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세 나이에 과거시험 대과에 급제해 조정을 뒤흔든 조선의 개혁가 조광조와 40대에 법무부 장관과 여당 대표로 초고속 승진하며 정치의 중심에 선 한동훈. 시대는 다르지만, 두 사람의 몰락 과정은 어딘가 닮아 있다.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정권에서 밀려난 뒤 강제 유배(37세 사사)되었듯, 한동훈 역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태를 계기로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명분을 앞세운 급진적 개혁이었고, 차이점은 이를 뒷받침할 정치적 기반의 부족이었다.
소년등과일불행, 빛나는 출발과 빠른 몰락
조광조는 젊은 나이에 사림파의 리더로 떠오르며, 유교적 이상을 현실 정치에 구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빠르고 급진적인 개혁(성리학 유토피아 건설)은 기존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불렀다. 그가 추진했던 현량과(賢良科)는 기존의 음서제를 무너뜨리고 능력 중심의 인재 등용을 지향했으나, 이는 왕실과 기득권 세력을 위협했다.
한동훈 역시 비슷한 길을 걸었다. 법조인 출신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주목받으며 법무부 장관으로서 개혁적 행보를 보였다. 그는 재임 시 △국가 과오 인정 및 배상 △인혁당·제주 4·3 사건 피해자 구제 △검찰의 범죄 대응 능력 강화 △법무행정 선진화 △형사·민사 분야 법제 개선 △출입국 이민정책 개선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며 법치와 인권 중심의 개혁을 표방했다.
기존 정치 문법과 거리를 두며 신선한 이미지로 국민적 지지를 얻은 그는 국민의힘 당대표에 선출되며 보수 세대교체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당내 기반 없이 윤석열 대통령과의 특수 관계에 의존한 정치적 성공은, 계엄과 탄핵이라는 위기 속에서 더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명분과 현실, 개혁의 역설
조광조와 한동훈은 모두 명분을 중시했다. 조광조는 성리학적 이상을, 한동훈은 헌법과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내세웠다. 그러나 둘의 명분은 현실과 충돌했고, 기존의 정치적 동맹들에게도 배신으로 비쳤다.
조광조는 훈구 세력의 기득권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대립각을 세웠고, 이는 기묘사화를 촉발했다. 한동훈 역시 대통령 계엄 선포에 반대하며 탄핵 찬성을 주도, ‘헌법 수호’라는 대의를 내세웠지만, 이는 당내 지지층과 친윤계 의원들에게 등을 돌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두 사람 모두 명분의 정당성을 강조했지만, 그 명분을 지킬 수 있는 정치적 연합체의 형성에는 실패했다. 조광조가 성리학적 개혁의 이상을 이루기엔 조선이라는 체제가 지나치게 경직돼 있었던 것처럼, 한동훈도 대통령 탄핵이라는 폭풍 속에서 국민의힘이라는 조직의 결속력을 유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몰락의 가속화, 내부 반발과 정치적 고립
조광조가 몰락했던 이유 중 하나는 지나치게 급진적인 태도(성리학 근본주의)와 그로 인한 내부 반발이었다. 그는 유교적 이상을 위해 민생 정책부터 기득권 세력의 특권 철폐까지 광범위한 개혁을 단기간에 시도했지만, 이는 왕과 동료 신료들에게 위협으로 인식됐다.
한동훈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상정된 상황에서 그는 대통령을 방어하지 않고 탄핵에 찬성하며, 국민의힘 내 전통적 지지층과 친윤계 의원들에게 정치적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지도부가 붕괴되고 계파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그는 더 이상 당을 통합할 수 없는 고립된 리더로 전락했다.
역사의 반복, 그러나 결과는 다를 수 있다
조광조의 몰락 이후에도 그의 이상은 사림파의 정신적 유산으로 남아, 조선의 정치 지형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 한동훈 역시 몰락했지만, 그가 내세운 헌법과 민주주의 수호라는 명분은 보수 정치의 새로운 방향성을 고민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명분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조광조가 몰락의 길을 걸었던 이유는 명분을 현실 정치와 조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한동훈이 이와 같은 길을 벗어나기 위해선,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확장하고, 내부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치력을 갖춰야 한다.
조광조와 한동훈은 명분을 내세운 이상주의자였다. 그러나 정치적 생존은 명분 이상의 현실적 협력과 기반이 필요하다. 조광조가 기묘사화 이후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한동훈도 탄핵이라는 정국 속에서 정치적 생명이 끝날지, 아니면 새로운 출발을 준비할지는 그의 손에 달려 있다.
역사는 반복되지만, 그 결과는 다를 수 있다. 한동훈이 조광조와 다른 결말을 쓸 수 있을지, 이제는 그의 정치적 선택과 의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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