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나온 ‘20대 남성 지지율’ 질문에 대한 대통령의 답변이 일각에서 논란이 됐다. (만일 필자가 본 전문이 이게 맞는다면) 기자의 질문에 대통령은 이렇게 답변했다.
갈등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회가 바뀌는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 등이고, 예를 들어서 난민 문제라든지 소수자 문제라든지 이런 문제들에서 갈등이 있기 마련이죠. 그런 갈등을 겪으면서 서로 사회가 성숙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갈등 때문에 지지도 격차가 난다고 생각은 하지 않고요. 지지도가 낮다면 뭔가 정부가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엄중하게 생각해야 되는 거죠. 뭔가 20대 남녀 지지도 차이가 있다면 우리 사회가 보다 희망적인 사회로 가고 있느냐, 안 그러면 희망을 못 주고 있느냐 관점의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그런 사회가 되는, 보다 잘 소통하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필자의 총평은 우선 문재인 대통령이 나름대로 정론을 제시하려고 고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젠더이슈와 난민과 소수자 문제를 둘러싼) 이러한 갈등이 ‘특별하지 않다’라든가 ‘20대 남성 지지율의 핵심은 젠더문제가 아니다’고 단언하는 뉘앙스의 발언은 실언이었다고 본다.
잠깐 우회하자면, 젠더이슈를 떠나 난민과 소수자 문제는 유럽 등지에서 극우정당의 발흥이나 정권교체를 불러올 만큼 ‘특별한’ 갈등이 맞다. 이런 것들이 특별하지 않다, 혹은 발전의 도상에서 거쳐 가는 성장통쯤이라는 인식은 고 노무현 대통령 역시 견지했던 목적론적 진보관(예 ‘모든 강물은 바다로 흘러간다. 굽이치고 돌아가도 결국은 바다로 가는 것이다’)을 현 대통령 역시 신봉한다는 대목으로 읽힌다. 문제는 그게 현실과 너무 다르다는 것에 있다. 이 문제에서 정부가 만일 균형을 잃으면 위험한 반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또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사실 이 정부가 외국의 리버럴 혹은 진보성향 정부보다 더 잘했다고 칭찬하고 싶은 것은 오히려 난민 문제나 소수자 문제에 대해 적절한 균형을 추구한 것인데도 이러한 신호는 제대로 유권자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
예를 들어 논란이 된 난민심사를 매우 엄격하게 진행한 것이라든가, 최근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명칭을 종교 등에 의한 병역거부로 명칭 변경한 일이라든가.
다시 원래의 문제로 돌아가자. 물론 대통령에게도 공정을 기하자면 ‘20대 지지율’이 ‘젠더갈등’과 어떻게 연관됐는지에 대한 기자의 인식 또한 인상비평 수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그의 질문에 대한 답변도 원론적인 수준을 넘어설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대 지지율 하락과 젠더문제의 관련성을 부인한 듯한 답변이 20대 자신들의 현실인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정작 20대 남성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중요하지 않은 문제처럼 취급하는 것은 실언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20대 남성 지지율이 크게 하락한 현상마저도 조사기관의 음모라거나 허구라는 식으로 현실부정을 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어느 설문기관(리얼미터든 갤럽이든)을 보든 그 추세는 부정할 수 없다. 예컨대 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2018년 6월에서 12월까지 20대 남성의 지지율 하락 폭은 40%로 전 연령·성별 계층에서 가장 높은 수치였으며 특히 이는 60대 이상 남성(36% 하락)보다 더 큰 수치다.
그렇다면 문제는 왜 하락했느냐다. 물론 설문문항 구성에 따라 피응답자는 지지율 하락의 이유로 여러 가지를 응답할 수 있다. 하지만 당사자 문제인 청년문제로 논의의 초점을 맞추면 젠더문제가 20대 남성 민심이반의 주된 축 중 하나라는 것을 여론조사 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민심이반까지는 아니더라도 30대 남성 역시 이들과 일정 부분 불만을 공유한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12월 리서치뷰 여론조사를 보면 ‘문재인 정부의 청년 정책 평가’에서 2030 남성은 불만족한다는 응답이 각각 72%, 59%인 반면 2030 여성은 만족한다는 응답이 각각 56%, 57%였다. 확연한 차이이다.
더군다나 ‘청년세대 지지율 하락 요인’으로 20대 남성은 33%가 성갈등 관련 대응 미흡을 꼽았고 ‘북한문제 몰두’(27%)와 ‘일자리’(24%) 문제가 그 뒤를 이었다. 30대 남성의 불만 역시 비슷한 분포를 보였다(성갈등 관련 대응 미흡이 30%로 1위를 보였으며 북한문제와 일자리 문제는 각각 23%, 22%).
물론 다른 요인들도 있기 때문에 20대 남녀 지지율 격차가 오직 젠더문제 때문에 났다고 말하면 그것은 틀린 인식이겠지만, 정반대로 20대 남녀 지지도 차이가 젠더 갈등과 전혀 무관하다는 단언 역시 틀렸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단지 일자리 문제만이 유일한 이유라고 한다면 마찬가지의 취업난을 겪는 20대 여성과 경력단절 위험을 겪는 30대 여성의 지지율은 왜 상대적으로 높은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이처럼 지지율 하락 요인에 대한 주된 응답으로 나온 일자리 문제, 북한 문제, 젠더 갈등 문제는 실제로 커뮤니티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화두이며 의미론적으로 연결됐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북한 문제에 대한 거론은 결국 ‘정부의 관심이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 아니다’는 투정에 더 가까운 것이므로 논외로 하더라도(예 문재인 정부는 내 일자리보다는 북한과 여자만 챙긴다?!), 나머지 일자리 문제와 젠더갈등 문제는 이들에게 결코 별개의 사안이 아니다.
특히 ‘룰의 공정성’과 ‘잣대의 일관성’에 예민한 20대 남성이 (재밌게도 이것은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20대 여성과도 일맥상통하는 정서다) 이 두 문제 모두에서 정부가 자꾸 ‘반칙’을 저지른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도 언급했듯이 홍대 몰카 피해자를 공격하기 위해 조직된 혜화역 워마드 시위에 정부인사를 파견해서 대화를 나누는 파격까지 보여주면서, 정작 자신들이 불만을 느끼는 사안에 대한 청와대 청원 답변은 소홀히 한다는 불만은 말할 것도 없다(필자는 개인적으로 답변을 담당했던 정혜승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을 교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노동시장 진입기에 젊은 남성에게 심각한 핸디캡으로 작용하는 병역문제는 여전히 충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성가족부는 국민연금을 이용해 여성고위직 비율을 늘리는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젊은 남성의 여론을 악화시키는 데 큰 일조를 한 대표적인 정책이다. 이러한 뉴스를 본 이들은 정부가 청년 일자리 문제에는 관심 없고 여성 고위직 자리 나누기에만 혈안이 됐다고 인식한다.
이 문제에서 젠더문제와 일자리 문제에 대한 불만은 서로 뒤엉켜 있어서 기계적으로 나누는 게 무의미하다. 정부가 사법절차에서든, 일자리에서든, 정책적 소통 의지에서든 자신을 공정하게 대우하지 않는다는 게 그들이 느끼는 불만의 핵심이다.
결국 대통령의 발언에서 문제가 있는 것은, 젠더문제와 나머지 불만들(예 일자리 문제)을 분리하고 전자는 후자보다 부차적이라고 간주하고 싶어 하는 대목이었다. 또한 이것은 작금의 사태에 대해 소위 민주·진보진영 전반이 공유하고 있는 욕망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지지율 하락의 당사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불만을 분리할 만큼 일자리 등의 사회적 자원 자체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들은 일자리조차 각종 할당제로 인해 빼앗기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물론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것은 젠더문제에 대한 불만으로도 연결된다.
이들의 여론을 어떻게 봐야 할까. 최근에 돌아선 20대 남성의 여론이 퇴행적이고 보수적이라고 낙인찍는 사람도 있다(그렇게 치면 난민 수용 문제에 부정적으로 반응했던 20대 여성도 퇴행적이고 보수적인 집단이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오히려 이들의 반응이 그 누구보다 개인의 권리의식이 향상된 데서 비롯됐다는 관점의 전환을 기해야 한다.
앞으로 ‘사회가 바뀌는 과정에서의 진통이므로 너희들이 양보하고 참아달라’는 식의 화법이나 ‘과거의 군대에 비하면 너희들의 병역문제는 많이 개선된 거야’ 식의 화법은 이들에게 앞으로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20대 남성은 20대 여성만큼 현재 어느 진보·보수 정치인보다 더 개인주의적인 사고관을 가진 세대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갈등을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했듯이) ‘사회가 바뀌는 과정’이라고 인식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미 사회가 바뀌었다’는 데서 발생하는 갈등이라고 인식해야 한다. 이건 청와대가 인식의 전환을 꾀해야 할 대목이다.
결국 관건은 대통령이 언급한 ‘희망’이라는 것을 청년 세대에게 어떻게 보여줄 것이냐는 데 있다. 소득주도성장을 사실상 폐기하는 등 올해의 경제기조를 보면 당분간 정부는 막대한 재정투입을 통해 공공일자리와 공공부문을 창출하는 뉴딜식 사업은 벌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개인적으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방식대로) 일자리와 복지의 총량이 획기적으로 늘어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20대들에게 ‘공정성’의 문제는 민감한 화두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최소한 별 효과도 없으면서 여론만 악화시키는 여가부의 폭주를 통제하거나, 아니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최소한 정부 부처가 나서서 20대 남성들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화두에 직접 응답하는 제스처를 보여야 한다.
경제학 박사. 프리랜서 작가. '그 페미니즘이 당신을 불행하게 하는 이유'(2019, 공저), '포비아 페미니즘'(2017), '혐오의 미러링'(2016),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2014), '일베의 사상'(2013) 출간. '2014년 변신하는 리바이어던과 감정의 정치'로 창작과 비평 사회인문평론상 수상과 2016년 일본 '겐론'지 번역.
박가분
paxwon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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