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일과 후 병사들의 휴대폰 허용을 두고 ‘결사반대’ 드립을 치며 화려하게 자폭했다. 일부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남성인권(?)’을 대변한 줄 알았던 하 의원에게 실망이라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우선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히 해두자. 하 의원이 워마드의 범죄를 폭로하고 운영자의 범죄행위를 응징하겠다는 것은 사회정의 실현 관점에서 지지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건 남성인권 실현과는 그 자체로는 관계가 없다.
그건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가혹한 징병제를 개혁하고 병사의 사회경제적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병역문제에서 남성인권을 증진시키는 지름길인데 이 분야에서 가시적인 개혁이 이뤄진 시기가 언제인지도 생각해보길 권한다.
그리고 필자가 볼 때 하 의원은 딱히 변절한 게 아니다. 그는 아마 최근 20대 남성의 지지율이나 여론조사 추이를 보고 ‘20대 남성들이 우경화됐으니 기회다’는 막연한 판단을 내렸을 것이고, 그런 판단 아래 (우파적 법치주의 관점에서도 용납할 수 없는) 워마드 이슈를 부각하는 동시에 군대 관련 꼰대 발언을 한 셈이다.
물론 우리의 눈에 20대 여론에 너무나 무지한 어이없는 똥볼이지만 애초 하 의원의 머릿속에서 이 둘은 전혀 모순되는 발언으로 생각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왜 저렇게들 화를 내지’라고 의아했을 것이다. 하 의원을 욕할 것도 없다. 그는 원래 그런 포지션이었다.
그건 그렇고, 필자가 말하고 싶은 요점은 이게 비단 하태경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해 기성정치인과 논객 누구도 20대의 정서, 특히 그중에서 젊은 남성의 정서와 욕구를 이해하지 못한다.
지금 20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기성세대 당신들은 변화하는 사회 속에 살고 있겠지만, 우리는 이미 변화한 사회 속에 살고 있다. 이런 우리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특별대우가 아니라 공정한 대우이다, 최소한 우리가 행한 노력과 희생에 대한 존중을 표해 달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우파들은 ‘드디어 젊은이들이 진보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이념 환원론으로 변죽을 울리고, 좌파들은 ‘일자리가 부족하니 지지율이 떨어진다’는 경제 환원론으로 젊은 사람들의 ‘도덕적 열망’을 일부러 외면한다. 기성 정치인 누구도 여러분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물론 여러분들은 그보다 더 나은 방식으로 대접받을 권리가 있다. 좌파든 우파든 여러분의 열망을 그들 각자의 방식으로 진지하게 정책과 노선으로 승화시킬 책임이 있다.필자가 지속해서 주장해왔지만, 20대 여론은 우경화나 보수화라는 이념적 잣대로 재단될 수 없는 측면이 많다. 경제문제로도 환원될 수 없는 측면들 또한 있다.
마찬가지로 줄곧 강조해온 것이지만 기성 정치권은 미래 세대(의 절반으)로부터 긍정적인 사회적 에너지를 끌어내려면 이들의 ‘도덕적 열망’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당장 가까운 시일 내에 기성 정치인 중에서 그런 이들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필자는 여러분들에게 이슈마다 일희일비하며 감정을 소모하지 않기를 권하고 싶다. 순간순간 감정의 배설에 탐닉하는 건 하 의원 같은 기회주의자에게 이용당하기 딱 좋은 나쁜 습관이다.
필자 또한 커뮤니티의 생리를 모르지 않으므로 그런 감정 배설에 특화된 짤방과 밈 그리고 유튜브에서 나온 가짜뉴스와 출처 불명 썰들의 유용성을 모르지 않는다. 그것은 순간적인 화력을 내는 데 도움이 된다. 저 트페미들과 워마드도 가짜뉴스는 실컷 이용해 먹는다.
문제는 이건 어차피 길게 싸워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자극적인 이슈와 극단적인 감정배설 그리고 분노의 표출이 방향성을 잃으면 결국 절망을 낳고 그러한 절망은 외면을 낳으며 그러한 외면은 다시 한번 정치와 언론으로부터의 무시로 이어진다. 백날 불평해도 흑우(말랑카우) 신세를 벗어나기 힘든 것이다.
필자는 그보다 나은 방식이 있다는 것을 지금 이 순간에도 권하고 싶다. 여러분들의 도덕적 욕망을 진지하게 담론화·체계화하려는 사람, 그것을 진지한 실천으로 연결하려는 단체와 언론인, 그리고 여러분의 목소리를 기성 정치권에 들리도록 애쓰는 정치신인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후원하라는 것이다. 직접적인 참여든 금전적이고 물질적인 지원이든 말이다.
우리는 각박한 경쟁사회에서 나고 자라났으므로 ‘투덜거림’ 외에는 마땅한 저항의 수단이 없었다. 이런 우리에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손절’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손쉬운 저항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크게는 대통령 탄핵에서 작게는 총여학생회 폐지까지, 불공정하다고 느껴지는 무언가를 없애버리는 방식에만 익숙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우리가 다수임을 증명하고, 우리가 손절하고 떠났던 곳을 재점령하고, 아니면 우리가 무언가를 새로 만들어내야 할 때도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이다. 현재는 손쉬운 대안이 없으므로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단결하자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공정하고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 구현될 수 있다.
지금 나를 대변하는 사람이 없다는 데 짜증이 나기도 하고, 또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는 거듭된 (필자 자신조차 저지르는) 똥 볼에 지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소모전으로 가면 젊은 사람들은 무조건 이긴다. 시간은 우리 편이다.
그리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20대 내에서도 우리의 의견이 다수파이다. 여러분들을 도발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여러분들의 의욕을 꺾으려는 것이다. 그럴수록 장기전으로 나아갈 채비를 하자.
경제학 박사. 프리랜서 작가. '그 페미니즘이 당신을 불행하게 하는 이유'(2019, 공저), '포비아 페미니즘'(2017), '혐오의 미러링'(2016),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2014), '일베의 사상'(2013) 출간. '2014년 변신하는 리바이어던과 감정의 정치'로 창작과 비평 사회인문평론상 수상과 2016년 일본 '겐론'지 번역.
박가분
paxwon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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