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살당한 학부모와 학생들의 탄원
성폭력 사건을 조사하고 처리할 때 흔히 제기되는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원칙이 있다. 이때에도 피해를 호소하는 당사자의 주장을 경청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원칙조차도 지키지 않은 것으로 인터뷰 상에서 드러났다.
학교장, 학생부장 교사, 부안교육지원청, 전북교육청 학생교육인권센터 모두 송 교사 사건에서 ‘학생’을 시종일관 교사와의 신체접촉(?)에 의한 피해자로 규정했다. 그러나 그것은 실은 관료주의와 실적주의에 찌든 ‘어른’들 일방의 규정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실제로 처음에 송 교사를 오해해서 거짓말을 한 여학생은 사건 극초반부터 송 교사에 대한 진술을 철회하고 송 교사에게 카톡으로 정식으로 사과글을 보내왔다. 또한 그의 학부모는 교육감에 탄원서를 쓰는 데 직접 동참하기도 했다. 처음에 여학생의 말만 듣고 송 교사를 오해한 다른 학부모들까지 탄원에 나섰다. 송 교사의 사람됨됨이를 알고 있던 다른 재학생, 졸업생, 학부모도 구명에 나섰다.
학생들의 1·2차(2차 탄원서는 그나마 제출도 못했다) 탄원서 면면을 보면 “힘내라고 학생들의 어깨를 두드리고, 어깨를 두드리는 게 싫으면 싫다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등 학생교육인권센터 등이 문제시한 평소 학생과 이루어진 ‘신체접촉’에는 폭력이나 성적인 뉘앙스가 없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가장 심각한 일이라 해봐야 다리는 떠는 학생의 무릎을 건드리거나, 수학문제를 못 푼 아이들에게 ‘마사지’라며 발바닥을 교편으로 툭툭 치는 것이 전부였다(이 부분은 이하에도 서술될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학생들이 폭력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상호 약속에 의한 애정 어린 장난으로 인식했다는 진술이 나타난다.
이러한 탄원서는 실제로 반영되지 않았고, 그 중 2차로 모집한 탄원서는 (이후 보겠지만) 아예 접수하지도 못했다. 이 중 2차탄원서는 최초 피해를 주장했던 여학생의 학부모 주도로 모집된 것이었다.
송 교사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전북교육청과 학생교육인권센터는 사건 이후에도 끝까지 학생들을 자신들에 대한 비난의 ‘방패막이’로 삼았다. 송 교사의 사망 직후인 지난해 8월 18일 전북교육청과 학생인권교육센터가 자청한 기자회견 와중에 ‘학생들을 비난하는 여론 때문에 피해가 우려된다’며 자제를 당부하는 발언이 나왔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평소에 교육 수요자와 학생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이러한 사태까지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끝까지 학생들과 학부모의 탄원을 묵살했던 것일까. 송 교사의 구제를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 강씨는 교육청 관계자와의 실랑이 끝에 황당한 말을 들었다고 한다.
제가 탄원서를 들이밀면 교육청에서 뭐라고 하는지 압니까? 그런 탄원서는 ‘어른들에 의해서 오염되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남편을 성추행 교사로 몰고 간 학생부장 선생도 남편에게 전화통화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탄원서를 강요했냐고 비난했습니다. 자기들은 그렇게 본다는 거지요.
그런데 그렇게 판단할 근거가 없는데도 그러는 것입니다. 사고방식이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성추행이라고 처음부터 단정을 내려놓고 그렇게 몰고 간 것입니다. 그거야말로 오염된 사고방식 아닙니까?
이러한 반응에 대해 분통이 터졌던 것은 정작 학생과 학부모 자신이었다.
처음 송 교사에 대해 오해한 학생 아버지가 그 소리를 듣더니 ‘미친X들! 누가 자기 딸을 성추행한 나쁜 선생을 위해서 탄원서를 쓰고 애들더러 탄원서를 쓰라고 강요하냐’고 반문하더라고요. ‘우리를 뭘로 보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성폭력 사건에서는 피해자에게 위력을 행사해서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하지만 송 교사의 사건에서 그러한 정황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여러 학생과 학부모들이 동조해서 송 교사를 위해 탄원을 하게 된 경위를 깊이 들여다보았다면 판단을 달리할 계기는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故 송경진 교사의 사건 일지
-3월 22일 염규홍 인권옹호관 부임
-4월 19일 송 교사 최초 무고
-4월 20일 전북학생교육인권센터, 현지 기초 조사(강씨 주장: 학생조사는 하지 않음)
-4월 21일 전북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과 현지조사. 내사종결. 부안교육지원청에 유선통보
-4월 24일 부안교육지원청에서 송 교사 직위해제 결정. 통보
-5월 2일 학생교육인권센터에서 송 교사 1차 조사(주무관, 구제팀장 동석). 이날 경찰(여성청소년과)로부터 내사종결 공문 통보 받음
-5월 10일 전북교육감에 학생들 및 학부모 등의 1차 탄원서 제출. 전북학생교육인권센터 수령
-5월 12일 학생교육인권센터에서 송 교사 2차 조사
-5월 11일 송 교사,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직위해제 처분 취소’ 청구
-7월 3일 전북학생인권심의위원회 개최
-7월 18일 전북학생인권심의위원회 결정문 수령(부적절 신체접촉으로 인한 인권침해로 판단)
-7월 21일 강씨 주도로 졸업생 탄원서 모집
-7월 22일 최초 피해주장 학생 학부모 주도로 2차 탄원서(학부모, 재학생, 관련 학생) 모집
-7월 25일 송 교사 직위해제 종료(강씨 주장: 40일 휴가, 타교전보조치동의서 강제작성)
-8월 4일 전북교육청 감사담당관 8월 10일로 감사 날짜 통보
-8월 5일 송 교사 사망
출처 : 8월 18일 전라북도교육청 보도자료와 강하정 증언 재구성
비공식적 사법기구로 군림한 이들
강씨의 이야기를 들으면 송 교사를 살릴 수 있는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도가 제대로 작동했더라면, 누군가 한 명이라도 사태에 대해 주의를 기울였다면, 특히 학부모와 학생들의 발언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있었다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미 사건의 성격과 결론은 인권센터장을 위시한 교육공무원들의 ‘머릿속’에서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지역 교육공무원 사회의 독단적이고 편의주의적 행정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인권센터와 연계된 ‘전라북도학생인권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원회)’에서 사건을 심의한 방식이었다. 이들 심의위원회는 지난해 7월 3일자로 송 교사의 사건을 심의했고 결국 곧바로 송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들의 의견을 묵살한 채 일방적으로 사건에 대해 ‘부적절한 신체접촉 등으로 인한 인권침해’라는 규정을 내리고 말았다. 심의위원회의 결정은 이후 고인에게 예정되어 있던 교육청 감사에도 불리한 영향을 미치는 등 송 교사의 낙심과 죽음에 상당한 계기를 제공했다. 강하정씨의 증언이다.
남편에 대한 전북 교육청 감사 날짜가 8월 10일로 정해졌다는 연락을 8월 4일 날 받았는데 심의결정을 한 이때 교육감이 이 심의위원회 결정문을 보고 사실상 징계를 하라는 방침을 굳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때 심의위원들이 이 사안을 심의할 자격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이들은 송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를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사건’으로 규정하면서 송 교사를 죄인으로 취급하는 등 사실상의 사법적인 판단을 제공했다. 그런데 심의위원회는 어디까지나 전북 학생인권조례에 의해 “전라북도교육청의 정책 수립과 평가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즉 정책을 심의하는 기구이지 개인에 대한 상벌이나 평가를 논하는 것이 주된 목적은 아닌 것이다. 조례에 따르면 구체적인 심의사항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규정되어 있다.
⑤ 심의위원회는 다음 각 호의 사항에 관하여 심의한다.
1. 학생인권실천계획의 수립
2. 학생의 인권에 관한 제도개선
3. 인권옹호관의 직무와 관련하여 제도 개선 권고 등 중요한 사항
4. 기타 학생의 인권 신장을 위하여 교육감 또는 인권옹호관이 제안한 사항
⑥ 심의위원회의 효율적인 활동을 위하여 소위원회를 둘 수 있으며, 심의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제5항 각 호의 기능 중 일부를 소위원회에 위임할 수 있다.
비록 ‘기타 인권옹호관이 제안한 사항’과 같은 어느 정도 재량을 허용하고 있으나 학생인권을 보장하는 ‘제도에 대한 개선’이 주된 심의대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인권심의위원회는 공식적인 사법기구인 경찰의 내사종결 처분은 물론이고 당사자의 탄원마저 무시한 채 교사의 머리 위에서 사법기관처럼 군림했던 것이다.
실제로 경찰이 지난해 4월 21일 학생들을 조사한 끝에 ‘송 교사와 학생 간 가벼운 신체접촉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성추행과 폭력행위는 없었다’는 결론을 내리며 내사종결 처분을 내렸지만 일선 교육기관에서 이러한 사정은 전혀 참작되지 않았다.
나아가 강씨는 이때의 결정 또한 인권옹호관의 독단적 의중으로 결정되고 심의위원은 이에 대한 사실상의 거수기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애초에 사건을 처리할 의지와 식견이 의심되는 인적구성이었다는 것이다.
심의위원이라 해봐야 평소 농사짓는 사람, 학생, 주민, 도의원, 법대 교수, 교사 등이었는데 정작 송 교사 사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인권옹호관의 일방적인 보고만 보고 사실상의 거수기 역할만 했던 것입니다.
정작 제대로 된 사법기구라면 이들처럼 사건을 부실하게 파악하지 않았을 것이다. 교육청은 기자회견 보도자료를 통해 사건 초기인 지난해 4월 20일 전북교육청과 학생교육인권센터 등에서 나름대로 “현지 기초조사”를 했다고 발표했지만 강씨는 당시 실제로는 학생 대상의 조사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소리를 높였다.
처음에는 교육장이 직접 학교에 나가 조사를 하였다고 해명했으나 장례식장에 조문을 온 부안교육지원청 교육장과 교육지원과장 및 장학사들에게 남편의 형님이 직접 학교에 나가 조사했냐고 추궁하자 교육장이 학교에 가보지 않고 서류에 전결만 했다고 시인했습니다.
심지어 학생인권센터에서 사건 초기부터 학부모를 회유하려 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 학부모 어머니가 학생교육인권센터의 인권옹호관과 주무관 둘이서 학부모들을 찾아와 송 교사에 대한 불리한 증언을 하라고 종용을 했다고 저에게 전해왔습니다.
‘학부모들에게 학생이 인권침해를 당했는데 그냥 넘어가겠느냐, 송경진 교사를 벌해야 하지 않겠느냐, 애들이 불쌍하다’는 등의 소리를 했답니다. 학부모들은 오해해서 벌어진 사소한 일이고 벌써 오해가 다 풀리고 서로 사과하고 화해를 했는데 왜 일을 크게 만드냐면서 조사하지 말라고 항의했다고 하구요.
결국 문제의 본질은 학생교육인권센터가 ‘학생 인권의 파수꾼’ 역할을 넘어 아무도 요청하지도 맡기지도 않은 학생들의 ‘후견인 역할’은 물론이고 ‘판검사의 역할’까지 자임하려 했다는 데 있다.
고쳐지지 않은 제도의 허점과 반복된 비극
송 교사와 같은 억울한 케이스에 대한 선례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제도의 허점에 대한 근본적 반성이 없었던 것도 송 교사의 죽음에 일조했다. 당시 전북 교육청 학생교육인권센터장(이하 인권옹호관)인 염규홍은 잘 알려진 ‘서울시향 박현정 무고논란’에 연루된 당사자(서울시 인권보호관)였다.
당시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들은 2014년 말 서울시향 대표였던 박현정이 직원에게 폭언과 성희롱을 일삼았다는 폭로가 터져 나오자, 이를 기정사실화하며 박 대표를 징계할 것을 서울시장에게 권고했다. 하지만 경찰조사 결과 이는 박 대표에 대한 직원들의 조직적인 음해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박 대표는 “아무도 내게 묻지 않고 내 얘기는 아무도 듣지 않았다”며 시민인권옹호관의 조사 과정이 편파적이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문제가 됐던 시민인권옹호관 중 한 명이었던 염규홍씨는 공교롭게도 송 교사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건의 장본인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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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도 시민인권옹호관과 관련해 가해지목인에 대한 부실한 조사, 방어권을 보장하지 않은 채 성급하게 내린 결론, 실적을 위한 희생양 만들기 등으로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이와 관련해 강씨는 당시 전북 소재 학교에서 있었던 성폭력 폭로사건과 맞물려 남편 또한 인권센터의 무리한 실적 만들기의 희생양이 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부안여고 체육교사의 학생 성추행사건이 2017년 6월 즈음 터졌는데 경찰이 별 혐의가 없다고 하자 옹호관이 그 사건을 다루면서 성추행 등 죄명으로 형사고발을 해서 사건을 다루게 되었고 졸업생까지 성추행 폭로에 동참하며 큰 사건으로 부각되었습니다.
인권옹호관은 여기저기 인터뷰를 하면서 의기양양했지요. 그러면서 5월에 이미 조사를 마치고 아무런 조치도 없이 방치했던 남편 사건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려 이 지경을 만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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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화 성공에 고무된 인권옹호관이 부안여고 사건을 처리하면서 적용한 사건처리 도식을 그대로 송 교사에게 뒤집어 씌웠다는 것이다. 부안여고 성추행 사건은 당시 지방의 사립학교라는 ‘닫힌 사회’ 내에서 일어난 전형적인 권력형 성폭력 사건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사건과 송 교사의 사건 사이에는 둘 다 같은 남성 교사라는 유사성 외에는 별 다른 접점이 없었다.
그럼에도 송 교사는 일종의 ‘끼워 팔기’ 마케팅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것이다. 학생인권과 관련한 정책 및 제도 개선에 관해 전문성을 발휘해야 할 인권옹호관이 자신의 이슈 파이팅(사회운동) 수단으로 제도적 권한을 남용하며 특히 그 과정에서 송 교사를 희생양으로 삼지 않았는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
실제로 강씨는 지속적으로 학생교육인권센터의 권한남용 의혹을 제기했다. 예를 들어 학생교육인권센터가 송 교사에 대한 직위해제에 압력을 넣는 등 일선 교육공무원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했다는 것이다. 송 교사의 장례식장에서 있었던 후일담이다.
장례식장에 왔던 부안교육지원청 교육장과 교육과장이 전북교육청 학생교육인권센터와 교육청에서 시킨대로 (직위해제 등의 조치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옹호관의 구제신청에 의한 조사와 구제는 교육청과 무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학생인권조례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들(인권옹호관)은 조례를 무시하면서까지 사건 첫날부터 개입하여 학교와 교육지원청과 교육청 위에 군림하면서 남편을 죄인으로 만들려고 한 겁니다.
실제로 당시 이뤄진 여러 무리한 결정들에도 불구하고 동료 교사나 공무원 중에서 아무도 송 교사의 처우에 의문을 제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고인에 대한 인권센터의 조사과정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물론 인권센터장이자 인권옹호관이 교육청과 독립적으로 인권침해 의심사례에 대한 직권조사와 시정요구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조례에 명시되어 있긴 하다(전북 학생인권조례 제45조).
하지만 피해 주장 학생이 진술을 번복하고 당사자 학생의 학부모까지 구명에 나선 시점에서도 송 교사에 대한 제재를 추진한 것은 무리한 권한남용으로 보인다. 게다가 인권센터에서 송 교사를 조사한 시점은 지난해 5월 2일, 5월 12일인데 관련 공문을 보면 송 교사에 대한 직권조사 사건 접수일은 한참 후인 6월 12일로 나타난다. 조사의 절차적 정당성마저도 사후에 끼워 맞춘 것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애초 ‘무고’나 ‘억울함’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상정하지 않은 현장의 매뉴얼도 문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송 교사 사건의 가해자들은 시종일관 ‘매뉴얼’을 강조하며 책임을 면피했다. 이러한 일관된 발뺌 전략은 최근의 검찰의 무혐의 처분에 상당부분 유리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매뉴얼대로 했다’는 전형적인 관료주의적 책임 떠넘기기도 문제지만 매뉴얼의 현장적용 방식은 물론이고 매뉴얼 자체의 허점도 있었다. 강씨는 이번 사건에 대해 적용해야 할 매뉴얼에 대한 숙지가 현장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사건 초기 강씨에게 한 교육청 공무원이 건네준 건 완전히 엉뚱한 매뉴얼이었다.
(사건 초기) 교육청 등에서 자꾸 ‘매뉴얼대로 했다’고 해서 매뉴얼이 뭐냐고 하니까 처음에 준 게 ‘학생 간 성폭력 발생 시 사안 처리 절차’였습니다···.
나중에 강씨가 실제로 적용되었다고 전해들은 것은 교육청의 이른바 ‘아동성폭력 대응절차(여기서의 아동은 19세 미만 미성년자까지 포괄하는 법률용어)’였다. 그런데 해당 매뉴얼은 ‘아동성폭력 의심 사례’와 ‘아동성폭력 피해 사건’ 이 두 가지 정황을 구분하도록 되어 있었다.
‘아동성폭력 의심 사례’의 경우에는 우선 문의·상담을 거친 다음에 피해사실이 확정되면 ‘아동성폭력 피해 사건’의 절차(신고·지도감독→대응창구 일원화→지역연대)를 따르도록 되어 있었다.
강씨의 주장은 ‘의심 사례’에 불과한 송 교사에 대해서는 적절한 ‘문의·상담’ 절차를 따랐어야 했는데 이를 건너뛴 채 송 교사의 사건을 ‘아동성폭력 피해 사건’으로 성급하게 확정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매뉴얼을 들여다본 결과 애초에 무엇이 의심 사례이고 무엇이 피해 사례인지를 구분하는 기준 자체가 모호했다.
그리고 애초에 ‘의심 사례’에서 따라 해야 할 ‘문의·상담’ 절차가 무엇인지 모호한 것도 근본적인 문제였다. 당사자의 반론권이 일절 보장되지 않는 절차적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얼마든지 일선의 책임자가 누구냐에 따라 매뉴얼을 자의적으로 남용할 소지가 충분했다.
경제학 박사. 프리랜서 작가. '그 페미니즘이 당신을 불행하게 하는 이유'(2019, 공저), '포비아 페미니즘'(2017), '혐오의 미러링'(2016),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2014), '일베의 사상'(2013) 출간. '2014년 변신하는 리바이어던과 감정의 정치'로 창작과 비평 사회인문평론상 수상과 2016년 일본 '겐론'지 번역.
박가분
paxwon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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