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왜 ‘가난한 조중동’인가 했더니, 당당위 집회 ‘극우’ 낙인

박가분 승인 2018.10.29 12:38 | 최종 수정 2020.06.26 15:45 의견 0

<한겨레>가 28일자 기사에서 27일 혜화동서 열린 이른바 ‘당당위(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 집회’ 참가자에게 ‘극우’라는 규정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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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위 집회는 ‘유죄추정 법집행’을 비판한다는 취지로 열린 행사로서, 초기에는 일명 곰탕집 사건에 대한 여론에서 출발했으나 이후 다양한 성범죄 무고 사례나 여러 여론재판 사례(박현정 서울시향 대표, 박진성 시인, SJ 레스토랑, 고 송경진 교사 등)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항의의 성격으로 기획됐다.

당시 집회에 대해 무고 피해자의 대표 격으로 알려진 박진성 시인이나 고 송경진 교사의 아내 강하정 등도 지지의사를 밝힌 바 있다.

사진 1. 27일 혜화동서 열린 ‘당당위 집회’(출처 에펨코리아)
사진 1. 27일 혜화동서 열린 ‘당당위 집회’(출처 에펨코리아)
사진 2. 27일 혜화동서 열린 ‘당당위 집회’(출처 에펨코리아)
사진 2. 27일 혜화동서 열린 ‘당당위 집회’(출처 에펨코리아)

이처럼 토요일에 있었던 시위는 진보냐, 보수냐, 라는 이념적 잣대로 환원될 수 없는 대중적 불만을 표현하는 시위였다고 봐야 옳다. 법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원칙이 무너졌다는 젊은 계층의 불만은 좌우 양쪽에 모두 존재한다.

또한 당당위 네이버 카페 운영 양상을 들여다보면, ‘성평등’, ‘반혐오’, ‘사법정의 구현’이라는 구호 아래 특정한 정치성향 발언을 규제하고 있으며, 실제로 집회 현장의 발언을 들어 보면 ‘무죄추정의 원칙 준수’라는 원패턴의 주제를 되풀이하고 있다. 일각에서 걱정했던 곰탕집 사건의 유무죄 여부에 대한 예단은 애초에 발언의 주제가 아니었다.

일단 <한겨레>의 기사는 이러한 사실들을 공정하게 고려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뷰’라는 형식을 빙자해서 이를 집회 당사자들의 성향에 대한 ‘낙인(극우)’을 찍기 위한 근거로 활용했다. 상대에게 낙인을 붙일 거면 애초에 인터뷰는 뭐 하러 하냐는 의문을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언론의 윤리와 수준을 심각하게 의심케 할 만한 기사다.

사실 당당위 집회가 진보/보수, 좌/우라는 도식으로 담길 수 없는 사회적 불만을 담으며, 스스로 정치색을 적극적으로 배제한다는 점에서, 역설적이게도 지난날의 혜화역 워마드 집회와 일면 유사한 지점을 공유한다고 지적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정작 <한겨레>를 비롯한 진보성향 비평가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는 데 인색하다. 왜냐하면 이들은 지난날 (정신병적 혐오와 홍대 몰카 피해자에 대한 2차가해로 점철됐던) 혜화역 워마드 시위는 어디까지나 ‘진보적’, ‘대중적 페미니즘’의 맹아를 담고 있는 시위로 포장돼야 한다는 절대적 당위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이러한 당위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명백한 차이점 역시 보지 못한다. 일각에서 우려한 ‘성별 혐오발언’이나 ‘꽃뱀 몰아붙이기’는 당당위의 집회 구호나 피켓 그리고 발언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았으며, 이는 지난날 혜화역 워마드 집회와 명백히 대조되는 지점이다.

물론 각자의 신념대로 사회현상에 대한 비평은 가능하다. 하지만 여기서 물어야 할 것은 그 비평의 잣대가 일관성을 갖느냐는 것이다.

만일 ‘극우’라는 딱지를 <한겨레> 식으로 붙인다면, ‘문재인 재기해’ 내지는 ‘문재앙’을 노골적으로 발언한 워마드 집회나,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 몰카 가해자를 옹호하고 박근혜를 정치적으로 지지했던 워마드야말로 ‘극우’라는 진단을 했어야 옳다.

또한 최근 태극기 부대 등 ‘극우 여론’의 온상지로 ‘유튜브’를 지목하고 있는 <한겨레>가 일부 당당위 시위 참여자들이 ‘유튜브’를 통해 참가한 사실을 지적한 점도 자가 당착으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그들은 예컨대 사이버 불링(괴롭힘)이 일상적으로 만연하며 심지어 범죄의 수단(인천 여아 살인 사건)으로도 사용됐던 ‘트위터’에서 워마드 집회로의 유입이 활발했던 점을 왜 지적하지 않는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러한 논리적 일관성을 <한겨레>가 신경 쓴 적은 거의 없다. 현상에 대한 이해 없이 진영논리에 입각한 논리적 비약과 낙인으로 일관하는 점. 이것이 <한겨레>가 ‘돈 없는 조중동’이라고 조롱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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