 없나 하는 쟁점보다는 유죄가 분명하다는 쪽으로 흘러가는 식으로 재판이 진행된다. 그 때문에 진술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사건이 검찰, 법원으로 넘어간 뒤에 센터에 찾아오면 그걸 뒤집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거듭 강조하지만, 사건이 벌어지자마자, 고소를 당하자마자 최선의 경우는 수사 당국에 출두하기 전에 오시는 게 가장 좋고, 늦어도 최초 수사를 받은 직후 찾아오셔야 한다. 정말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경우는 정말 억울하고 잘못이 없다고 믿는 분들이다. 살면서 경찰 수사를 받아본 적이 없고 공권력에 대한 신뢰로 ‘나는 잘못이 없다’는 판단으로 아무 준비와 대응을 하지 않는다. 수사기관이 본인의 무고를 증명해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준비와 조력, 지원 없이 수사기관에 출두해 수사기관이 묻는 대로 진술해버리면 어느새 본인의 혐의를 스스로 입증하는 모양새가 된다. 실제로 아무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데 말이다. 성범죄 사건 특수성을 제대로 알고 옆에서 지원하고 조력해줄 수 있는 전문가가 초반부터 필요한 이유다.
센터가 출범한 지 석 달 정도 됐을 뿐이라, 사건 직후 수사기관의 출두 명령 청취 전후로 센터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기에 수사가 이미 다 종결되거나 심하게는 1심 재판 판결 이후에 찾아오시는 분들도 있어 그 점이 안타깝다. 몇 번을 강조하지만, 성범죄 무고 피해를 보았다, 성범죄 누명을 썼다고 수사기관의 통보가 온다면 그 즉시 센터 혹은 법률 전문가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다른 하나는 녹취의 중요성이다. 일반적인 재판이라면 원고인 검사 측이 피고의 유죄를 입증해야 하는데, 성범죄 재판 같은 경우는 피고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는 식이다. 이런 전근대적인 재판에 대비하기 위해선 본인이 증거를 가져야 한다. 성범죄라는 특성상 단둘이 있는 경우가 많다. 폭행이 동반된 경우가 아니라면 진단서라는 물적 증거를 제출할 수도 없기 때문에 상황 자체를 녹취해 놓는 방법 말고는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내기가 어렵다. 요즘엔 스마트폰 녹음 기능이 워낙 잘 되어 있으니 항상 조심한다는 생각으로 여성과 단둘이 있을 땐 꼭 녹취를 켜놓았으면 좋겠다.
최근의 재판 경향은 성관계하는 그 순간만 녹취하면 무고의 근거로 인정받기가 어렵다. 성관계 전후 상황을 전부 녹취해야 한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 순간에도 이를 의심하고 경계해야 한다는 사실이 슬프지만, 누군가의 악의적인 고발만으로 나락에 떨어질 수 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스스로 본인을 보호할 방법은 현재 녹취 말고는 없다.
Q. 단순 법률 조력을 넘어 헌법소원이나 입법 청원 등의 제도적 접근도 구상하는 중인가. 계획을 들려준다면.
계획이 있다. 현재는 너무 많은 사건을 처리하기에 여력이 없으나 장기적인 청사진을 그린다. 노하우와 역량이 쌓여서 업무에 좀 더 능숙해지고 처리 속도가 붙으면 조직을 재정비하고 인원을 좀 더 갖춰서 제도적 접근을 할 계획이다. 정치권과의 협업도 생각 중이다.
아무래도 현재 잘못된 사법부의 관행이 단순히 법원이나, 검찰, 경찰 조직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권에서 제도적으로 짚어주고 다뤄줘야 한다. 단순히 억울한 피해자들에게 지원하고 조력하는 부분을 넘어서, 그러한 피해자들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제거해야 할 필요성, 그 시작은 역시 정치이다.
Q.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대표 발의하려는 비동의간음죄·강간죄가 제정되어 시행되면 무고 피해자가 더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 일반에겐 많이 알려지지 않은 듯한데 정확히 어떤 법안인지 설명해준다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정의하는 강간이라는 범죄에는 ‘협박’과 ‘폭행’이 담겨야 한다. 협박과 폭행 등의 위협으로써 상대방이 자신의 성적 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에만 강간으로 인정한다는 의미다. 류호정 의원의 법안 발의문을 읽었다. 앞서 얘기한 요건(협박과 폭행)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 강간죄로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인데 때문에 강간의 범위를 폭행이나 위협이 아닌 비동의, 한 마디로 상대가 동의하지 않았다면 강간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법안이다.
사실 이 법안은 너무 자의적이고 잘못된 법안이다. 이 법안의 주장 자체를 들여다보자. 법안은 위협이 없는 성범죄를 처벌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우리나라 현행법에선 그런 공백을 다 메워주는 법이 이미 다 갖춰져 있다.
준강간의 경우 예를 들면 술이나 약에 취해 잠든 자를 간음하는 경우를 처벌한다. 잠들어있는 사람에겐 위협을 가할 수 없지 않나. 그 때문에 위협이라는 요건이 담긴 강간은 아니지만, 강간에 준하는 죄를 저질렀다는 의미로 준강간이라는 죄목으로 처벌한다.
또 다른 예를 들면, 길에서 지나가다 누가 내 엉덩이를 만진다. 만지기 전에 위협하지 않으니 역시 강간 요건이 성립되지 않지 않나. 그렇다고 죄가 없지 않기에, 강간은 아니나 강제추행이라는 죄로 처벌한다. 위력에 의한 간음 역시 직접적인 위협은 없으나 상하, 수직, 갑을 구도 사이에 생기는 역학 관계로 벌어지는 성범죄이기에 우리 법에선 처벌한다.
류 의원의 법안이 없어도 이미 강간 요건 ‘위협’, ‘폭행’이 공백인 성범죄를 처벌하는 법은 마련돼 있다. 현재 그 법안들이 과도할 만큼 적용이 되는 중이다. 법안을 제정한다는 분들이 이런 선행 법령이나 현실을 모르고 그러는 건지, 알면서도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론을 호도해서, 마치 우리나라가 성범죄자를 처벌하는 데 어떤 구멍이 있거나 하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현행 성범죄 수사 관례상 설사 그런 목적 아래 제정되는 법안이라면 과연 얼마나 적용이 되겠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또한 이 법안은 ‘동의’라는 기준을 정확히 명시하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동의로 볼 것인가. 동의 입증은 어떻게 할 것인가, 동의의 입증 책임은 누가 가질 것인가 등의 논의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졸속이라 해도 과하지 않다. 기존에 성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 법령이 마련돼 있는데도 무시하고 밀어붙이는 법안이라서 제안자가 깊은 고민과 연구, 공부를 하고 발의한 것인가 의문이 든다. 만약 이 법안이 어떠한 여과나 깊은 논의 없이 제정된다면 지금보다도 훨씬 더 많은 성범죄 무고 피해자들이 양산될 것이다.
Q. 센터의 활동으로 법조에선 판결에 신중을 기하거나 하는 움직임이 있나. 무고는 양형도 적고, 유죄 확정도 어렵다고 들었다.
무고죄 유죄를 받아내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우리나라는 무고죄 입증 조건이 상당히 까다롭다. 성범죄 같은 경우, 현재 사법부나 수사기관의 분위기는 성범죄 무고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강하다. 성범죄 무고 입증의 필수 단서라 할 상대방의 진술이나 고소장 같은 자료를 움켜쥐고 내주지 않는다. 그 때문에 무고죄를 인정받기엔 아직 어려움이 크다.
센터의 영향이라기보다는 당당위를 출범했던 2년 전보다 조금은 귀를 기울이려고 하는 듯하다. 예전엔 양예원 사건이랄지 이런 정말 말도 안 되는 사건 역시 유죄가 나오지 않았나. 지금 판결을 받았다면 그렇게까지 허무맹랑한 판결은 안 나올 것 같다. 과거보단 많은 사람이 성범죄 무고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러한 문제 인식에 함께하고 있다. 물론, 지금도 억울한 사람은 너무 많고 그들의 아픔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다.
Q. 센터의 전략은 형사상 무고죄로 고소하기보다는 민사상 손해배상을 거는 식으로 접근한다고 들었다.
무고죄로 고소한 뒤 이를 입증하기 위한 자료를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잘 내어주지 않는다. 입증에 가장 필수적인 자료들인데. 민사 손해배상으로 진행을 하면, 손해배상 피해를 증명하기 위해 형사 사건 재판부에 문서송부촉탁 신청을 한다. 그러면 자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런 식으로 무고 용의자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한 후에, 민사 손해배상과 더불어 형사상 무고죄로 고소를 함께 진행한다. 이를 통해 허위로 고소한 자들과 시시비비, 피해 책임 등을 따지고 묻는 노력을 진행 중이다.
Q. 우리나라의 현재 인식은 여성의 무고 혐의에 관대하되, 남성의 누명은 상당히 가볍게 여기는 풍토 같다. 센터에서 짐작하기론,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아무래도 성범죄라는 특수성을 주목한다. 워낙 사적이고, 예민하며 물리적 피해와 더불어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정신적인 피해를 수반한다. 실질적 입증은 지난하고, 목격자 같은 제삼자가 개입하기도 어렵다. 상호 간의 진실게임을 벌이는 경우도 많고. 이런 특성상 예전에는 성범죄 피해를 받았음에도 범행자가 처벌을 못 받는 경우가 많았다.
성범죄 특수성 탓에 정교하고 세밀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는 모였으나, 그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생각한다. 실제, 예전과 달리 현재는 국가기관, 수사기관에서 성범죄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안이 있다. 대표적인 성범죄 피해지원 기관인 해바라기센터 같은 경우 언론에는 성범죄 증거 확보의 어려움을 토로하지만 진단 키트나 의료적인 수단으로 성범죄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노하우와 역량이 된다.
CCTV나 블랙박스 등 영상 장치를 많이 설치하고 이용해 명확한 증거를 찾는 방향으로 성범죄 수사가 진행되고 발전됐어야 하는데, 그저 성범죄는 무조건 처벌해야 한다는 국민정서 혹은 법 감정에 많이 휘둘리는 방향으로 수사와 재판이 이어져 온 듯하다. 제대로 된 증거 없어도,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상대를 처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때는 일관된 진술에 따라 상대를 처벌하는 경향이 있는가 하면, 요즘에는 일관되지 않은 진술이라도 수사기관과 재판부에서 이를 신빙하고 증거능력으로 인정해준다. 피해자가 거짓을 말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유죄를 줘야 한다는 식의 판례들이 하나둘 쌓이기 시작하고, 성인지감수성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개념이 우리나라 사법에 등장하면서 재판에 영향을 주기 시작함으로써 제대로 된 증거주의 재판, 무죄추정의 원칙, 검사의 입증책임 같은 오래된 형사법의 원론들이 흔들렸다.
또한 무죄를 입증하지 못하면 당신은 유죄야 하는 식의 재판들의 판례가 쌓인다. 재판 경향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다 보니 재판부나 수사기관은 여성단체들의 거센 반응을 거스르면서까지 진실을 밝히는 노력을 안일하게 했던 것 같다. 정말 확실하게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개 유죄를 주는 현실이 도래했다.
Q. 한국에서 연애 혹은 사랑, 또는 유희의 감정을 갖는다는 게 두렵고, 뭔가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것만 같다.
동의한다. 슬픈 일이다.
Q. 끝으로 한마디 한다면.
두 번 세 번 강조하지만 고소, 고발을 당하면 사건 초기부터 성범죄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센터 혹은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요청하라. 그리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녹취는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는 점 이 두 가지는 기억했으면 좋겠다.
동석한 센터의 한 직원은 “성범죄 사건에서는 절대 수사 기관을 신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경찰 수사관계자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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