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디컬 페미니즘의 혐오 전략, 왜 실패했는가 1

래디컬 페미니즘의 온라인 괴롭힘과 언어폭력 문제를 수집하는 네티즌들의 자발적 모임 ‘성갈등해결연구회’에 박가분 작가가 투고한 원고를 본지에 공개했다. 이에 해당 원고를 2회에 걸쳐 나눠서 실을 예정이다. 편집자주

성주류화 전략, 그 이후

1995년에 열린 북경 여성회의에서 ‘북경행동강령’이라는 문건이 채택됐다. 이것은 오늘날 주류 여성단체와 여성운동의 사고 및 행동방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는 문서다.

해당 회의에서 이른바 ‘성주류화(Gender-Mainstreaming) 노선’이 여성운동의 공식적인 운동 전략으로 채택됐다. 성주류화 전략이란 정부의 정책수립 단계에서부터 (여성주의의 관점에서 정의된) 성평등 이념을 반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의 채택은 여성운동이 본격적으로 제도권에 진출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성주류화 전략은 한국에도 90년대 후반부터 정부 정책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해, ‘성인지예산제도’, ‘성인지통계 발간’, ‘성인지 교육 프로그램’ 등의 정책이 시행됐다. 또한 이는 여성가족부 설립으로 이어졌다. 더 나아가 성주류화 전략은 자문·교육‧연구 등 각종 명목으로 여성계에 예산을 할당하는 근거가 됐다는 점에서, 단순한 운동의 실천지침을 넘어서 운동 자체를 재생산하는 물적 토대가 됐다.

정부 내에 사회운동의 영향력과 지분을 늘려가는 데에는 명백한 장점들이 있다. 그럼에도 이 정책은 이후 여성운동 내부에서도 여러 가지 딜레마를 낳았다. 대표적인 게 여성운동의 관료화, 관성화 등이다. 성주류화 전략을 통해 여성운동이 관료사회와 주류 제도권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는 역으로 대중으로부터 고립되는 결과를 낳았다.

Buenos Aires, Argentina. September 17, 2015. American philosopher and gender theorist Judith Butler gives a conference in the Blue Whale auditorium of Kirchner Cultural Center.

일부 대중의 눈에 여성단체는 속되게 말해 정부 예산에 ‘빨대나 꽂는’ 이익집단 중 하나로 비춰졌고, 여성 대중의 눈에도 여성운동은 자신의 삶과 별 관련이 없는 엘리트-관료들의 이슈로 비춰졌다. 그 외에 여성주의는 현대사상에 관심 있는 일부 대학(원)생 사이에서 주디스 버틀러(사진 위)나 뤼스 이리가레와 같은 관념적 이론의 형태로 소비됐다. 적어도 2000년대까지는 말이다.

진보진영 내에서도 여성운동 진영이 배출한 고위 관료들이 여성 노동자와 하층계급의 실정에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적대적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가령 여성운동계 출신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면담을 요구한 KTX 여성 해고노동자가 총리실 앞에서 전원 연행되자 이에 대한 비판이 봇물 터지듯 나왔다.

한편 대중성에 대한 이들의 고민을 단방에 해소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인터넷 하위문화의 형태로 자라나던 남녀 간의 성대결 양상이었다. 늦게 잡아도 2010년대까지 여성혐오 정서가 디시인사이드와 각종 뉴스포털에서 전면화됐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메갈리아’는 여성운동 진영의 눈에 하늘이 내린 절호의 기회처럼 보였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의 젊은 여성 이용자 사이에서 확산된 남성혐오 정서에 편승해서 다수의 젊은 여성을 여성운동 진영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한 것이다.

그 결과 한국여성재단을 비롯한 다수의 여성단체가 주관한 ‘2016년 여성대회’에서 메갈리아를 ‘3세대 여성주의 운동’이라고 공식적으로 ‘인준’하는 데 이르렀다. 또한 지난 5월에도 나윤경 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메갈만큼의 화력을 낸 세력이 이전엔 없었다는 거예요. 우리 모두 메갈에게 빚을 지고 있어요”라고 발언하며 메갈리아를 두둔한 바 있다.

이처럼 메갈리아=워마드 신드롬은 일부 래디컬 페미니즘의 일탈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류 여성운동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 이들의 담론적·이데올로기적 후원 아래 확대 재생산된 사건이다.

혜화역 5차 시위(출처 ‘불편한 용기’ 트위터)

젠더갈등에 편승해서 대중적 외연을 확장하겠다는 여성운동의 전략은 얼핏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절정기 혜화역 시위에 만명 단위의 참여, 서점가의 페미니즘 서적 흥행, 온라인 논쟁의 확산 등. 그러나 이는 곧 생각보다 빠른 시간 내에 한계에 부딪히고 더 심각한 딜레마를 낳았다.

여성 사이에서도 이탈자를 낳은 혐오 편승

여성을 단일한 혹은 동질적인 계급으로 간주하며 젠더혐오의 적대적 전선에 동참하게끔 하는 전략은 명백한 한계를 갖는다. 그것은 같은 성 혹은 젠더진영 내부에서도 이탈자와 균열지점을 낳기 때문이다. 올 연초에 발표된 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홍대 몰카 가해자 옹호 및 피해자 인권침해, 문재인 대통령 조롱 등으로 논란이 된) 지난해 여름 워마드 혜화역 시위를 거치며 20대 여성 중 페미니스트라고 응답한 비율은 48.9%(7월)에서 42.7%(11월)로 하락했다. 여성정책연구원은 이러한 유의미한 하락 추이를 애써 외면했지만, 이것이 함의하는 바는 분명하다. 래디컬 페미니즘 전략은 더 이상 확장성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임이론의 표현을 빌리면 젠더갈등 극대화 전략은 ‘제로섬 게임’을 넘어 ‘마이너스섬 게임’으로 치닫는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애초에 서로 다른 성(혹은 젠더)은 대립하는 계급이 아니기 때문이다. 혐오라는 전선으로 전면 대립하기에는 이들은 서로의 삶에 깊이 연루됐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것은 계급대립의 정치에서 ’사회이론적 정합성’이 아닌 ‘수사학적 측면’만을 차용하는 래디컬 페미니즘 운동의 근본적 한계와도 연결된다.

최근 시민단체 당당위(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의 이른바 ‘유죄 추정 규탄 시위’에 현장 조사차 다녀오면서 조금 놀란 일이 있었다. 잠시 부연 설명을 하자면, 당당위는 언론에 보도된 박진성 시인에 대한 성폭력 무고 사례와 이른바 ‘곰탕집 사건’의 경우처럼 다툼의 여지가 있는 성추행 사건 재판에서 법정구속이 이뤄진 재판 진행에 항의하는 네티즌들이 주축이 된 시민단체다.

2018년 11월 24일 당당위 2차 시위(출처: 당당위)

대부분 남성 일색일 줄로만 알았던 이들의 시위 현장에 자원봉사자는 물론이고 참여자 중에서 젊은 여성이 상당수 있었다는 점에 놀랐다. 필자의 인터뷰에 응한 당당위 여성 운영진은 “성폭력 무고가 가까운 사람에게 닥칠 수 있다”, “증거주의 원칙이 훼손되면 여성 또한 자의적 여론재판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대답했다.

그는 가까운 사례로 맘카페의 조리돌림 끝에 어린이집 교사가 자살한 사건을 언급했다. 성해연이라는 한 자발적 네티즌들의 모임에서도 래디컬 페미니스트로부터 각종 사이버 괴롭힘을 당한 여성들의 사연을 모집하게 됐다. 이처럼 혐오는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필자의 저작 <포비아 페미니즘> 집필 당시에 넷상의 자칭 페미니스트들의 온라인 조리돌림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들의 제보를 접하게 됐고 그중 일부를 본문에 담았다. 그중 가장 안타까운 사례는 워마드 유저에게 이른바 ‘아웃팅’ 피해를 입은 트랜스젠더 카페 이용자의 사례였다.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트랜스젠더를 여성 흉내를 내는 남성들로 여기고 혐오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혐오를 운동의 전략으로 승인한 이후 ‘약자의 명분 아래 약자를 공격하는 일’이 횡행한 것이다. 이는 여성운동의 대의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앞서 젠더는 하나의 계급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아닌데도 마치 실제로는 그렇다는 자기최면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집단적 폭력과 희생제의가 필요하다. 내부단합을 위해 주기적으로 내부 구성원 중의 변절자를 색출하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일부 다음 여초 카페나 트위터 페미니스트들의 사이버 괴롭힘을 들여다보면, 자신의 주장 일부에 주장하지 않는 여성을 ‘흉자(흉내+자X의 준말)’라고 몰아가며 괴롭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디시인사이드 트위터 마이너 갤러리(원래는 여성유저가 더 많은 갤러리였다)에서도 트위터에서 소위 ‘덕질’을 하다가 젠더문제에 대한 이견을 계기로 커뮤니티 내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는 여성 네티즌의 증언이 심심찮게 올라왔다.

물론 아직 젊은 여성 사이에서는 전반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옹호론이 우세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여성 사이에서도 혐오를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는 ‘래디컬 페미니즘(일명 랟펨)’에 대한 반감이 움트고 있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계속

경제학 석사. 프리랜서 작가. '그 페미니즘이 당신을 불행하게 하는 이유'(2019, 공저), '포비아 페미니즘'(2017), '혐오의 미러링'(2016),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2014), '일베의 사상'(2013) 출간. '2014년 변신하는 리바이어던과 감정의 정치'로 창작과 비평 사회인문평론상 수상과 2016년 일본 '겐론'지 번역. paxwoni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