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범죄 허위신고율은 0.5%?
최근 <오마이뉴스>가 ‘성폭력 범죄 허위신고율은 0.5%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기사(사진)를 썼다. 이 기사는 ‘미투 운동’에 편승해 널리 퍼졌고 ‘페미위키’에도 등재되는 등 일부 커뮤니티와 SNS에서 기정사실로 되는 분위기이다.
<오마이뉴스> 기사 내용을 보자.
대검찰청 통계를 보면, 성범죄 발생 건수(검거기준: 인용주)는 2012년에 2만3365건이었고, 2014년에는 2만9863건이었다. 이에 반해, 전국 법원이 판결을 내린 성범죄 관련 무고 사건은 2012년 122건, 2014년에는 148건이었다. 이 비율을 따져 보면, 2012년은 약 0.52%, 2014년은 약 0.49%라는 계산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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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이 ‘성범죄 허위신고율은 0.5%’라는 가짜뉴스의 진앙지다. 그러나 이는 고의로 ‘분자를 최대한 줄여 잡고 분모를 최대한 늘려 잡는’ 전형적인 통계 사기다.
통계 속임수를 해부하자
우선 2012년과 2014년에 각각 122건과 148건 성범죄 관련 무고죄 법원 판결이 있었다는 정보의 신뢰성이 부족하다. 이에 관한 기사는 많지만 신뢰할만한 통계의 출처는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가령 2015년 6월 28일자의 <서울경제>는 이 수치들을 “법원에 등록된 판결문을 조사한 결과”라고 전하지만 조사의 주체가 누구인지, 조사의 모집단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한편 우리나라에 공식적으로 무고죄를 유형별로 분류한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JTBC> 역시 올해 2월 28일자 방송에서 “시스템상으로 범죄별로 무고죄를 분류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럼에도 혹시 기사를 제외한 관련 통계의 정확한 출처를 아는 분께서는 알려주시기 바란다.
그리고 설사 ‘성범죄 관련 무고죄 법원판결 통계’가 옳다 하더라도 성폭력 범죄 허위신고율은 0.5%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누락된 변수가 너무 많은 데다가 애초에 검찰에 접수된 성범죄 신고 건수 전체를 분모로 놓았다는 점도 문제다.
우선 ‘대검찰청 성범죄 통계’를 보자. 2014년의 경우 검찰청 기준 성범죄 혐의를 받은 인원은 2만3649명이었다. 하지만 이들 중에서 실제 검찰에 기소된 인원은 일부(1만1855명)이다. 나머지 상당수 인원은 불기소 처분을 받았을 것이다. 물론 검찰의 불기소 처분으로 끝난 성범죄 신고가 전부 무고라고 볼 수 없다. 증거 부족이거나 수사기관의 수사·처벌 의지 부족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성범죄 무고로 의심되는 사건 상당수 또한 바로 이 불기소 처분된 사건에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지난 2월 2심 재판에서 배우 이진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거짓 고소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여성도 이러한 케이스에 해당한다. 물론 모든 성범죄 무혐의처분이 무고죄 기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성범죄 허위신고 역시 성범죄만큼이나 입증이 어려우며 암수범죄가 잠복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억울하게 신고당한 후 무혐의 처분을 받더라도 상대의 무고 동기를 입증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다. 실제로 지난해 성폭행 주장에 관해 무혐의 처분이 나온 박유천의 상대 폭로여성 또한 무고죄로 기소됐다가 증거 부족으로 무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물론 이 경우 진실이 무엇인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이뿐만이 아니다. 결정적으로 <오마이뉴스>의 계산방식에는 무고죄로 구약식 벌금형을 받거나 기소유예를 받은 경우가 아예 누락됐다. 참고로 무고죄 전체를 볼 때 2016년 기준 무고죄 기소건(인원기준) 중 48%가 구약식 기소이다(대검찰청, <2017 범죄분석>). 소년보호송치로 넘어간 경우도 무시할 수 없다. 이 경우는 <오마이뉴스>가 언급한 (애초에 출처를 신뢰하기 어려운) 법원 판결 통계에 집계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구약식: ‘약식명령청구’라는 말을 줄인 것으로 가해자를 정식적인 재판절차(공판절차)를 거치지 아니하고 검사가 제출한 자료만을 토대로 벌금형 이하의 형에 처해 달라는 약식명령을 법원에 대해 청구
종합하자면 기소 여부 무관 검찰에 접수된 모든 유형의 성범죄를 망라한 건수를 분모의 값으로 늘려 잡는 가운데 법원에서 무고 판결을 받은 사건만을 오직 실제 성범죄 허위신고로 간주하는 왜곡된 가정이 <오마이뉴스>가 저지른 통계 사기의 핵심이다.
게다가 사법기관에 드러나지 않은 ‘성범죄 무고 암수범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가정을 따른다면 ‘성범죄에 관한 암수범죄’의 가능성 역시 무시해야 옳다. 한 마디로 자승자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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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실제 성범죄 허위신고 비율은 얼마나 될까. 결론은 이에 대한 ‘신뢰할만한 통계적 추정치는 존재하지 않는다’이다. 앞서 보았듯 무고 자체를 범죄별로 분류한 신뢰할만한 통계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데다가 성범죄와 무고 양쪽 모두 암수범죄의 가능성이 잠복하고 있어 각자의 심증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럼에도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일부 진영에서는 일상 속의 성범죄 신고나 고발 중 무고의 가능성을 무시해도 좋다는 주장의 일환으로 ‘성범죄 신고의 0.5%만이 허위신고’라는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있다. 하지만 이는 대단히 위험한 주장이다.
무고죄 자체의 기소 건수(인원기준)도 지난 3년간 증가하는 추세(2014년 1732건→2016년 1857건)일 뿐만 아니라 성범죄의 기소율도 최근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의 경우 성범죄 기소율은 약 50%(인원기준)였지만 2016년의 경우 42%로 크게 하락했다.
물론 필자는 이것을 ‘꽃뱀’이 늘었다는 증거보다는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 향상의 결과 신고가 더 활발해졌다’는 긍정적인 증거로 해석하고 싶다. 그럼에도 이러한 불기소된 성범죄 중 무시할 수 없는 비율이 허위신고일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통계놀음을 이용한 얄팍한 속임수로 무시하기에는 성범죄 무고의 결과가 너무 위중하다. 지난해 자살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고 송경진 교사의 경우에도 동료 교사가 부추긴 일부 학생의 거짓말 때문에 성추행 누명을 썼다. 피해주장 학생들의 진술번복으로 수사기관이 혐의없음 수사종결을 했음에도 전북교육청 인권센터가 무리하게 교사에 대한 징계를 추진하다가 벌어진 참극이다.
이러한 비극이 일어난 근본적인 배경은 성범죄 무고 가능성을 처음부터 배제한 인권센터의 안일한 대응방식 때문이었다. 또한, 이것은 수사기관과 사법제도의 영역 바깥(인권센터)에서조차 성폭력 허위신고가 피해자에게 어떤 치명적 결과를 일으키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정작 여성 대상의 성범죄에 진지하게 접근하는 전문가들은 무고와 거짓말의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일례로 미국의 법학자이자 변호사로서 여성 대상 범죄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조디 래피얼은 <강간은 강간이다>(항아리, 2016년)에서 모 아니면 도 방식의 논쟁을 넘어야 한다고 말한다. ‘신고의 절반이 허위’라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지만, 또한 거짓말을 하는 여성은 아무도 없다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여러 연구성과를 검토하며 미국에서 강간에 대한 허위신고율이 2~8%라는 추정치를 내놓는다. 그러나 이마저도 절대적이지 않다. 그래서 조디 래피얼은 성범죄 사건을 수사할 때 사건별로 보다 세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요사이 벌어지는 일부 유명인 대상 미투 논란에서도 시사적인 대목이다.
경제학 박사. 프리랜서 작가. '그 페미니즘이 당신을 불행하게 하는 이유'(2019, 공저), '포비아 페미니즘'(2017), '혐오의 미러링'(2016),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2014), '일베의 사상'(2013) 출간. '2014년 변신하는 리바이어던과 감정의 정치'로 창작과 비평 사회인문평론상 수상과 2016년 일본 '겐론'지 번역.
박가분
paxwon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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