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솔로’가 흥하면서 관련 콘텐츠들이 많이 생겼다. 누군가는 방송에 나온 이들의 모습을 연애 교보재로 삼기도 하고, 누군가는 이들의 심층적 심리를 파헤치기도 하고, 누군가는 방송 뒷이야기를 다룬다. 필자는 이중 무엇도 아니다. 연애 전문가도 아니고, 심리 전문가도 아니다. ‘나는 솔로’의 애청자이긴 하지만 뒷이야기까지 알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나는 출연자다. 솔로 나라에 가봤다. 첫 인상 투표에 0표도 받아 봤고, 데이트도 나가 봤고, 최종 선택도 해봤다. 그래서 안다. 솔로 나라라는 공간은 어떤 곳인지, 어떤 사람들이 이 곳에 오는지, 여기에서 사람들은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되는지를 안다. 연애나 심리, 출연진의 비하인드는 잘 모르지만 필자는 솔로 나라를 안다. 그래서 써보려 한다. 연애나 심리 전문가가 아닌 솔로 나라를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나는 솔로’ 12기 영수는 39세의 수학 선생님이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했고, 멘사에 소속되어 있으며 취미는 마작과 홀덤, 방탈출 게임이다. 이러한 키워드들을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논리다. 수학은 논리를 다루는 학문이며, 방탈출 게임은 방에 숨겨진 규칙을 발견해서 그 규칙에 의거해 문제를 풀고 방에서 탈출하는 게임이다. 그가 이런 분야에 재능이 있는 이유는 서울대학교에 들어가고, 멘사에 가입할 만큼 머리가 좋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걸맞게 그는 ‘나는 솔로’에서도 논리적, 과학적 사고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과학적 사고란 무엇인가. 인과관계를 밝혀내는 것이다. 왜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지, 왜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지, 새는 하늘을 날 수 있는데 왜 사람은 못 나는지를 연구하는 게 과학이다.
그리고 과학적 사고를 하려면 통제된 환경이 필요하다. 독립변수와 종속변수 외에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한다. 가령 인스턴트 식품이 대사증후군(성인병) 발병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밝혀내려면 A집단에게는 인스턴트 식품을 먹이고, B집단에는 먹이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 밖에 모든 변수는 통제해야 한다. 운동 시간도 동일하게 주고, 잠도 똑같이 재워야 한다. 실험을 하기 전 성인병 발병률도 동일해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인스턴트 식품을 먹은 A집단의 성인병 발병률이 높게 나오더라도 인스턴트 식품을 먹어서 그런 건지, 운동을 적게 하거나 잠을 덜 자서 그런 건지를 알 수가 없다.
12기 영수라는 남자는 일상적인 문제들을 다룰 때도 이런 과학적 사고 방식으로 접근한다. 첫 데이트에서 그는 영숙을 택했고, 또 다른 남자 출연자 영식도 그녀를 택해서 영수는 2 대 1 데이트를 하게 된다. 여기에서 영수는 영숙과 영식에게 어차피 자기는 영숙과 잘될 일이 없을테니 둘이 재밌는 시간을 보내라고 한다. 영숙과 영식이 의아해하자 영수는 영숙이 자기 소개를 할 때 이미 정답이 다 나왔다고 한다. 영숙은 네 살 차이까지 생각하고 있는데 자기는 영숙보다 여덟 살이 많고, 배울 점이 있는 남자를 찾는다고 했는데 자기는 배울 점이 없으며, 첫 데이트에서 영숙은 자기가 아닌 영식을 택했기 때문에 자기에겐 이미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게 과학실험이라면 영수의 말은 맞다. 만약 이 프로그램이 나이 차이라는 변수와 영숙의 마음이라는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실험이라면 나이 이외의 다른 변수들은 통제해야 한다. 외모도 똑같고, 성격도 똑같고, 직업도 똑같은, 나이만 다른 두 남자를 섭외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당연히 영숙은 둘 중 나이가 어린 남자를 택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실험실이 아니다. 나이라는 변수 외에도 수많은 변수들이 작용한다. 영수와 영식은 나이만 다른 게 아니다. 외모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다. 그 밖에 모든 것들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라는 변수는 절대적이지 않다. 영수는 나이가 많다는 점에서는 영숙과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외모나 성격 등이 잘 맞는다면 나이가 많더라도 충분히 선택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영수는 이러한 변수들로 인해 실험의 결과가 왜곡되는 걸 허용하지 않는다. 그는 과학자이기 때문이다.
후에 또 다른 여자 출연자 옥순과의 데이트에서도 그는 특유의 과학적 사고를 보여준다. 영숙과의 데이트 이후 멘붕에 빠져있던 영수에게 옥순이 다가오고, 둘은 데이트를 나가게 된다. 그리고 시종일관 부끄러워하는 모습만 보이던 영수는 옥순 앞에서 뜻밖의 반전 유머 감각을 보여준다. 옥순은 데이트하는 내내 빵빵 터지며 즐거워했고,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도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있었다고 한다.
영수도 숙소로 돌아와 제작진과 인터뷰를 한다. 오늘 데이트 어땠냐는 질문에 영수는 즐거웠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은 여기서 끝날 것이다. 즐거웠으니까 다음에도 옥순을 택하겠다고 할 것이다. 그 즐거움에 영향을 미친 요인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딱히 알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과학적인 사고를 하는 영수는 다르다. 옥순과 함께해서 즐거웠던 건지, 그냥 여성과 데이트를 해서 좋았던 건지를 확신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즐거움이라는 결과를 얻었다는 것에 만족하는 게 아니라, 이 결과를 이끌어낸 원인이 옥순인지 아니면 그 밖에 다른 변수인지를 규명해내려 하는 것이다. 마치 모든 조건이 통제된 실험실에서 독립 변인과 종속 변인 간의 연관성을 밝혀내려 하는 과학자처럼.
그가 모태 솔로인 이유는 그것이다. 연애 따위를 하기에 그는 너무 머리가 좋다. 원래 사람의 마음은 논리적이지 않다. 나이 많은 남자는 절대 싫다고 하던 여자가 나이 많은 남자에게 빠지기도 하고, 가정적이고 헌신적이고 건실한 남자를 두고 폭력적이고 나태하고 바람끼 있는 남자를 택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내 마음도 모른다. 내가 이 사람 때문에 행복한 건지, 아니면 0표를 받지 않았다는 안도감 때문에 행복한 건지를 모른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럼에도 연애를 한다. 그건 그들이 영수보다 머리가 좋아서, 이 문제를 풀 수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영수만큼 머리가 좋지 않아서, 순간의 강렬한 욕망에 논리적 사고회로가 정지해 버려서, 이 상황이 비논리적이라는 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해서 아예 문제를 풀지조차 않아 버리는 것이다. 그가 연애를 못한다는 건 역설적이게도 그가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어떤 면에서는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이런 성향은 때로 상대방을 향한 배려로 나타나기도 한다. 데이트 이후 옥순에게 호감을 표하는 장면에서 그는 연신 “제 입장에서”라는 말을 강조한다. 옥순의 입장에서는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는 그의 뛰어난 과학적 사고력으로 명확히 이해한 것에 대해서만 행동하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다고 해도, 옥순이 취할 수 있는 모든 행동과 말의 알고리즘을 그려서 가상 시뮬레이션을 돌린다고 해도 옥순의 마음을 알 수는 없다. 사람의 마음이란 건 원래 그렇다. 그는 그걸 안다. 그래서 “제 입장에서”라고 말한다. 내 마음이라는 문제는 풀었지만 네 마음이라는 문제를 풀지는 못했기 때문에, 내가 내린 답은 절반의 정답일 뿐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고집 부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당신이 조금이라도 불편한 기색을 보인다면 내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고 물러나겠다는 뜻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라면 상대방의 의중을 고려하지 않은 성적 접근, 이른바 고백 공격 같은 걸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연애는 배려만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남자라면 더욱 그렇다. 남자는 여자에게 다가가야 하는 입장이다. 가만히 있는 남자에게 여자가 다가오는 건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일이다. 그러니 남자는 실패를 감수해야 한다. 내가 망신을 당하고 상처를 받을 가능성뿐 아니라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고, 부담스럽게 할 가능성조차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너무 머리가 좋다. 자기가 이 문제를 풀지 못할 거라는 걸 알 정도로 좋다. 그래서 그는 오답을 내느니 답안지를 제출하지 않기를 택하게 된다. 그가 모태솔로인 이유는 그것이다. 지금보다 머리가 나빴더라면 오히려 연애를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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